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기차 전망을 놓고 설왕설래가 많다. 전기차 시대는 섣부른 평가였고 하이브리드차 판매가 지속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화석연료가 기후 위기 원인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어리둥절해한다. 얼마 전까지 정부가 전기차 전환을 독려했는 데 일각에서 하이브리드 시대를 주장하고 있어서다. 대부분 국민은 기후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캐나다를 비롯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를 선언하는 국가도 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전기차 판매 부진과 하이브리드 판매 호조로 내연차 시대 종언을 고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가 세계 3위 판매 물량을 기록하고 미래차 종합 경쟁력에서도 세계 최고 경쟁력을 보유했던 일본 자동차 업체를 따돌리고 있지만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낮아질까 우려스럽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급부상한 중국은 이른바 신에너지 자동차인 전기차 판매를 세계로 확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의 세계 전기차 시장점유율이 60%를 넘어서자 커넥티드카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자율주행차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연차 분야에서 선진국을 추월하기 어렵다고 간파한 중국 정부와 기업이 미래차에서 승부를 건 결과,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미 중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자동차 수출 중 4분의 1 이상이 전기차다.
정부의 전폭 지원에 힘입어 중국의 속도는 우리를 추월했다. 기업 제휴와 차별화 비즈니스 모델 개발은 중국 소비자 뿐만 아니라 신흥국을 넘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자국 미래차 시장을 중국 업체들이 선점하지 못하도록 각종 규제를 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의 압박은 오히려 중국 정부의 지원 확대와 기업의 혁신역량 강화를 촉진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전기차 업계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에 진입했다. 미국 전기차 창업 기업이 줄줄이 파산하고 경영주가 구속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유럽에서도 창업 전기차 업체들이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중국 전기차 업체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이같은 구조조정은 신산업 초기에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국내에서도 전기차 창업이 이어졌지만 산업에 대한 이해 부족과 수익 모델의 부재 속에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며 위기에 직면했다. 전기차 판매 물량이 과거 디젤차 판매 물량과 비슷한 수준으로 증가한 가운데 이같은 증가율을 계속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세계 자동차 판매가 2017년 사상 최고인 9700만대를 넘었지만 3년 연속 감소했다. 2017년 내연차 판매는 9600만대, 전기차는 130만대를 기록했다. 올해에는 전기차 1400만대, 내연차 7500만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내연차 판매는 2025년 7700만대까지 증가했다가 다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신 전기차 수요는 2025년 2000만대를 돌파할 전망이며 하이브리드 수요는 전기차를 추월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EU 집행위가 발표한 2022년 세계 2500대 연구개발 투자 기업 분석에서 중국 자동차업체 48개가 등재됐다. 국내 업체 9개가 등재된 것과 비교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중국업체의 총연구개발 투자는 221억7000만달러로 우리 기업의 45억8000만달러보다 5배 가까이 많다. 기업당 평균 연구개발 투자는 물론 우리 기업이 47만 달러 더 많다. 하지만, 지난 해보다 등재 기업 수나 투자 총액에서 우리와 격차를 벌리고 있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중국 자동차 부품 업체 수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중국 정부는 2021년 자국 부품 업체 14%가 미래차 부품을 생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 1만개 기업은 넘을 듯하다.
미래차 전환이 부진한 우리 기업 비중과 비교하기 무색할 정도다. 그런데 중국만 미래차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을 대표하던 제너럴모터스(GM) 파산 사례 이후 미국의 미래차 경쟁력도 나날이 강화되고 있다.
테슬라를 앞세운 미국 전기차 업체들은 중국을 따라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 업체의 자국 시장 잠식에 따라 어려움을 겪었던 미국은 1999년부터 전문인력 양성에 적극 나섰다. 미국 정부는 자동차 뿐만 아니라 미래 산업에 필요한 과학·기술·엔지니어링과 수학(STEM)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또, 공정혁신을 추진해 2000년대 비약적 제조업 생산성 향상을 이뤘다. 자국 제조업 단위노동비용이 개선되자 미국 정부는 2010년부터 해외로 나갔던 기업을 다양한 유인책을 제공해 불러들였다. 국민이 제조업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도록 2011년 제조업 주간도 제정했다. 테슬라를 비롯한 미래차 창업도 증가했다.
