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12일 경기도 여주시 소재 마임비전빌리지에서 열린 ‘2023 기아 EV데이’를 통해 새로운 전기차 3종을 선보였다. 이와 함께 보다 구체화한 전기차 대중화 비전과 방향성도 공유했다. 다양한 전기차 라인업과 새로운 서비스를 앞세워 전기차 시대 전환을 앞당기는 브랜드로 거듭난다는 취지다.
신차는 중국에서 먼저 태어난 준중형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5를 비롯해 엔트리급 전용 전기차 모델인 EV3와 EV4 콘셉트를 공개했다.
EV5는 중국 전기차 시장 공략에 초점을 맞춰 개발한 전기차 모델이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첫 번째 전기차 모델이기도 하다. 이날 공개한 전시차도 중국에서 생산된 모델이다. 중국에 이어 국내 생산도 계획 중이다. 국내형 EV5는 중국 생산 버전과 다른 배터리, 사양 등이 적용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내수용과 해외 수출용 모델이 생산된다.
전체적으로 EV9과 패밀리룩을 이루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굵고 직선을 강조한 라인을 활용해 독창적인 실루엣을 구현했다. 차체 크기는 길이와 너비가 각각 4615mm, 1875mm, 높이는 1715mm다. 기아 스포티지(4660x1865x1680, 휠베이스 2755mm)와 크기가 비슷하지만 전기차 전용 모델로 만들어진 만큼 탑승 공간은 스포티지보다 넓게 확보했다.
기아 측은 EV5가 전기차 대중화와 보편화를 선도할 모델이라고 소개했다. 먼저 선보인 EV6와 EV9은 얼리어답터를 타깃으로 고급스러운 전기차를 강조한 모델로 개발됐지만 EV5는 본격적으로 전기차 전환을 선도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설명이다. 특히 EV5는 현대자동차그룹 E-GMP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첫 전륜구동 기반 전기차다. 전륜과 후륜, 사륜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E-GMP 플랫폼의 범용성을 보여주는 모델로도 의미가 있다. 기아는 고급 전기차 모델은 후륜구동으로 만들고 엔트리급 모델은 전륜구동을 기반으로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조상운 기아 글로벌사업기획사업부장 상무는 “EV5는 전기차 대중화 시작점에 있는 글로벌 전략 모델”이라며 “EV5는 향후 출시할 EV3, EV4 등과 함께 전기차 대중화 트렌드를 이끌 것”이라고 전했다.
EV5 외관은 브랜드 디자인 철학 ‘오퍼짓 유나이티드’ 5개 요소 중 ‘자연과 조화되는 대담함(Bold for Nature)’가 반영됐다. EV9와 동일한 디자인 콘셉트다. EV9을 닮은 실루엣과 남성적인 박스카 디자인이 특징이다. 호랑이코(타이거페이스) 그릴 디자인도 전기차에 맞게 변화했다. 좌우 모서리는 기아 최신 모델처럼 LED 주간주행등으로 디자인됐고 다채로운 애니메이션을 구현하는 스타맵 시그니처 라이팅이 적용됐다. 휠과 휠아치는 기하학적인 느낌을 살렸다. 독특하게도 전기 충전구는 오른쪽 전면 휀더 뒷부분으로 옮겨졌다. 기아는 앞으로 출시할 전기차 충전구를 전면에 배치하기로 했다고 한다.
실내는 ‘자연과 인공의 경계 없는 조화’를 콘셉트로 디자인했다고 소개했다. 중국형 모델인 전시차의 경우 앞좌석 가운데에 낮은 쿠션이 놓였다. 몸집이 작은 사람이 가운데에 앉을 수 있는 공간이다. 다만 안전벨트나 별다른 안전사양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 운행 중인 차에 사람이 탑승하기는 제한된다. 기아 측은 운전석과 조수석 탑승객 사이에 방해되는 장치를 없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허문 벤치시트 구성이라고 설명했다. 가운데 쿠션에는 사람 손이나 스마트폰이 들어가는 작은 주머니를 마련했다. 다만 국내형 모델에는 벤치시트가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운전석과 조수석 시트는 마사지 기능이 제공되는 ‘릴랙션 시트’가 적용됐다. 센터페시아 조작부는 EV9과 비슷한 스타일로 이뤄졌다. 시트 질감이나 각종 소재 질감은 꽤 고급스럽다. 기존 준중형급 모델과 비교해 전반적인 소재나 질감 수준이 개선된 모습이다.
