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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매출 1000억’…밥먹기도 귀찮았던 남자의 성공비결

비즈워치 조회수  

박찬호 이그니스 대표.는 장수하는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성장하는 사업모델을 그려나가고 있다. /그래픽=비즈워치

푸드테크 스타트업 ‘이그니스’는 푸드테크에 올인하는 기업이 아니다. ‘브랜드 디벨로퍼(Brand Developer)’를 지향한다. 다양한 영역에서 장수하는 브랜드를 계속해서 만들며 성장하는 사업 모델을 구축하고 있어서다.

경험에서 비롯한 생존 전략이다. 2014년 설립돼 업력이 10년에 달하는 이그니스는 지난해 348억원을 추가 투자받았고 매출도 2022년 502억원에서 지난해 약 1000억원으로 쑥쑥 성장했지만, 큰 위기도 겪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빠르게 ‘스케일업’하고 경쟁자를 제쳐야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꿈을 품고 마케팅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는데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시장 환경도 급변하면서 회사가 휘청한 경험이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통해 안정적 수익 기반을 만들어야 스타트업 특유의 도전적 사업을 꾸준히 벌일 수 있고, 그런 과정에서 이런저런 실패를 하더라도 탄탄하게 클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최근 박찬호 이그니스 대표를 만나 스타트업 경영 전략을 들어봤다.

그는 “올해 매출은 전년의 두배에 달하는 2000억원을 달성할 것”이라며 “내년에는 IPO(기업공개)도 예정하고 있다”고 했다.

박찬호 이그니스 대표가 비즈워치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비즈워치

‘귀차니즘’에서 탄생한 창업 그리고 10년의 여정

박찬호 대표의 창업 아이템은 ‘귀차니즘(귀찮음의 습관화)’에서 출발했다. 그는 “굉장한 리서치를 거쳐 접근한 창업 아이템은 아니었다”며 “회사를 다닐 때 식사가 불규칙했는데, 필요한 영양소를 모아서 마시면 귀찮은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관련 시장이 이미 성장하고 있었고, 국내에서도 클 수 있다는 판단도 있었다. 

서강대 경제학과 동기인 윤세영 이사와 함께 식사를 대체할 수 있는 단백질 음료를 시장에 선보이게 된 ‘단순한’ 계기다. 둘은 대학생 시절부터 이런저런 창업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이런 까닭에 취업을 한 뒤 자본금을 모아 다시 시도해보자고 뜻을 모은 뒤 결국 실천에 옮겼다. 박 대표는 대우인터내셔널, 윤 이사는 대우건설에서 3년 가까이 일하고 2014년 10월 이그니스를 창업했다.

이듬해 10월 이그니스는 와디즈 펀딩을 통해 단백질 음료수 ‘랩노쉬’를 선보이게 된다. 박 대표는 “기존 제품과 식품영양학도 공부하면서 직접 레시피를 기획했다”며 “샘플을 만들고 한 달 동안 그것만 먹으며 모발·혈액 검사를 통해 건강에 이상이 없는지도 확인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소비자에게 식사를 대체할 수 있다고 추천하려면 직접 먹어 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라며 “건강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그것만 먹었더니 정서적으로 불안해지더라. 한두끼까진 괜찮지만 그것만 먹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며 웃었다.

이후 단백질바, 단백질쿠키 등 다양한 제품군을 랩노쉬라는 브랜드 아래 만들었다. 소다수 ‘클룹’, 닭가슴살 ‘한끼통살’, ‘곤약밥’, 다이어트 식품 ‘그로서리서울’ 등 다른 브랜드도 연이어 내놨다. 자체몰과 편의점, 외부 쇼핑몰을 통해 팔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편의점과 같은 오프라인 매장과 자사몰, 외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이런 제품을 판매하면서 성장을 거듭했다. 2020년 매출은 119억원, 2021년은 146억원, 2022년 502억원, 지난해는 1000억원을 돌파했다. 올해 목표는 2000억원이다.


