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찾은 경기 화성시 남양읍 현대자동차그룹 남양기술연구소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덥고 건조하고, 시끄럽더니 또 엄청 조용하기도 한 곳’이다.
섭씨 영하 40도∼60도의 환경을 구현해 극한의 날씨가 차량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는 ‘환경풍동시험실’은 이날 맛보기용으로 온도를 35도에 맞췄는데도 숨이 턱 막히고 땀이 주룩주룩 흘렀다. 반면 습도에 민감한 2차전지를 다루는 ‘배터리 분석실’은 취재진을 위해 습도를 낮추는 드라이룸 기능 작동을 멈췄는데도 다른 공간보다 현저히 건조하단 느낌이 들었다.
근처 ‘상용시스템시험동’은 귀가 먹먹할 정도로 적막감이 흘렀다. 조용한 환경에서 차량 소음을 확인하기 위해 7.5m 높이로 쌓아 놓은 흡음재 1만3000개가 모든 소리를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반대로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에서는 모터와 인버터 등이 내는 ‘위이잉’ 하는 특유의 기계음이 시험실을 가득 채웠다.
1995년에 세워져 1만4000여 명이 근무 중인 남양기술연구소는 현대차·기아 차량의 성능과 품질을 지켜내는 보루와 같은 곳이다. 세계 3대 자동차 시상식 중 ‘월드카 어워즈’에서 현대차와 기아가 올해까지 3년 연속 ‘세계 올해의 차(WCOTY)’를 수상하는 등 글로벌 자동차 시상식을 휩쓸고 있는 것도 남양기술연구소가 버티고 있는 덕분이다.
전동화 시대를 맞이해 남양기술연구소는 전기차의 품질과 성능 비교우위를 이어가야 하는 특명도 안고 있다. 미국 테슬라, 중국 비야디(BYD)가 급부상하고 있고, 중국의 정보기술(IT) 대기업인 샤오미도 최근 첫 전기차 ‘SU7’을 선보이는 등 전기차 업계에는 강한 경쟁자들이 수두룩하다. 현대차와 기아는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으로 빠르게 전환해 선두권 업체들에 응수하면서 동시에 안전·품질 이슈를 철저히 관리해 아직 엔지니어링 노하우가 부족한 후발 업체와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현대차는 지난해 연구개발(R&D) 예산으로 전년 대비 17∼20% 늘어난 4조1391억 원을, 기아는 2조6092억 원을 집행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부터는 2026년까지 3년간 R&D에 31조1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최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남양기술연구소 직원들은 품질과 안전에서 차별성을 보이려 노력하고 있다. 길이 20m, 너비 10m, 높이 6.6m에 달하는 환경풍동시험실에서는 수소전기 트럭인 ‘엑시언트’를 앞에 두고 3.3m의 대형 팬으로 시속 120km의 기류를 만들어 고속 주행 시에도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는 식이다.
이강웅 현대차그룹 상용연비운전성시험팀 책임연구원은 “(현대차에서 상용차 개발을 담당하는) 마틴 자일링어 부사장도 메르세데스벤츠에서 왔는데 벤츠에도 이 정도의 규모의 장비는 없다고 한다”고 강조했다.
로봇이 동원되기도 한다. 운전석에 장착된 로봇이 사람 대신 기어, 액셀, 브레이크 등을 조작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로봇 팔이 차량의 문을 일정 강도로 여닫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충분한 내구성 데이터 확보를 위해 로봇이 24시간 내내 몇 달간 시험을 계속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남양연구소에서는 타사 제품에 대한 벤치마킹 작업도 진행된다. 배터리 분석실에서는 국내외 제조사들의 배터리를 분해한 뒤 물질 간 결합을 분석하는 라만분광분석기로 살펴보기도 했다.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에서도 수입차 구동 시스템을 살피는 시험을 진행하기도 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런 것까지 살펴보느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품질 이슈와 관련해 세세하게 살피고 있다”며 “전기차 기술이 상향 평준화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작은 차이로부터 더 큰 상품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성=한재희 기자 hee@donga.com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