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 시간) 일본 도쿄 시나가와구의 한 행사장에는 100명 가까운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영국 국기가 그려진 천이 걷히자 빨간 색상의 애스턴마틴 스포츠카 ‘밴티지’가 날렵한 자태를 드러냈다. 1950년 처음 선보인 대표 스포츠카의 완전변경 모델이 공개된 것이다. 이르면 하반기(7∼12월) 국내에서 선보이기에 앞서 애스턴마틴의 아태지역(APAC)을 책임지는 그레그 애덤스 총괄사장을 신차 공개 현장에서 만났다.
1913년 영국에서 시작한 애스턴마틴은 영화 ‘007’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가 타는 ‘본드카’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프로골퍼 박세리와 방송인 노홍철 등이 타는 것으로 유명하다.
첫 질문으로 애스턴마틴의 매력을 물었다. 애덤스 총괄사장은 “포뮬러원(F1) 애스턴마틴 팀의 전설적 드라이버 ‘페르난도 알론소’가 된 것 같은 스릴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알론소는 32차례 그랑프리 우승을 거머쥔 입지적 인물이다. 애덤스 총괄사장은 “애스턴마틴 양산차 공장이 F1 차량 공장, 트랙과 인접해 있어 고성능 기술들을 테스트하고 양산차에도 접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20년 회사를 인수한 로런스 스트롤 애스턴마틴 회장은 캐나다 출신의 억만장자로 모터스포츠에 거금을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아들인 랜스 스트롤도 F1 애스턴마틴 팀의 드라이버로 활약 중이다.
애덤스 총괄사장은 “최근 한국에서 넷플릭스 ‘F1 본능의 질주’ 다큐멘터리가 꾸준히 인기를 얻으며 애스턴마틴에 대한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100년이 넘는 애스턴마틴이지만 한국 시장에서 판매를 시작한 건 2015년이다. 10년이 채 되지 않은 만큼 다른 럭셔리카 브랜드에 비해 ‘도전자’로서 시장을 개척 중이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애스턴마틴 국내 판매량은 2020년 42대에서 2023년 79대까지 매년 늘고 있다. 애덤스 총괄사장은 “지난해에만 10여 차례 한국을 다녀가며 한국 사업 다각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데일리카로 많은 짐을 싣고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판매도 늘려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연기관 최고 성능을 뽐내는 ‘F1 강자’ 애스턴마틴이라면 전기차 등 새로운 변화에 다소 보수적이지 않을까. 예상과 달리 애덤스 총괄사장은 “평소 테슬라와 BMW ‘I3’ 전기차 모델을 즐겨 탔다”며 “애스턴마틴도 변화하는 미래에 대응해 이르면 내년 첫 번째 전기차를 세상에 내놓을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애덤스 총괄사장은 2012∼2013년 미국의 전기차 스타트업 두 곳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테슬라 등 전기차가 본격적으로 세상이 나오기 이전이다.
지난해 애스턴마틴은 신생 전기차 기업인 ‘루시드모터스’에서 전기차 파워트레인과 배터리 핵심 기술들을 공유받기로 했다. 애덤스 총괄사장은 “111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해서 가장 최신의 고성능 기술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라며 “루시드는 전기차 포뮬러 레이싱에서 뛰어난 기술을 보여준 만큼 ‘고성능 브랜드’라는 방향이 우리와 잘 맞았다”고 설명했다.
애덤스 총괄사장은 크라이슬러, 닛산, 포드, 페라리, 마세라티 등 수많은 자동차 회사를 거친 베테랑이다. 그는 “한 살이 되기 전 걷기보다 말을 먼저 배웠다고 한다. 그때 내뱉은 말들은 ‘엄마’ ‘아빠’가 아니라 ‘도요타’, ‘포드’와 같은 자동차 브랜드였다”며 “이후 운명처럼 32년 넘게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작은 공간 안에 엄청난 기술들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는 게 즐겁다”고도 덧붙였다.
전기차 기술의 선두두자 ‘테슬라’에 대해서는 독특한 평가를 내놓았다. 모든 조작 버튼을 하나의 터치스크린 화면에 모아둔 방식에는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 그는 기자에게 신차 밴티지 내부의 여러 가지 조작 버튼들을 직접 만져 보라고 권했다. 그러면서 “다이얼을 돌리고 푸시 버튼을 누르는 디테일한 터치감과 내부 소재의 질감들이 고급스러움을 만든다”며 “명품 핸드백이 어떤 것도 느끼기 어려운 플라스틱 가방으로 제작되면 사고 싶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애덤스 총괄사장의 좌우명은 ‘인생은 짧고, 단 한 번만 산다’이다. 그는 “이 좌우명을 실천하기 위해 사람들과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가지려 노력한다”며 “직원들과 즐겁게 차를 만들고 고객들이 차를 통해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도쿄=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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