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터넷 기업 최초의 글로벌 진출 성공 사례 ‘라인’이 일본에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라인은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10년 넘게 공들인 글로벌 메신저로 일본 내 이용자 수가 9600만명에 달한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11월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빌미로 몽니를 부리면서 네이버는 라인을 일본 소프트뱅크에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 라인야후 사태를 둘러싼 일본 정부와 소프트뱅크의 계략과 한국 정부와 네이버의 대응을 진단해본다.[편집자주]
“지난 10년간 매달 일본을 오가며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라인에 갈 때마다 직원들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걸 봤기에 저도 괴로웠습니다. (일본 시장에서) 정말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라인이 어느 정도 성공하고 나서 ‘이게 꿈이 아닌지’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지난 2016년 7월 15일, 네이버의 첫 글로벌 성공사례인 라인이 미국에 이어 일본에 상장하던 날.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는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2년 만에 공개 석상에 등장했다. 그는 당시 “신중호 라인 최고글로벌책임자(CGO)가 뉴욕 증권거래소에 서서 벨을 누르고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울컥해 어젯밤 잠을 잘 못잤다”고 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24년 이 창업자가 ‘기적’이라고 이야기했던 라인의 성공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11월 라인야후(라인 운영사)에서 발생한 51만건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빌미로 이사회 및 지분 관계 정리 등으로 네이버 몰아내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야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8일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를 바탕으로 라인야후는 네이버에) 자본 변경을 강하게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회사(라인야후)가 모회사(네이버)에 지분관계 정리를 요청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일본 정부의 ‘플랫폼 주권 확보’, 소프트뱅크의 ‘지배력 강화’ 등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기업이 이룬 성과를 일본에 빼앗기는 ‘죽 쒀서 개 준격’인 상황”이라며 “이해진 창업자의 꿈이 한순간에 무너지게 됐다”고 말했다.
◇ 동일본 대지진 직후 이해진 승부수… 일본 현지화 주력해 대박
라인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다. 이해진 창업자는 라인을 성공시키기에 앞서 일본 시장의 문을 여러 차례 두드렸다. 하지만 라인이라는 대박을 이루기까지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네이버는 지난 2000년 9월 한게임 재팬을 설립해 현지 검색사업을 타진했지만, 2005년 1월 서비스를 종료했다. 2006년 검색업체 ‘첫눈’을 인수하면서 재기를 모색해 2007년 일본 자회사 ‘NHN재팬’을 설립했지만, 역시나 성과 없이 2013년 서비스를 폐쇄했다. 이 창업자가 일본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도를 하며 직원들과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던 이유다.
그러다 이 창업자의 승부수가 통한 것은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난 2011년 3월이다. 그는 재난상황에서 문자와 전화가 먹통이 되자 소셜미디어(SNS) 등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필요하다는 점에 착안해 한 달 반 만에 ‘NHN재팬’을 통해 모바일 메신저 라인을 선보였다.
여기에 신의 한수는 이 창업자가 라인 초기부터 글로벌 무대를 공략하기 위해 일본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는 점이었다. 초기 서비스도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먼저 시작했고, 상장도 미국과 일본에서 했다. 라인은 직원 대부분을 일본인으로 채용했다. 초기 개발은 한국인이 주도했지만, 현지화에 주력한 것이다.
라인 서비스 출시 프로젝트를 총괄한 사람이 바로 이 창업자의 오랜 친구이자 ‘첫눈’ 창업자인 신중호 라인야후 최고제품책임자(CPO)다. 그는 라인야후 이사회의 유일한 한국인이었지만, 라인야후가 이사회 전원을 일본인으로 교체하면서 이사회에서 배제됐다.
라인의 현지화 전략은 승승장구 그 자체였다. 현재 라인은 일본 국민 10명 중 8명이 사용하고 있다. 일본 내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한 달에 한 번 이상 사용자)는 9600만명에 달한다. 라인은 일본 외에도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2억명이 넘는 이용자를 보유한 부동의 1위 메신저다.
◇ 5년 전 손정의 손 잡은 게 실책으로… “플랫폼·데이터 주권 노리는 日 정부”
라인은 한국 인터넷 기업이 글로벌 무대에 진출해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이해진 창업자 역시 “네이버는 라인으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진출 모델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하지만, 라인이 오늘날과 같은 위기를 맞게 된 것은 5년 전 이 창업자가 손 마사요시(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손을 잡은 것이다.
지난 2019년 당시 라인은 일본 1위 모바일 메신저였다. 네이버는 소프트뱅크가 운영하는 일본 최대 검색 서비스 ‘야후재팬’과 시너지를 내기 위해 절반씩 지분을 투자해 ‘A홀딩스’를 설립했다. A홀딩스 밑에 합작사인 라인야후를 두게 됐다. 합작사 출범 당시만 해도 ‘구글과 아마존 등 세계 빅테크를 뛰어넘겠다’는 포부를 가졌지만 시너지는 커녕 애지중지 키운 사업을 빼앗길 처지에 놓였다. 일본 기업과 손을 잡은 뒤 라인은 한일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라인이 취득한 개인정보가 한국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루머에 시달렸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이해진 창업자가 손정의 회장을 너무 신뢰한 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며 “라인야후의 경영권 확보는 플랫폼과 데이터 주권을 확보하고 싶은 일본 정부와 기업 지배력을 얻고자 하는 소프트뱅크의 계략”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일본 정부와 라인야후의 행보는 개인정보 유출, 서버나 클라우드 관리 문제를 넘어 동남아 사업까지 빼앗으려는 지나친 시장개입이자 네이버 지우기”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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