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가장 신뢰하는 매체는 무엇입니까?” 시사주간지 시사IN이 2020년 발표한 ‘대한민국 신뢰도 조사’에서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로 유튜브가 꼽혔습니다. 지난 4·10 총선 당일 방송뿐 아니라 유튜브에도 이목이 쏠렸습니다. 유튜브 개표방송인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개표공장’에 20만 명이 넘는 접속자가 몰렸습니다. 2020년 유튜브채널 ‘가로세로연구소’는 전 세계 슈퍼챗(실시간 후원) 1위를 기록한 일도 있습니다.
시사·정치 유튜브 전성시대
“우리에겐 신문도 지상파도 종편도 없습니다. 우리가 모두 언론이 되면 됩니다. 스마트폰으로 애국 혁명을 일으킵시다!” 2017년 2월 서울시청 앞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때 사회자의 발언입니다.
시사·정치 유튜브의 성장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TV조선 등 보수언론이 국정농단 보도를 주도하자 보수언론과 일부 보수 지지층 사이에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일부 보수 지지층은 자신들을 대변해 줄 언론을 찾아 나섰고 누구나 영상을 올릴 수 있으면서, 취향에 따른 추천이 이뤄지고, 수익까지 낼 수 있는 유튜브는 이들의 근거지가 됐습니다.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진보 언론에 비판적인 이들은 팟캐스트를 중심으로 활동해 왔는데 이후 유튜브에 경쟁적으로 합류하면서 유튜브는 양쪽 진영의 무대로 성장하게 됩니다. ‘진성호방송’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182만 명,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채널의 구독자는 159만 명에 달합니다.
시사·정치 유튜브 채널의 위상은 상당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박 전 대통령이 방송이 아닌 정규재TV와 단독인터뷰에 나서면서 주목받았습니다. 이어 치러진 2020년 총선에서 황교안 대표 체제의 미래통합당은 당 지도부가 ‘신의한수’ 등 유튜브에 출연하며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이번 총선 때 이재명 대표가 총선 직후 ‘뉴스공장’을 찾아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왜 시사·정치 유튜브에 열광하는가
한국은 시사·정치 유튜브에 ‘과몰입’하고 있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발행한 <디지털뉴스리포트 2023 한국>에 따르면 한국 응답자의 53%는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이용했습니다. 유튜브에서 주요 언론의 보도를 시청하는 경우도 포함된 수치라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46개 조사대상국 평균(30%)을 크게 웃도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이 조사에서 발견되는 ‘특이점’은 한국은 ‘나와 같은 관점을 공유하는 언론사의 뉴스’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높다는 점입니다. 2020년 조사 대상국 가운데 4위를 기록할 정도입니다.
한국은 정치대립이 극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사·정치 유튜브가 성장하면서 특정 정당 지지층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한국의 언론 지형이 정파적이라고 해도 반론을 구한다거나, 기계적 중립을 지키려는 경향은 있습니다. 정치인을 인터뷰할 때는 ‘공격적 질문’을 합니다. 언론 중재 및 방송심의 제도가 강력하게 작용하기도 합니다. 반면 대부분의 시사·정치 유튜브는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한쪽 입장만 대변해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사람들의 주목도는 높아지고 수익은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2021년 발표된 <유튜브는 확증편향을 강화하는가?: 유튜브의 정치적 이용과 효과에 관한 연구>는 유튜브의 정치적 이용이 실제 정치적 신념을 강화하는데 영향을 미친다고 밝힙니다. 확증편향은 정치적 성향이 강할수록, 그리고 추천 기능을 활발하게 이용할수록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폭로’ 주도하고 음모론 키우는 유튜브
선거 기간은 시사·정치 유튜브의 ‘대목’과 같습니다. 2022년 대선미디어감시연대는 대선 기간 유튜브 채널의 정치적 편향성과 선정성이 극대화됐다고 진단합니다. 보고서는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채널들은 모두 정치적 편향성을 강화하고 있었으며, 자극적 표현 등의 선정성이 두드러지고 있었다”며 “편향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과거보다 더 정파적인 내용을 전달하였으며, 더욱더 진화된 표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목을 끌기 위해 선정적 콘텐츠를 올리게 되는 유튜브의 경쟁 구도와 선거가 결합한 결과입니다.