때문에 미국은 전기차 부문에서는 흑자를 기록 중이다. 2021년 11만명에 이르는 자동차 엔지니어와 2022년 22만명의 전기차 인력이 전기차 산업을 뒷받침한다. 2500대 연구개발 투자 기업 등재수도 37개로 2021년 대비 3개사 증가했고, 연구개발 투자액도 335억8000만달러에 달했다.
독일과 미국 등 선진국 자동차 업계는 사람 중심의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의 자동차 엔지니어는 2021년 13만9000명으로 연간 1만명씩 증가하고 있다. 독일 자동차 생산이 3년 연속 우리보다 적으나 사람 육성은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2500대 연구개발 투자 기업에 독일 자동차 기업은 18개가 등재됐지만 이들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 총액은 522억2000만달러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26개가 등재됐고 투자액은 336억3000만달러지만 과거보다 빛을 잃었다. 매출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은 우리 기업이 평균 1.92%인데 독일은 6.08%, 일본은 4.11%, 미국은 5.14%, 중국은 5.28%를 기록했다.
눈여겨볼 점은 중국 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0.04%라는 것이다. 비교 국가 중 가장 낮아 연구개발 투자를 증대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연구개발 보조금 지원도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국내 자동차 업계 연구개발 투자는 지난해 10조원을 돌파했다. 현대차그룹 의존도가 80%에 육박한다. 이러다 보니 미래차 산업의 혁신을 현대차그룹에 기댈 수밖에 없다. 국내 자동차 산업 생태계의 다양성이 부족해 산업 전반의 혁신역량 부족이 우려된다. 미래차가 전기동력·SDV로 진화하고 고객 욕구를 충족할 목적 기반 자동차(PBV)까지 등장하면서 원가 절감이 과제로 부상했다. 이에 따라 자동차 산업 전반의 디지털화가 지상 과제로 꼽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6월 보고서에서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구조개편 과정에서 정부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전기차 전환에 따라 감원이 불가피한 생산 인력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데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IMF는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 인력을 풍력이나 태양광 등 그린 산업으로 전환 배치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중국 미래차 산업 육성을 위한 대규모 보조금,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프랑스 녹색산업법에 이어 EU도 미래차 산업 육성을 위해 다양한 지원 정책을 모색한다. 국내 정부와 국회도 미래차 특별법을 제정해 미래차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가 세계 3위 판매 업체로 부상했지만 산학연이 합심해 혁신의 고삐를 바짝 쥐어야 한다. 그동안 학연의 연구개발이 산업 현장과 괴리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업계에서는 필요 인력의 공급도 적시에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해왔다. 일부 전문가는 저변 확대형 연구개발 투자 지원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성과 창출이 기대되는 중장기 대형 연구개발 과제에 정부 예산을 우선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 전기차 업체 해외시장 진출 확대도 경계해야 한다. 그동안 국내 기업은 일본 기업을 벤치마킹했다. 그러나 미래차 부문에서 일본은 빛을 잃고 있다. 캐나다 환경부 장관은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실수할 여유가 없다며 결정적 순간에 와있음을 강조했다. 우리 자동차 산업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대변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기차 수요가 감소할 것이 아니고 산업 성장 과정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 lyg8779@hanmail.net
〈필자〉1987년부터 산업연구원에서 자동차산업 연구를 담당했다. 2020년부터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으로 근무하며 호서대 조교수를 겸하다가 올해 2월 제9대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에 임명됐다. 친환경차 보급뿐만 아니라 기업간 협업법 제정과 상생 결제 시스템 구축에 기여했다.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 국토교통부 자율주행자동차 융복합 미래포럼 위원, 중소벤처기업부 규제 특구 자문위원, 환경부 WTO 무역과 지속 가능 환경협의체(TESSD) 대응 TF 위원, 인베스트 코리아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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