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무 너 아나운서가 고모음 발음하는 걸 사투리라고 하는 건 큰일 나는 거야.”
지난해 12월 SBS 예능 프로그램 ‘강심장VS’의 ‘꼰대 vs MZ’ 특집에 ‘꼰대’로 출연한 손범수 아나운서가 한 말이다. 전현무 진행자가 고모음을 쓰는 손범수 아나운서를 가리켜 “요즘 유행하는 옛날 서울사투리의 원조”라고 하자 발끈한 것이다.
손범수 아나운서는 장음과 단음을 명확하게 구분해 발음했고 장음을 소리 낼 때 ‘ㅓ’ 발음이 ‘ㅡ’에 가까워지는 ‘고모음’을 쓰며 “제대로 된 표준 발음”이라고 했다. 현실에서 장단음 구분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가 강조하는 원칙은 이날 콘셉트인 ‘꼰대’와 결합해 웃음을 자아냈다.
기계 음성이 쏟아지고 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숏폼 영상을 내리다 보면 기계음성이 들어간 영상이 빈번하게 튀어나온다. 아주 어릴 때부터 기계음성의 홍수에 빠져 있으면 언어 사용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우려가 들 정도다.
이런 가운데 지방자치단체와 방송사까지 가세했다. YTN은 일부 온라인 뉴스를 기자나 아나운서가 아닌 기계음성으로 전달한다. 최근 제주도는 도정정책 뉴스인 ‘위클리 제주(Weekly JEJU)’에 AI 아나운서인 제이나를 선보여 주목 받았다.
기계음성 서비스마다 질적 차이가 있지만 이들 기계 음성은 신경이 쓰일 정도로 ‘튀는’ 구간이 적지 않았다. 사람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 못하는 점은 차치해도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끊어 읽어야 할 대목을 끊어 읽지 못하거나, 반대로 끊어 읽어야 할 대목을 이어 말하거나, 평서문인데 의문문처럼 느껴질 정도로 몇 음절에서 음의 높낮이가 부자연스럽게 튀곤 한다.
우리가 일일이 지키지는 않더라도 원칙은 중요하다. 라디오나 TV를 통해 아나운서의 발음을 들으면 바른 우리말을 상기할 수 있다. 대중이 일상에서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KBS ‘바른말 고운말’ 같은 프로그램이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공공기관과 방송은 언어를 가장 원칙적으로 구사해야 할 주체다. 지자체와 방송사의 뉴스까지 기계가 조금씩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꼰대가 사라지는 것 같다. 방송 뉴스 자막에 오타가 있으면 방송사고가 되는데 우리말 원칙을 파괴하는 음성에는 문제 의식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혁신’으로 포장되고 있다.
지금도 기계음성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는데 방송사와 지방자치단체의 도정뉴스까지 가세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이들이야말로 잘못된 언어가 쏟아지는 오늘날 최후의 보루로, ‘꼰대’로 남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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