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4시간을 달려 도착한 경북 울진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자력본부. 원자력발전소의 상징과도 같은 돔 모양의 격납 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최대 190㎝에 달하는 외벽두께, 77m 높이의 건물은 거대한 요새를 연상시켰다.
건물의 주인공은 신한울 2호기. 지난 5일 준공해 이제 막 상업 가동에 들어간 최신 원자력발전기다.
◇이달 가동, 최신 원전 ‘신한울 2호기’
한울원자력본부를 찾은 지난 11일, 삼엄한 경계를 지나 내부로 들어가자 까다로운 출입 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최고 보안을 요구하는 ‘국가보안시설 가급’답게 핸드폰의 반입도 허락지 않았다.
먼저 신한울 1·2호기 주제어실(MCR)을 찾았다. 원전의 두뇌, 비행기 조종석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원전은 2개 호기가 하나의 발전소를 이룬다. 신한울 1호기는 2022년 12월, 2호기는 이달 초 상업 가동에 들어갔다.
MCR은 1·2호기의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 대처가 가능한 곳으로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거대한 모니터링 스크린이 전면에 배치돼있다. 디지털스크린 옆으로 아날로그 설비도 자리하고 있었다. 디지털제어반이 고장 났을 때 백업할 수 있는 설비다.
이순범 신한울발전소 기술실장은 “신한울 2호기는 가장 안전한 최신 원전”이라면서 “생산하는 전력만 2022년 기준, 서울시 전력 소비량의 22%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터빈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핵분열 열로 만든 스팀이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곳이다. 고온·고압의 스팀은 발전기에 연결된 회전날개(터빈)를 분당 1800회 회전시키고 이 과정에서 60hz 주파수의 전력이 생산된다. 고·저압 터빈과 발전기 모두 두산에너빌리티가 제작, 공급했다.
사용 후 핵연료 저장조로 이동하자 푸른색 물속에 촘촘한 격자의 랙이 보였다. 원전은 핵연료 다발을 연료로 쓴다. 4.5m 높이의 연료봉 236개가 하나의 다발을 이룬다. 신한울 각 호기 노심엔 총 241개 다발이 장전되는데 먼저 소진되는 중앙 부위 다발부터 교체가 이뤄지고 이곳에 저장된다.
한수원 관계자는 “새 핵연료 다발도 노심에 장전될 때 이 저장조를 지난다”면서 “사용 후 핵연료를 임시 저장하는 시설이지만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원전 생태계 복원의 상징 신한울3,4호기
외부로 이동하자 토지 조성 공사가 한창인 너른 부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신한울 3·4호기가 들어설 땅으로 면적만 136만㎡(41만평)에 이른다.
신한울3·4호기는 원전 생태계 복원의 상징이다.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됐다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건설 계획이 무산될 뻔했지만 제10차 전기본에 다시 반영됐다.
부지엔 적색·청색 깃발이 100m가 넘는 간격으로 각각 꽂혀 있었다. 적색은 3호기, 청색은 4호기의 원자로가 각각 들어설 곳이다.
부지는 현재 토사를 걷어 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원전은 지진 등에 대비하기 위해 안전한 암반 위에 짓는 게 일반적이다. 암반이 나올 때까지 흙을 퍼내야 하는데 이곳엔 앞서 1·2호기 부지 조성 당시 퍼 나른 흙이 쌓여 있다. 먼저 이 흙을 걷어 내고 다시 암반층까지 땅을 파야 한다. 외부로 옮겨야 하는 흙의 부피만 600만㎥에 이른다. 14톤 대형 트럭이 43만번 운반해야 하는 규모다.
신한울 3·4호기가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적지 않다. 신한울3·4호기는 지난해 6월 부지 정지에 착수했다. 3호기 2032년, 4호기는 2033년 준공이 목표다. 지난해 6월 정부의 실시계획 승인이 났다. 지금은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건설 허가를 남겨둔 상태다.
총건설공사비는 11조7000억원 규모로, 건설 기간 8년 동안 누적 총인원 720만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발생한다. 또 운영 기간 60년 동안 2조원 규모의 법정 지원금을 비롯해 각종 직·간접적인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지역에서도 신한울 3·4호기 공사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공사에 따른 반발, 시위도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 됐다.
