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인기 시트콤이었던 <순풍산부인과>를 보면, 미달이가 밀린 방학 숙제를 해치우는 에피소드가 있다. 미달이는 숙제를 완전히 까먹고 천하태평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개학 전날 친구 의찬이네 집에 놀러 갔다가 방학숙제로 일기가 있다는 걸 깨닫고선 울면서 밤새 가족들과 일기를 지어내는 내용이다.
아마 다들 이렇게 개학 전날마다 밀린 일기 몰아 쓰느라 고생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모든 학년 모든 계절마다 벼락치기 일기를 완성하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반복되는 일상을 굳이 매일 기록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일기는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귀찮은 존재로 자리잡았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아서 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성인이 되고서는 다시 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남들따라 예쁜 다이어리를 구매한 적도 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대로 뻔했다. 1년 동안 10장 이상을 채우지 못 한 것. 진득하게 앉아서 일기쓰는 건 어릴 때나 가능한 일이었는데,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다.
iOS 17.2 신기능, 애플 ‘저널 앱’
몇 년째 일기와의 반복되는 자존심 싸움을 이어가던 중, 지난 6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애플이 iOS 17부터 애플 기본 앱으로 ‘저널’을 추가한다는 소식이었다.
매년 다이어리만 샀다 버리던 습관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솔깃했다. 그래서 iOS 17.2 베타 버전에 저널 앱이 추가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판올림을 진행했다. 정식 버전은 12월 중으로 출시된다 했으니, 조만간 업데이트될 듯싶다.
첫인상은 심플 그 자체
베타 버전을 설치한 뒤 앱에 접속해 보니 어리둥절할 만큼 구성이 심플했다. 타사 저널 앱과 비교하면 다소 썰렁한 느낌도 든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하단 가운데 [+] 버튼을 누르면 일기를 작성할 수 있다. 단순히 글만 작성하는 건 아니다. 사진이나 동영상, 녹음, 위치 등의 정보를 추가해 기록할 수 있다. 단, 추가할 수 있는 미디어는 최대 13개까지다. 일기를 완성하면 추가한 콘텐츠와 함께 작성한 글의 일부를 보여준다.
다만, 제목을 분리해서 입력하는 기능이 없어 아쉬웠다. 메모 앱처럼 제목과 소제목, 본문의 글자 크기를 다르게 할 수 있다면 가독성이 높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폰트도 따로 바꿀 수 없다. 작성한 글을 누르면 이탤릭체, 볼드체, 밑줄체, 취소선 등 포맷 변경은 지원한다.
이 외에도 ‘오늘 나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활동에 대해 적어보세요’ 등 추천 질문이 제공된다. 일기 쓸 소재를 생각할 수 있게끔 해주기 때문에 유용할 듯 싶다.
애플만의 차별화 전략, ‘앱 활동 기반 추천’ 기능
사용 초반에는 다른 저널 앱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추천 질문이 있다 해도 특별하게 와 닿지 않았다. 네이버 블로그에도 추천 질문 기능이 있는데, 그동안 활용한 적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타사 저널 앱에 비해 기능도 빈약하다. 이 정도 기능이라면 애플 메모 앱이 더 나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애플 저널 앱의 진수는 ‘아이폰 활동 기반 추천 콘텐츠’에서 나타난다. 아이폰에서 작동하는 애플 기본 앱들의 활동과 연계해 일기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기능이다. 연락처, 사진, 건강, 지도, 음악 등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일상 속 작은 순간을 남길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산책을 하면 건강 앱 내 걸음 수와 이동 코스를 묶어 추천해 주며, 애플 뮤직으로 음악을 들으면 해당 음악을 묶어준다. 사진에 있는 추억 기능을 활용해 특정 날짜나 장소, 인물과 함께 했던 순간을 정리해 보여주기도 한다. 이를 활용하면 일상의 순간을 편리하게 기록할 수 있다.
일기 작성 부담 줄여줘, 가볍고 알차게
활동 기반 추천 콘텐츠는 애플이 저널 앱 발표 당시부터 언급했던 기능이지만, 직접 사용하기 전까지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한 달 가까이 사용해 본 결과, 단순히 텍스트만 남기기 보다는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해 다채로운 일상을 남길 수 있도록 설계됐단 걸 알 수 있었다. 애플 연동성을 이렇게 활용할 수도 있구나 싶었던 부분.
이로 인해 좋았던 건 일기에 대한 기존 고정관념을 깰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일기라 하면 꾸준히 밀리지 않고 긴 글을 써나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무언가를 매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부담만 증가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그런 점에 있어 애플 저널 앱은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하기 때문에 텍스트가 길어질 필요가 없으며, 가볍게 기록을 남기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그런지 작성한 일기를 살펴보면 텍스트 길이가 10줄 이상 넘지 않는다. 단 한 번도 꾸준히 일기 써 본 적 없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에게 딱 맞는 앱 아닐까 싶다.
이건 아쉬워
다만, 아직 출시 초기라 부족한 부분도 몇몇 있다. 일단, 검색 기능이 없다. 시간이 지나 기록한 저널 수가 늘어나도 원하는 저널을 빠르게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스크롤만 계속 내려야 한다.
가장 아쉬운 건 아이폰에서만 지원한다는 점이다. 애플 기본 앱인 만큼 아이패드나 맥에서도 지원하면 좋을 텐데, 아직 다른 기기에서는 제공하지 않는다. 기기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작성하고 수정할 수 있으면 좋을 듯 싶다.
카테고리 분류 기능도 있다면 좋겠다. 현재 책갈피 기능은 지원하는데, 사용자가 분류할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다. 활동 기반 데이터로 일기를 남길 수 있으니 이를 분류해 놓으면 훗날 찾아보기 좋지 않을까? 검색이나 기기간 연동은 워낙 기본 기능이라 추후 업데이트될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테크플러스 김하영 기자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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