선거 국면에서 유튜브 채널을 중심으로 지지층을 결집하고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취재’를 하는 유튜브 채널이나 유튜브 기반 언론은 선거판을 뒤흔드는 폭로를 합니다. 지난 대선 당시 가로세로연구소는 조동연 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의 혼외자 의혹을 집중 제기했고 조 위원장의 사퇴로 이어졌습니다. 열린공감TV는 김건희 여사가 과거 접대부였다는 일방적 주장을 반복적으로 내보냈습니다.
일부 시사·정치 유튜브는 ‘음모론’의 공간으로 진화하기도 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음모론은 보수성향 시사·정치 유튜브의 단골 소재였습니다. 19대 대선 국면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계기가 된 태블릿PC 조작설이 제기됐고 2020년 총선 직후엔 개표 부정 음모론이 널리 퍼졌습니다.
이제는 정치권도 ‘거리 두기’
물론 최근에는 유튜브 콘텐츠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보다 강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일부 보수성향 시사·정치 유튜브가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서 중도층과 멀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0년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음모론을 주장하는 유튜브 채널에도 출연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2024년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의식적으로 거리를 뒀습니다. 허식 경기도의회 의장이 5·18 북한군 침투설 기사가 담긴 신문을 배포하자 “국민들께서 전혀 공감하지 않으시는 극단·혐오의 언행을 하시는 분은 우리 당에 있을 자리가 없을 것”이라며 단호하게 대처하기도 했습니다.
정규재TV의 정규재씨가 총선 이후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보수 유튜브 시청 자제”를 촉구한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그는 보수 유튜브 채널들이 현실을 보여주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며 “보수가 그나마 얼마 남지 않는 자원들을 부정선거와 5·18 북괴군 개입설 등의 음모론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런 얘기를 하고 있으면 젊은 사람들이 뭐라 그러겠나”라고 비판했습니다.
끊어야 할 ‘뉴스 도리토스’는?
시사·정치 유튜브에 비판적 시선을 보이면 ‘언론은 다르냐’는 비판이 제기되곤 합니다. 언론은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는 교과서적 답변이 가능하지만 온라인 저널리즘 환경에서 자격 미달의 뉴스가 많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언론사인지 아닌지는 본질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요건을 갖춰 등록만 하면 언론을 만들 수 있습니다. 5·18 북한군 침투설을 쏟아낸 뉴스타운TV를 운영하는 뉴스타운은 언론사로 등록돼 있습니다. 더탐사와 딴지일보도 언론사로 등록돼 있습니다.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내용입니다. 언론인지 아닌지를 떠나 의혹 제기를 하는 이가 있다면 믿을 만한 출처가 있는지, 객관적인 증거가 있는지, 반론이 적절히 제시됐는지 등을 따질 필요가 있습니다.
유튜브에 빠졌다면 스스로 ‘필터’를 깨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봉미선 EBS 정책연구위원은 저서 <유튜브의 이해와 활용>을 통해 “결국 이용자가 현명해지는 방법밖에 없다. 더 이상 유튜브 알고리즘에 끌려다니지 말고 각자의 의지에 따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리터러시 개념과 역량에 기반해 분별력을 갖고 콘텐츠에 접근할 때 단순한 수용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미디어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짐 반데헤이(Jim VandeHei) 악시오스 CEO는 <건강한 미디어 다이어트> 기사를 통해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에 주목해야 할 미디어와 외면해야 할 미디어를 언급합니다. 뉴욕타임스 등 규모가 크고 저명한 언론 기사를 읽을 것을 권하며 동시에 각각 진보와 보수성향의 필터버블을 깰 수 있는 버블버스터즈(Bubble-bursters)를 추천합니다. 진보 성향인 사람이 읽어야 할 보수매체나 칼럼니스트를 추천하는 식이죠. 그는 “민주당 성향의 독자들은 트럼프와 공화당원을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존재하지 않는 척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다음 단계로 “미디어 다이어트를 위해선 건강한 음식 섭취뿐만 아니라 ‘뉴스 도리토스’(Doritos)도 끊어야 한다”고 언급합니다. 도리토스는 스낵 과자의 이름입니다. 끊어야 할 ‘뉴스 도리토스’는 신뢰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유튜브 쇼츠 같은 소셜미디어 소스와 출처 불명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 등입니다. 우리 스스로 ‘버블 버스터즈’를 갖고 있는지, 버려야 할 ‘뉴스 도리토스’는 무엇인지 자문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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