이탈리아 밀라노 저력은 ‘디자인’에서 나온다. 밀라노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행인들만 봐도 짐작이 간다. 화려함으로 치면 서울 강남거리도 견줄 만하지만, 밀라노에선 미적 감각이 더 돋보인다. 단순해 보이는 셔츠에 청바지 차림조차 예사롭지 않다. 위아래 색상 조화는 물론, 선글라스나 액세서리를 추가해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곳에서는 잠시 벗은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올려놓거나, 목 단추에 살짝 걸어 놓는 것도 스스로를 표현하는 특별한 디자인으로 다가온다.
매년 4월이면 이 도시의 디자인 영향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가구 박람회 기간인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초창기 행사에선 가구 디자인 위주로 선보였다가 최근에는 글로벌 자동차 및 전자기기 업체들까지 참가하면서 모두가 주목하는 디자인 행사로 규모가 확대됐다.
밀라노에는 디자인 관련 회사가 전 세계 통틀어 가장 많고, 제각각 특징적인 모습으로 오랜 세월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도 즐비하다. 이 가운데 알칸타라는 최고급차 시장이 확대되면서 현재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알칸타라는 지난해 1억6326만 유로(약 2360억원) 매출을 올렸다. 2009년 6430만 유로(807억 원)와 비교하면 괄목할만한 실적 개선을 이룬 것이다.
1972년 밀라노에서 설립된 알칸타라는 차 내장재용 섬유를 만든다. 소재 이름은 회사 이름과 같다. 고기능성 소재인 알칸타라는 천연가죽처럼 촉감이 부드러우면서도 쉽게 오염되지 않고 물과 불에 강한 것이 특징이다. 동물 가죽이 아닌 100% 폴리에스테르·폴리우레탄 합성 소재다.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알칸타라 본사에 만난 안드레아 보라뇨 회장(사진)은 “알칸타라는 극도의 다용성과 탁월한 미적·기술적·감각적 품질로 인해 세계 각지의 주요 명품 브랜드의 라이프스타일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며 “알칸타라 소재는 국제 디자이너들의 의류와 하이테크 액세서리를 새롭게 해석하는가 하면, 자동차와 비행기 및 요트의 내부를 풍부하게 만들어 낸다”고 소개했다.
특히 자동차 소재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알칸타라는 람보르기니·페라리·마세라티·벤틀리·포르쉐 같은 최고급차에 주로 공급된다. 국산차 아이오닉 5 N이나 제네시스 등도 알칸타라 적용이 차츰 늘고 있다. 일본 업체 렉서스 역시 오랜 고객이다.
알칸타라는 매일 사용하는 제품을 완전히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현대적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가장 최신의 기술, 기능성 및 감정이 결합돼 수천 개의 맞춤형 제품으로 표현된다.
보라뇨 회장은 “실제로 소비자의 특별 요청에 따라 설계 및 제작된 제품에 대한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며 “달성해야 하는 목표는 디자인과 기능 면에서의 독창성과 독점성”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는 알칸타라와 같은 소재의 사용만이 최종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며 “‘메이드 인 이탈리아’라는 감성적 가치와 ‘지속 가능성’이라는 경영 철학도 뒷받침 된다”고 덧붙였다.
지속 가능성은 알칸타라가 가장 공들이고 있는 개념이다. 알칸타라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종전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기 위해 생산 공정을 현대화했다. 2009년 유럽에선 처음으로 탄소 중립성 인증을 받았다. 이후 매년 지속 가능성 보고서를 내고 있다.
탄소 중립이란 원자재 공급, 생산, 제품 사용, 수명 주기 종료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서 상쇄 후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생산 공정뿐만 아니라 제품의 사용 및 처분도 포함된다. 알칸타라는 매년 원자재를 포함한 제조 공정 초기부터 제품 수명 주기가 끝날 때까지 기업의 활동과 제품으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한다.
보라뇨 회장은 “알칸타라에게 지속가능성에 대한 책임은 부수 효과가 아니라 핵심 요건”이라며 “알칸타라는 탄소 배출권이 가치 사슬을 넘어 기후 변화에 대한 투쟁을 가속화하고 전 세계적인 배출량을 측정 가능한 정도로 줄일 수 있는 유용한 도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또 “매년 알칸타라가 지원하는 프로젝트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 지역에 실질적인 사회적 이익 또한 가져온다”고 확신했다.
이 같은 취지에 맞게 알칸타라는 페라리 최신 슈퍼카 푸로산게에 재활용 소재를 썼다. 푸로산게 안에 적용된 알칸타라는 68% 재활용 폴리에스터로 구성돼 있다. 해당 소재는 알칸타라 공정에서 처리하고 남은 소비자 폐기물을 활용한 것이다.
알칸타라는 친환경을 대표하는 전기차 분야에서도 이점이 있다. 보라뇨 회장은 “알칸타라는 일반 소재보다 30% 가벼워 차체 무게 부담을 덜어주기 때문에 완성차업체들이 선호한다”며 “여기에 재활용 소재를 활용하려는 자동차 제조업체도 많아져 여러모로 알칸타라의 장점이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알칸타라 최대 강점은 무한한 확장성이다. 요즘에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가구와 건축물, IT 기기 등 다양한 곳에서 알칸타라가 활용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서피스 키보드 덮개 제작에 알칸타라가 쓰인 게 대표적이다. 알칸타라는 루이비통과 같은 명품 패션 브랜드와도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보라뇨 회장은 “각 분야에는 고유한 역학과 요구가 있지만 알칸타라의 다양성과 독특한 특징은 이를 매력적인 소재로 만들어서 서로 다른 시장의 기업들이 고객들의 제품 요구에 대응하고 시장 트렌드를 따를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알칸타라는 100% 이탈리아 브랜드의 독특함과 훌륭함을 대변한다”며 “우리에게 이탈리아 제조란 첨단 기술로 제작하되 디테일에 대한 주의를 소홀히하지 않고 전통적인 장인 정신의 가치에 충실함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알칸타라는 한국과의 인연도 넓혀가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패션 브랜드(Jaden Cho)와 협업해 알칸타라로 만든 드레스를 플랫폼-L 박물관에서 전시하기도 했다. 알칸타라는 한국 대중에 더 가까워지고, 예술 커뮤니티에 집중해 브랜드의 인식을 높이고자 이 전시를 선보였다. 자동차 산업 외의 모든 분야에도 알칸타라 소재가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앞으로 알칸타라는 최종소비자에 대한 소통도 늘려나갈 계획이다. 알칸타라가 B2B 산업에 속하지만 소비자와의 감정적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보라뇨 회장은 “최종 소비자와 대화할 때 메시지는 부드러운 촉감, 디자인의 다양성,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력과 같은 경험적 측면에 더 많은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감정적인 연결과 라이프스타일 열망을 유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밀라노=정진수 동아닷컴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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