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의 ‘카니발’ 2열 우측 좌석에 앉아 있던 도중 문득 봄바람이 아직 좀 쌀쌀하다고 느껴져 ‘엉따’를 요청해봤다. 대화할 때 정도의 평범한 데시벨(dB)로 말했는데 카니발은 차량 내 음악과 서너 명이 내뱉는 잡담 소리를 뚫고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곧바로 열선시트 작동 버튼에 노란색 불빛이 들어오며 엉덩이가 따뜻해졌다. 별로 춥지도 않은데 무슨 ‘엉따’냐 눈을 흘기던 동승객의 좌석도 혹시 같이 뜨거워진 것은 아닌지 살피니 그렇지는 않았다. 어느 좌석이라고 말도 안 했는데 발화자를 귀신같이 찾아내 2열 우측 열선시트만 작동시킨 것이다.
27일 서울 서초구 시내에서 카니발 신차에 새롭게 장착된 ‘멀티존 음성인식’ 기능을 사용해봤다. 멀티존 음성인식은 2열에서도 ‘헤이 기아’라고 부른 뒤 요청 사항을 말하면 맞춤 서비스가 작동되는 신기술이다. 이는 지난해 말 3년여 만에 출시된 카니발의 상품성 개선 모델에 현대자동차·기아 차량 중 최초로 장착됐다. 7∼9인승 카니발은 승객이 많은 가족용 차량이기 때문에 이러한 기능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지녔다.
그동안의 차량은 음성 명령 기능이 주로 1열에서만 작동했고, 2열에선 천장에 달린 음성인식 요청 버튼을 손으로 누른 뒤 명령어를 외쳐야 했다. 그나마도 ‘2열 우측 자리 엉따 해줘’라고 구체적으로 부탁하지 않으면 괜한 사람의 엉덩이를 달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신형 카니발에는 탑승자의 목소리를 감지하는 지향성 마이크 네 개가 차량 1열 좌우, 2열 좌우 천장에 달려 있다. 지향성 마이크는 특정 방향에서 입력되는 소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돼 있다. 탑승자가 ‘헤이 기아’라고 부르며 요청 사항을 말하면 네 개의 마이크가 소리를 분석해 발화자가 위치한 쪽에 맞춤 응대를 해주는 것이다. 멀티존 음성인식은 명령어를 0.4초 만에 인식하지만 차량이 내비게이션을 비롯한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 이에 대해 반응하는 과정에서 응답속도가 1.5초까지 늘어날 수 있다.
노재근 현대차그룹 책임연구원은 “차량 내부 음악이나 영상 음원은 마이크에 입력되지 않도록 하거나, 주변 대화나 주행 소음을 분리하는 기술을 적용했다”며 “차량 내에서 90dB 크기로 6시간 동안 미디어가 재생되는 도중에 멀티존 음성인식의 오인식은 2번만 발생해 인식률이 약 9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의 설명대로 멀티존 음성인식은 주변이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인식률이 높은 편이었다. “나 더워”라고 명령어를 입력하자 앞좌석에 있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서 “공조와 통풍시트 설정을 변경할게요”라는 대답과 함께 조치가 취해졌다. 옆 사람과 대화하던 도중에 갑자기 “헤이 기아. 테일게이트(트렁크) 열어줘”라고 말해도 곧바로 뒤 트렁크가 활짝 열렸다.
다만 앞좌석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서 다른 기능이 작동되는 도중에 2열에서 음성명령을 시도하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은 다소 아쉬웠다. 멀티존 음성인식은 카니발 신차의 시그니처 트림(4252만 원)과 그래비티 트림(4405만 원)에 기본 옵션으로 장착돼 있다.
황승현 현대차그룹 책임연구원은 “현재는 더 뉴 카니발에 적용했지만 추후 제네시스에도 적용할 예정”이라며 “하드웨어 성능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에 현대차그룹 전 차량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걸리긴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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