위기 겪고 경영 전략 바꾸자 보인 길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회사를 빠르게 키우려는 마음에 성급하게 대규모 투자를 했는데, 실패한 것이다. 박 대표는 “2018년에 제품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케팅 투자를 과감하게 했다”며 “빠르게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그 이후부터 2021년까지 회사가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경영 전략을 새롭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스타트업을 하면 매출 규모나 사용자수를 빨리 확대하는 스케일업부터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한다”며 “저도 일단 볼륨을 키우면 어떻게든 된다는 함정에 빠졌는데, 그런 방식이 성공하는 경우는 확률이 낮다. 적절히 투자하고 수익을 놓치지 않아야 회사가 지속 가능하다는 관점으로 바꿨다”고 했다.

이런 관점 변화는 브랜드 디벨로퍼라는 지향점을 세우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박 대표는 “네슬레, P&G(Procter&Gamble) 같이 100년 넘게 버틴 세계적 브랜드는 안정적 사업 구조가 있더라”며 “시장 트렌드는 빠르게 바뀌므로 외부 충격이 와도 흔들리지 않으면서 성장하고 이익을 만들려면 다양한 수익 소스, 그러니까 사업 카테고리가 여럿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0년 스타트업을 하면서 망할 뻔도 하고 투자를 못 받을 뻔도 하면서 자금·인적 리소스가 조금만 부족해도 원하는 브랜드를 만들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빨리 회사를 키운 뒤 매각하고 다른 일을 할 게 아니라, 제가 없어져도 회사는 존재하는 구조를 갖추려면 안정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도전적인 사업을 해도 잘 클 수 있고, 그런 방식이 가치가 있다고 방향성을 잡은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열린 CES에 이그니스가 참가해 개폐형 마개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사진=이그니스 제공

다양한 분야에 대한 도전을 실행에 옮겨 성공한 대표적 사례도 있다. 스타트업 수준의 국내 기업이 독일의 기술 기업 ‘엑솔루션’을 인수하는 흔치 않은 일도 해낸 것이다. 알루미늄캔에 쓰이는 개폐형 마개를 만드는 회사였다. 캔 음료는 한번 열면 구멍을 막을 수가 없는데 이 제품을 이용하면 뚜껑처럼 열고 닫으면서 쓸 수 있다.

이 마개를 사용하는 글로벌 음료 브랜드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매출이 발생하게 됐다. 박 대표는 “개폐형 마개는 생각보다 난도가 있는 기술이어서 2022년에 환경부 장관상도 받았다”며 “지난해 세계 최대 IT소비자 전시회 CES에도 출품했는데, 마그나인베스트먼트로부터 350억원 규모 투자를 받는 계기가 됐다”고 소개했다. 이그니스는 올해 이 제품 연간 생산 규모를 기존 1억개에서 6억~7억개로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면 이 사업에서만 매출이 700억원가량 추가로 발생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추가 브랜드 론칭도 지속할 계획이다. 이그니스는 올해 1월 ‘닥터랩노쉬’라는 건강기능식품을 출시했는데, 상반기 중 뷰티 브랜드도 론칭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추가 인수·합병(M&A)도 열려 있다”며 “앞으로도 어떤 소비재든 키울 수 있다면 인수하거나 직접 만들 것”이라고 했다.

이그니스는 현재까지 미래에셋캐피탈, 빌랑스인베스트먼트, 마그나인베스트먼트, 코오롱인베스트먼트 외에도 전략적 투자사(SI)인 GS리테일, 올리브영 등으로부터 누적 476억원을 투자 받았다. 이들과도 호흡을 맞춰 사업 영역을 계속 확장하고 내년 상장한다는 목표도 있다.

박 대표는 “브랜드는 반복구매가 이뤄질 수 있는 가치를 담는 게 핵심이고, 그렇게 장기간 살아남은 브랜드는 해당 제품의 대명사가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10년 뒤에도 브랜드 디벨로퍼로서 여러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그니스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브랜드 디벨로퍼로 성장하겠단 꿈을 품기까지 초기 공동 창업자가 여전히 굳건한 파트너로 곁에 있다는 점도 박 대표의 이같은 포부에 힘을 더하고 있다. 그는 “회사가 어려울 때는 예민하기도 했고 성향이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저보다는 윤 이사가 더 이해하고 최대한 더 해보려고 노력했다”며 “그래서 윤 이사는 죽마고우가 아니라 어려웠을 때도 함께 버틴 서로의 전우와 같다”고 했다.

비즈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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