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시세에서 전기차의 감가율이 하이브리드차량 대비 최대 2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 시장에 불어닥친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현상과 가격 할인 경쟁이 중고차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자동차는 일반적으로 주택 다음으로 비싼 ‘제2의 자산’인 만큼 중고차값 하락은 전기차 구매를 고려하는 소비자들의 선택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중고차 거래 플랫폼인 첫차에 따르면 2022년식 현대자동차의 준중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아이오닉5’의 중고차 감가율은 17%다. 같은 브랜드의 동급 SUV인 ‘투싼’의 하이드리드 모델의 감가율(9%)의 1.8배에 달한다. 투싼 가솔린 모델의 감가율은 8%, 디젤은 15%였다. 같은 해 동일 브랜드 SUV를 구매한 뒤 중고차 시장에 내놨을 때 연료별 가격 하락폭이 전기차에서 가장 심하게 나타났다는 의미다. 이에 더해 자동차 업계에서 사실상 퇴출 수순을 밟고 있는 디젤보다도 가격 하락폭이 더 심했다.
기아의 2022년식 준중형 전기 SUV인 ‘EV6’ 중고차의 경우에도 감가율이 22%로 나타났다. 같은 해 출시된 동급 기아 SUV ‘디 올 뉴 스포티지’ 중고차는 디젤 감가율이 7%, 가솔린은 8%였다. 하이브리드(9%)와 비교하면 감가율이 2.4배다.
현재 주요 중고차 시장에 매물로 나와있는 자동차들의 평균 가격 추이를 살펴봐도 전기차의 부진이 두드러진다. 케이카가 주요 중고차 플랫폼에 공개된 매물들을 분석한 결과 이달 국산 전기 중고차들의 평균 가격은 2311만 원으로 1년 전보다 22.4% 급락했다. 같은 기간 △가솔린 중고차의 평균 가격은 12.9% △하이브리드는 11.1% △디젤은 8.3% 각각 하락했다. 자동차 내수 시장이 얼어붙어 중고차 가격이 전체적으로 하락하는 가운데 전기차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중고 전기차 가격 하락이 두드러진 결정적 원인은 ‘전기차 캐즘’이다. 지난해부터 경기 둔화, 전기차 충전 인프라 부족 등을 원인으로 업계에 캐즘이 심화됐는데 그 여파가 중고차 시장까지 밀어닥친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소비자 불안감도 영향을 미쳤다. 오래 사용한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에는 충전 효율이 떨어질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우려가 중고차 가격 방어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했다.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영세 중고차 업체의 경우에는 중고 전기차 배터리의 성능 상태에 대해서 고객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며 “가뜩이나 전기차 화재에 대해 경계하는 소비자들이 구매를 결정할 때 망설이는 요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테슬라를 중심으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 할인 경쟁이 벌어진 것도 중고차값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중국 비야디(BYD)와의 경쟁이 심화되자 테슬라는 ‘차를 싯가로 파느냐’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수시로 가격을 내렸다. 지난해 전기 승용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역성장했던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최근 몇 달 사이 각종 명목으로 전기차 할인 경쟁이 붙었다. 일시적 할인이라 하더라도 해당 가격으로 소비자 눈높이가 맞춰지면서 중고차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동차가 집을 제외하면 가장 큰 자산인데 내연기관보다 감가율이 크다면 전기차를 선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전기차 중고 가격이 불안정한 것도 전기차 보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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