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의료계가 의대정원 확대를 두고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의대정원 확대를 위한 실질적인 움직임에 돌입하며 굳히기 작전에 들어갔다.
사퇴서를 제출한 전공의와 휴학계를 낸 의대생의 단체행동에 이어 의료현장을 지키고 있는 전임의와 교수진들도 의대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을 시작할 것이라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어, 이번 주가 의료파업이 장기화 국면에 돌입할지 여부가 결정되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교육부, 대학에 의대 증원 공문 보내…정부, 진료체계 공백 없도록 비상체재 가동
정부 등 관련 기관에 따르면 최근 교육부가 의과대학을 운영하고 있는 40개 대학에 의대 정원 증원을 신청하도록 공문을 발송, 각 대학에 여건과 잠재력에 따른 적극적인 증원 신청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또 교육부는 의대생 집단행동, 국립대 병원 등 의과대학 현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교육부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의과대학 현안 대응 TF’를 발족한다.
이는 정부가 3월 안에 의대정원 추가배정을 정책적으로 못 박고 기존 목표대로 의대정원 확대를 완수하겠다는 의지로 엿보인다. 정부가 사직서 및 휴학계를 제출한 전공의, 의대생들의 의료공백 사태에서 의대증원 수를 축소해 협상을 시작할 것이란 일각의 예상을 일축한 셈이다.
이로써 정부는 전공의들의 근무지 이탈 행동에 공백 없이 진료체계가 운영될 수 있도록 비상진료대책에 강화하고 나섰다. 복지부는 의사 집단행동 대비 비상진료대책에 따라 비상진료체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전국 409개 응급의료기관 응급실의 24시간 운영상황을 점검·관리하고 있다.
소방청은 ‘구급상황관리 비상대책본부’를 운영하고 있으며, 119구급상황관리센터 등의 의료현장 이송상황을 지속 점검하고 있다. 국가보훈부는 비상진료체계 대응을 위한 대책본부를 구성, 보훈병원 운영 상황을 점검하고 조치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법무부는 법률지원단을 통해 불법 집단행동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구제방법 등을 안내하고 있고, 복지부에 검사 1명을 파견해 신속하고 정확한 법률자문이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다. 검찰청에서도 검·경 협의회를 개최해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신속한 사법처리를 지시했다.
의협, 내달 3일 총동원 집회 개최…의대생 휴학계 검토 끝나는 이번 주 고비
의료계는 의대정원 2000명 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 중단을 촉구하는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선언했다.
대한의사협회는 결의문을 통해 “우리나라는 OECD 통계에서 특히 저렴한 비용으로 국민 모두가 의료서비스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나라로 의료접근성에서 세계 최상위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의사수가 부족하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이다”며 “빈번한 형사소송 등 법적 부담까지 부담해야 하는 필수의료 영역의 특성을 감안할 때, 결코 증원으로 늘어난 의사인력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로 유입될 것으로 단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10년 뒤에나 신규 전문의가 배출되는 동안 당면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의사부족 실태를 해결하는 것에는 아무런 구조적 정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아울러 정부는 필수의료 분야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는 국민의 자유로운 의료선택을 제한하고 의료비용 억제에만 주안점을 둔 잘못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의협은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내달 3일 여의도에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반면, 의대 교수들은 개원의들로 구성된 의협이 현 의료공백 사태를 대변하기 힘들다며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정부와 만나 신속한 해결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도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의료계 집단행동을 주도하고 있는 의사들이 전공의와 의대생이라는 점을 고려해, 이들과 가까이 있는 교수들이 정부와 협의해야 한다는 취지다. 의과대학의 입학정원 조정과 필수의료에 관한 논의 역시 의대와 대학병원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각 대학에서 의대생들의 휴학계 검토가 이번 주 완료되는 시점이라 의료 공백 장기화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만약 의대생들의 휴학계가 반려되면 이들은 수업 거부를 감행, 유급을 받는 다수의 의대생이 속출할 예정이다.
전임의·교수진까지 근무지 이탈 조짐…정부 “29일까지 의료현장 복귀 시 정상 참작”
병원을 떠난 전공의의 빈자리를 전임의와 교수 등이 채우고 있지만, 일부 병원에서는 이들마저 의료 현장을 이탈하려는 기류가 감지돼 의료대란이 더욱 악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부 교수들 사이에서는 진료 현장을 떠나는 ‘겸직 해제’ 발언까지 나오고 있으며, 조선대병원에서는 재계약을 앞둔 4년 차 전임의 14명 중 12명이 재임용포기서를 제출하고 3월부터 병원을 떠나기로 했다.
이에 빅5 대형병원들은 수술과 진료 일정을 절반까지 줄이고, 남아있는 의사 인력을 최대한 활용해 전공의 집단사직에 대처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수술을 평소의 절반으로 축소했으며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도 수술일정을 45∼50%로 축소했다. 서울성모병원과 서울대병원도 진료과별 상황에 따라 수술과 진료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근무지 이탈 전공의들에게 29일까지 의료현장으로 복귀할 시 현행법 위반에 대해 최대한 정상 참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의료파업 집단행동이 전문의로 번질 우려가 나오면서 정부가 내놓은 중재안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주요 100개 수련병원 점검 결과 23일 저녁 기준 소속 전공의의 약 80.5% 수준인 1만34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상황이다. 다만 전공의들이 해당 기안 내 정부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무더기 행정·사법처리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관계자는 “집단행동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전공의 또는 의대생들 개개인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본인이 하는 행동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신중히 생각해봐야 한다”면서도 “다만 의대를 비롯한 대학병원 내에서 정부의 강압적 행정에 대항해야 한다는 투쟁 의지가 워낙 강해 이들 행동이 쉽게 꺾일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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