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사들이 인슐린을 평생 맞아야 하는 1형 당뇨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세포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부분 환자에게 췌장섬세포(췌도)를 이식해 인슐린 분비 기능을 회복시키는 기전으로, 면역거부반응 등의 부작용 해결을 위해 최근에는 캡슐화 기술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1형 당뇨병은 유전, 환경적 요인 등으로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췌장섬세포에서 인슐린을 분비하는 베타세포를 파괴해 인슐린을 전혀 분비하지 못하는 질환이다. 인슐린 분비기능이 일부 남아있어 알약 형태의 먹는 치료제로 혈당 관리가 가능한 2형 당뇨병과 달리 1형 당뇨병 환자들은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는 불편함을 안고 살아야 한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슐린 분비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치료제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미국계 제약사 셀트랜스는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세계 첫 1형 당뇨병 세포치료제 ‘란티드라(성분명 도니슬레셀)’의 품목허가를 승인받았다. 란티드라는 사망한 공여자의 췌장섬세포를 환자의 간문맥(장과 간 사이의 혈관)을 통해 이식해 인슐린 분비기능을 회복시키는 기전의 세포치료제다.
란티드라는 임상에서 우수한 치료효과를 나타내면서 세계 첫 당뇨병 세포치료제로 등극했다. 1형 당뇨병 환자 30명을 대상으로 란티드라를 1~3회 주입한 결과 환자 21명이 최소 1년간, 10명이 5년 이상 인슐린 투여가 불필요한 인슐린 비의존성 상태를 보였다. 췌장섬세포 이식을 통해 환자의 인슐린 분비 기능이 일정 기간 회복됐다는 의미다.
미국 보스턴에 본사를 둔 버택스 파마슈티컬스는 동종유래(allogeneic) 줄기세포에서 분화된 췌장섬세포를 활용한 1형 당뇨병 세포치료제 ‘VX-880’을 개발하고 있다. 버택스는 1형 당뇨병 환자 14명을 대상으로 VX-880를 투여한 임상 1·2상에서 모든 환자가 자체적으로 인슐린을 생산해 혈당 수치가 개선된 결과를 확인했다.
란티드라와 VX-880은 1형 당뇨병 치료의 새 지평을 열었으나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외부로부터 들어온 세포를 공격하는 면역거부반응 등의 부작용을 막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란티드라와 VX-880은 모두 외과적 수술을 통해 간문맥에 약물을 투여해야 하고, 면역거부반응을 피하기 위해 치료 후 장기간 면역억제제 복용해야 한다. 임상에서 란티드라를 투여받은 환자 중 90%는 이 과정에서 간 열상, 복강 내 출혈 등 심각한 부작용을 겪었고 환자 2명은 패혈증과 허혈성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VX-880은 란티드라와 달리 탈수, 설사 등 경증 또는 중증도의 부작용이 임상에서 보고됐으나 의약품 사용과 무관한 사유로 환자 2명이 사망하면서 현재 연구가 중단된 상태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이러한 부작용 문제를 넘기 위해 췌장섬세포를 캡슐화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면역세포가 침투할 수 없는 크기의 캡슐 안에 섬세포를 담아 인체에 투여하는 방식으로 면역거부반응을 피할 수 있어서다.
미국계 제약사 시길론 테라퓨틱스는 줄기세포에서 분화한 췌장섬세포를 자체 기술로 캡슐화한 1형 당뇨병 세포치료제 ‘SIG-002’를 개발하고 있다. 애피브로머(Afromer)라는 생체조직으로 만든 캡슐은 면역세포의 공격을 막고 췌장섬세포가 캡슐 밖으로 인슐린을 분비할 수 있도록 기능한다.
시길론 테라퓨틱스는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SIG-002가 최대 17주간 혈당 수치를 안정적으로 조절한 효과를 확인했다. 이 기술을 눈여겨본 다국적 제약사 일라이릴리는 지난 2018년 시길론 테라퓨틱스와 공동연구 개발계약을 맺은 데 이어 지난해 이 회사를 약 3억달러(4000억원)에 인수했다.
버택스 파마슈티컬스도 VX-880과 동일한 줄기세포 분화 췌장섬세포를 캡슐화한 치료제 ‘VX-264’를 개발하고 있다. 버택스 파마슈티컬스는 지난해 미 FDA로부터 VX-264의 임상 1·2상 시험계획(IND)을 승인받고 현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1형 당뇨병은 전체 당뇨병 환자의 5% 미만을 차지하며 전 세계에서 약 800만명이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마켓에 따르면 미국, 영국 등 주요 8개국의 1형 당뇨병 치료제 시장은 2019년 49억달러(6조5000억원)에서 연평균 17.2% 성장해 2029년 240억달러(31조7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원규장 영남대의료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췌도를 캡슐로 보호해 면역반응을 막고 인슐린만 나오게 하는 방법이 개발되고 있으나 아직은 실험적인 단계로 임상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한다”며 “면역거부 반응을 해결해도 캡슐 안에서 췌도 세포가 오래 못 살 수 있어 표준화(상업화)를 위해서는 이 문제 또한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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