그간 침체에 빠진 원전 생태계도 활기를 맞았다. 원전의 핵심 ‘주기기’는 이미 수주사인 두산에너빌리티의 창원 공장에서 제작이 이뤄지고 있다.
무엇보다 반도체 등 국가 주력 산업의 안정적 전력 공급처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한울 3·4호기를 포함한 한울원자력본부 산하 원전이 생산하는 전력은 수도권까지 공급된다.
서용관 신한울제2건설소장은 “신한울 3·4호기는 가장 안전한 원전으로 건설될 것”이라면서 “이 과정에서 지역 경제에 긍정적 파급을 줄 수 있도록 지자체 등과 긴밀히 협조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원전, 구조내진실증시험센터
이튿날 대전에 있는 한수원 중앙연구원을 찾았다. 중앙연구원은 원전 안전성 증진을 위한 기술개발, 각종 현안을 해결하는 연구조직이다. 먼저 기기·구조물의 구조 및 내진성능 실증시험을 시행하는 구조내진실증시험센터로 걸음을 옮겼다.
올 1월 준공한 센터는 내진 시험용 진동대와 구조시험을 위한 정동적 유압가력시스템 등이 설치돼 있다. 시험설비는 원전 주요 기기·구조물의 내진 검증, 극한 시험, 구조건전성 평가에 쓰인다.
실제 지진을 모사하는 진동대에 0.2g(중력가속도)의 지진을 가하는 시험을 시행했다. 지진 흔들림을 최소화하는 장치를 갖춘 설비는 진동대와 분리돼 안정적으로 움직였지만, 비교군 설비는 금방이라도 고꾸라질 듯 높이가 높아질수록 좌우로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이 실험의 핵심 원리는 실제 원전 건설에도 적용된다. 원전은 단단한 암반을 굴착해 조밀하게 철근을 설치하고 콘크리트를 타설해 건설한다. 마치 블록을 끼우듯 암반에 발전소를 꽉 끼우는 것과 비슷하다. 이 때문에 강한 지진에도 안전하게 견딜 수 있다.
원전의 내진설계 기준은 일반 건축물과 그 개념 자체가 다르다. 건축법은 ‘붕괴방지와 인명 안전’이 목표다. 원자력안전법은 ‘안전기능이 손상되지 않는 정상 가동’을 목표로 한다. 즉, 같은 내진설계라고 해도 건축물은 인명 보호가 목적이므로 균열과 주거 기능 훼손이 허용되지만 원전은 건물의 균열 등 구조물의 손상 없이 안전 기능이 평상시와 같이 작동돼야 한다.
박동희 한수원 중앙연구원 구조내진그룹장은 “발전소 암반 수직 아랫부분에서 지진이 발생한다는 가정으로 4G까지 테스트를 수행할 수 있다”면서 “우리나라가 지진의 안전지대에 있지만 저희는 단층 조사 등 철저하게 지진에 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AI 활용, 고장을 예측·진단하는 통합예측진단센터
중앙연구원의 통합예측진단(AIMD)센터로 이동했다. 이곳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자동예측진단 모델’을 통해 26개 가동원전의 1만2000여대 주요 설비를 24시간 모니터링한다.
핵심 기술은 디지털트윈이다. 각 원전 설비에 장착한 센서를 통해 디지털발전소를 구현하고 실제 데이터를 분석해 이상징후를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지난 10여년간 누적된 데이터에서 특징을 추출, 머신러닝기술을 활용해 설비 상태를 정밀하게 분류함으로써 정확한 진단결과를 도출한다. 또, 동종 설비 비교진단을 통해 빈도 높은 결함, 고장 부품 등 유사 고장의 근본 원인도 찾아낸다.
AIMD센터는 설비 진동분석 전문가를 포함해 총 6명이 상주 운영한다. 자동예측진단 시스템을 통해 하루 평균 100여 대 설비상태를 자동 진단한다. 지난해 자동예측진단기술을 활용해 총 14건의 주요설비 고장을 예방하는 효과도 거뒀다.
한수원은 원전 수출시에도 디지털트윈 기반의 통합예측진단 모델을 패키지로 구성하고 있다.
예송해 한수원 디지털플랜트기술그룹 예송해 부장은 “통합예측진단센터는 철저한 예방 중심 시스템으로 발전소의 안전을 지키는 곳”이라며,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AI 기술을 발전시키고 잘 활용하면 예측의 신뢰도가 높아지고 원전의 안전성도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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