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저녁 중국 베이징 중심가 싼리툰 일대. 수많은 자동차와 오토바이, 자전거로 혼잡한 이곳에서 중국 전기차 ‘아바타(AVATR) 12’를 타고 자율주행에 나섰다. 이 차에는 중국 정보기술(IT) 업체 화웨이의 첨단 자율주행 시스템이 탑재됐다. 갑자기 다른 차량이 끼어들 때도 운전석에 앉은 사람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알아서 잘 멈췄다. 화웨이 관계자는 “아바타의 무인 주행은 레벨4에 근접한 3.9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레벨4는 위급할 때도 운전자 개입 없이 주행 가능한 성능이다. 현재 양산되는 현대자동차와 기아 차량은 레벨 2.5 수준이다.
그동안 싼 가격으로 승부를 걸었던 중국 모빌리티 업체들이 ‘소프트웨어(SW) 파워’까지 갖추면서 강력한 도전자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 IT 기업들과 전기차 업체들의 ‘합종연횡’,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 지급, 공격적인 데이터 수집 등이 성장 원인으로 분석된다. SW 파워를 앞세운 ‘중국 전기차 군단’이 국내 온라인 유통망을 강타한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처럼 국내 자동차 시장을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 ‘자동차-IT 공룡’ 손잡고 보조금으로 급성장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단기간에 ‘SW 굴기’를 이룬 배경에는 중국 IT 업체들과 100개가 넘는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합종연횡이 있다.
화웨이는 중국 완성차 업체 네 곳과 손잡았다. 그중 한 곳인 창안자동차와 함께 ‘아바타 12’를 만들었다. 화웨이는 올해 말까지 화웨이 자율주행 시스템을 장착한 차량의 누적 대수가 50만 대를 돌파할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중국 최대 검색엔진 바이두는 지리자동차와 협업 중이며, 중국 빅테크 알리바바는 상하이차와 전기차를 합작 출시했다. 중국 최대 차량 공유 플랫폼 디디추싱은 샤오펑과 함께 전기차 브랜드 ‘모나(MONA)’를 다음 달 선보일 예정이다. 사실상 IT 기업들이 전기차 개발을 주도하는 양상이다.
중국 정부가 공격적인 데이터 수집을 허용하면서 자율주행 사업을 독려한 것도 급성장 배경 중 하나다. 일정 규정만 준수하면 자율주행 도중 발생한 데이터를 기술 개발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이나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은 안전과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자율주행 테스트의 범위와 장소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중국 바이두의 자율주행 거리는 2100만 km(2021년 기준)에 달한다. 한국은 모든 기업의 자율주행 거리를 다 합해도 72만 km에 불과하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중국은 금지한 것만 빼고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정책”이라며 “14억 인구의 대규모 데이터를 저항 없이 빠르게 수집할 수 있는 것도 강점”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도 중국 전기차의 생산 능력과 기술을 급속도로 끌어올렸다. 중국은 현재 연간 약 4000만 대 자동차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판매되는 자동차는 약 2200만 대다. 과잉 생산이 분명하지만 중국 정부는 경제 성장과 일자리 보존을 위해 보조금을 뿌리며 과잉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독일 킬세계경제연구소의 4월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는 2018∼2022년 정부로부터 보조금 약 35억 달러(약 4조8000억 원)를 받았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중국이 2009년부터 2022년까지 전기차 등에 보조금으로 약 1730억 달러(약 239조 원)를 지출했다고 분석했다.
● 中, 첨단 모빌리티 기술력서 韓 역전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기술력은 이미 글로벌 선두권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2월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운영위원회에 보고된 ‘2022년 기술 수준 평가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첨단 모빌리티 기술 수준을 100%로 봤을 때 중국은 86.3%에 달했다. 일본(85.8%)이나 한국(84.2%)을 이미 앞지른 것이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의 보고서에서도 2022년 중국 자율주행차 논문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의 93.5%로 한국(83.7%), 일본(79.4%)에 앞섰다.
SW로 무장한 중국 전기차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견제도 거세지고 있다. 미국은 올 2월 중국산 커넥티드카의 국가안보 위협 가능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EU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10%인 관세율을 최대 50%까지 인상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 1위 BYD는 올 하반기(7∼12월) 한국에 상륙할 것으로 보인다. BYD는 승용차 국내 진출을 위해 현재 환경부 성능 인증 평가를 받고 있고, 디자인 및 특허 등록도 마친 상태다. 전기버스 시장은 이미 중국에 넘어갔다. 지난해 국내 전기버스 가운데 중국산 점유율이 52%에 달했다.
다만 중국 전기차들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출시된 샤오미의 첫 전기차 ‘SU7’이 주행 중 갑자기 균형을 잃고 좌우로 휘청거리는 등의 사고 영상이 인터넷에 공유되며 불안감이 퍼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디자인 면에서도 독일 포르셰의 ‘타이칸’을 베꼈다는 비판이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이 ‘기술 속도전’에서 발생한 부작용까지 극복한다면 정말 무서운 상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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