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대항마’로 기대를 받으며 2020, 2021년 미국 증권시장에 상장한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상장 폐지 및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현상), 저가 경쟁, 중국 업체의 부상 등 업계에 불어닥친 ‘삼중고’를 버텨내지 못하고 자금줄이 말라가는 것이다.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인 피스커는 25일(현지 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로부터 상장 폐지 통보를 받았다. NYSE는 성명을 통해 피스커의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상장에 더는 적합하지 않다고 밝혔다. NYSE는 일정 기간 평균 주가가 1달러를 밑돌면 상장 폐지 여부를 심사할 수 있다. 피스커의 주가는 1월 12일 1.03달러에 턱걸이한 후 계속 1달러를 밑돌았다. 이날 피스커 주식은 연초 대비 94.5% 하락한 0.09달러로 거래가 정지됐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피스커가 파산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미 나스닥에 상장한 전기차 업체 가운데 지난해 6월 미국 로즈타운모터스가, 지난달 영국 어라이벌이 파산 신청을 하는 등 줄파산의 암운이 드리웠다.
다음 상장 폐지 타순은 수소·전기 트럭 업체인 니콜라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니콜라의 주가는 지난해 12월 4일 1.01달러 이후 이날(0.74달러)까지 줄곧 1달러를 밑돌고 있다. 미 금융당국은 이미 지난해 5월과 올해 1월 두 번에 걸쳐 상장 폐지 가능성을 경고한 상태다.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일제히 경영난에 빠진 핵심 원인은 전기차 수요 둔화다. 이들 업체가 증시에 상장했을 때인 2020, 2021년만 해도 기대감이 들끓었지만 현재 전기차의 성장은 둔화됐다. 충전 인프라 부족,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등의 문제가 겹친 탓이다.
그러자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선두 주자인 중국 BYD와 미국 테슬라는 할인 경쟁을 펼치면서 업계 수익성을 악화시켰다. 이와 함께 지리자동차, 니오, 엑스펑 등 중국 업체들이 전기차 시장에서 급부상하면서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들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졌다.
전기차 스타트업들은 외부 수혈을 통해 위기 탈출을 꾀하고 있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피스커만 해도 이달 중순 기존 투자자로부터 1억5000만 달러의 자금 조달 약속을 받았으나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리비안은 지난해 10월 15억 달러 규모의 전환사채(CB) 발행 계획을 밝혔으나 아직까지 자금 조달이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루시드는 25일(현지 시간) 최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공공투자기금(PIF)의 계열사로부터 10억 달러를 추가 수혈해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앞서 2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사우디가 유일한 생명줄”이라고 평가하는 등 시장의 시선은 차갑다.
지난해 말 기준 루시드의 현금 보유액은 14억 달러, 리비안은 79억 달러다. 두 회사의 지난해 순손실 규모가 각각 28억 달러, 54억 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적자를 줄이거나 신규 투자를 유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전기차 스타트업들의 경영난으로 미국 전기차 시장이 크게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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