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생산 기지 전략 수정에 속도를 낸다. 중국 공장 매각에 이어 러시아 공장까지 철수하면서 글로벌 전략 ‘새판짜기’에 돌입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전동화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아시아가 새로운 생산 기지로 떠올랐고,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전기차 생산 능력을 확충할 계획이다.
◇전쟁에 판매 부진까지…현대차, 러시아·중국 사업 접거나 축소
20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005380)는 전날(19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러시아 공장(HMMR) 지분 매각 안건을 승인했다. 러시아 공장 지분 전량을 현지 투자업체인 아트 파이낸스에 매각할 계획이다.
이번 계약에는 2020년 현대차가 500억원에 인수한 GM(제너럴모터스)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도 포함돼 있다. 향후 2년 내 공장 지분을 되살 수 있는 바이백 조건도 담았지만, 러시아 정부의 승인과 가격 재협상 등이 필요해 이번 매각 최종 결정은 사실상 러시아 시장 철수로 분석된다.
현대차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은 약 5400억원을 투자해 2010년 연산 20만대 규모로 완공하고 2011년 생산을 시작했다. 현지 맞춤형 소형차 쏠라리스와 소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 크레타와 기아 리오 등 해외시장 모델을 생산하며 동유럽 시장 생산 거점 역할을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전인 2021년 기준 23만4000대를 생산했고, 한때 월간 기준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자동차 부품 수급 어려움 등으로 그해 3월부터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판매량도 크게 줄었다. 르노와 닛산, 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러시아 자산 매각이 잇따르면서 현대차 역시 공장 매각이 예고됐고, 이번에 최종 결론이 났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뿐 아니라 다른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러시아에서 자산을 매각하면서 (현대차의 러시아 공장 매각은) 시간 문제였다”며 “글로벌 생산 거점 재편의 신호탄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최근 중국서도 공장 매각 등 사업 전략 재편에 나섰다. 중국은 현대차가 베이징 3곳, 창저우 1곳, 충칭 1곳 등 총 5개의 공장을 운영한 글로벌 최대 생산 지역이었다. 한때 연간 생산량은 245만대에 달했다. 이는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5위 완성차 업체로 발돋움하는 데도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로컬 브랜드가 득세하면서 판매량은 차츰 줄었고, 지난해에는 판매량 27만3000대 점유율 1%대에 그쳤다. 영업손실도 8000억원이나 기록했다.
현대차는 올해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중국 공장 추가 매각 계획을 밝혔다. 지난 2021 중국 베이징 1공장 매각에 이어 지난 8월 충칭 공장을 매물로 내놨다. 2017년 완공한 충칭 공장은 현대차의 다섯 번째 공장으로 판매 저조 등 여파로 지난해부터 가동을 중단했다.
현대차는 판매 라인업을 13개 차종에서 8개로 축소하고 공장도 추가 매각해 수익성과 생산성을 높일 계획이다.
◇러시아·중국 대신 아시아·미국서 생산 시설 확충…‘전동화 드라이브’
현대차는 대외여건이 어렵고 판매 실적이 저조한 러시아와 중국 대신 아시아 신흥시장과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 생산 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8월 GM 인도 법인이 보유한 연산 13만대 규모의 공장을 인수했다. 이를 바탕으로 인도 생산 규모를 약 140만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는 국내를 제외한 글로벌 최대 생산 규모다.
인도네시아 공장은 아세안 전기차 요충지로 거듭난다. 현대차는 23일부터 내년 1월7일까지 전기차 증산을 위해 인도네시아 공장 설비 공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전기차 생산 모델을 아이오닉5에서 코나EV를 더해 2종으로 늘린다.
인도네시아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과 합작한 전기차 배터리셀 공장도 막바지 조성 중이다. 이 밖에 싱가포르에는 현대차그룹의 전동화 핵심 시설인 글로벌 혁신센터(HMGICS)를 최근 준공했고, 태국서도 기아(000270)가 공장 설립을 검토 중이다.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주요 시장서도 생산을 늘린다. 현대차그룹은 내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미국 조지아주에 연산 30만대 규모의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고 있다.
유럽 전초기지인 체코 공장도 전동화 전환을 위해 추가 투자를 검토 중으로 알려졌다. 최근 프랑스 정부가 유럽 생산 전기차에 인센티브를 더 주는 프랑스판 IRA(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를 시행하면서 현지 생산이 더 중요해졌다. 이 조치로 몇몇 차종이 보조금 대상에서 탈락한 기아 역시 슬로바키아 공장에서 전기차 생산 등을 검토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블록화되면서 특정 지역에 생산 시설이 몰리는 것은 리스크가 클 수 있다”며 “각 지역 핵심 공장을 발판으로 해당 지역 정책이나 법안 등에 대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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