뒷좌석 착좌감도 눈여겨 볼만하다. 일단 앉았을 때 몸이 가운데로 푹신하게 들어가 안락한 느낌을 준다. 60:40 폴딩 기능도 갖춰졌는데 시트를 접으면 트렁크와 완전히 일자로 접혀진다. 기아는 뒷좌석 시트가 트렁크와 이어져 완전한 수평이 되도록 평탄화 접이 시트를 구현했다고 소개했다. 시트를 접으면 방석부분이 함께 아래로 내려가 등받이 뒷부분이 트렁크와 일자가 되는 구조다. 트렁크 공간 하단에는 슬라이딩 방식으로 쉽게 펴지는 테이블 커버가 설치됐다. 뒷좌석 시트를 접고 테이블을 펼쳐 실내 공간을 여가 장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조수석 시트 뒤에는 팝업 방식으로 펼쳐지는 테이블도 있다.
중국형 모델은 스탠다드와 2WD, 롱레인지(2WD, AWD) 등 3종으로 운영한다. 롱레인지 AWD모델은 88kWh급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해 최고출력 313마력(230kW)의 성능을 발휘한다. 1회 충전 최대 주행가능거리는 중국 CLTC를 기준으로 650km라고 한다. 국가별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국내 인증거리는 이보다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국내 인증거리는 미정이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EV5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3종으로 운영된다. 다만 배터리 종류와 용량은 달라진다. 81kWh급 NCM(삼원계) 배터리가 탑재된다고 한다. 성능은 롱레인지 AWD 모델이 최고출력 262(195kW)~306(225kW)마력 수준을 갖출 예정이다.
이밖에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ccNC(커넥티드카 내비게이션 콕핏)와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 12인치 클러스터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5인치 공조 디스플레이 등이 통합된 파노라믹 와이드 디스플레이, 3존 공조 시스템, 에어컨 냄새 저감 기능인 애프터블로우, 고속도로 주행보조2(HDA2), 원격스마트 주차 보조2(RSPA2), V2L 및 V2G(Vehicle to Grid) 등 최신 사양이 적용될 예정이다. V2G는 배터리 유휴 전력을 다른 전력망에 판매 방식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능을 말한다. 다만 제반 환경이 구축된 국가가 아직까지는 많지 않아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기아 측은 V2G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전력거래 플랫폼 등 국가나 시장별 제반 환경 구축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프라가 구축되는 국가에 순차적으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국가에도 차량에는 V2G 기능을 탑재할 예정이다.
이날 기아는 EV5와 함께 EV3와 EV4 콘셉트도 함께 공개했다. EV3와 EV4가 콘셉트 모델이기는 하지만 국내 출시는 EV3와 EV4가 빠르다. 기아는 EV5 국내형을 오는 2025년 출시하고 이에 앞서 내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EV3와 EV4를 국내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아가 발표한 출시 시점을 봤을 때 EV3와 EV4는 실제 양산에 근접한 버전이 완성된 상태로 보인다. 내년 상반기 출시로 계획된 EV3의 경우 국내 생산 라인 설치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예상된다.
EV3는 EV6와 EV9, EV5에 이은 기아의 전용 전기차 ‘4번 타자’가 될 전망이다. EV5보다 작은 SUV 스타일로 만들어졌다. 지상고가 낮기 때문에 SUV보단 해치백 모델로 보이기도 한다. 다만 기아는 유럽 등을 주요 시장으로 삼는 새로운 해치백 전기차도 개발할 계획이다. EV3의 경우 콤팩트 SUV로 선보일 예정이다. EV5와 마찬가지로 브랜드 최신 디자인이 반영돼 EV9, EV5 등과 패밀리룩을 이룬다. 실내는 새로운 인테리어 요소가 접목될 전망이다. 파노라믹 디스플레이 구성은 이전 모델과 비슷할 것으로 보이지만 스티어링 휠 엠블럼 디자인과 공조기 컨트롤, 에어컨이나 히터 바람이 나오는 공기토출구 등 세부 디자인에서 브랜드 차원의 큰 변화가 예상된다. 뒷좌석 시트는 방석부분을 위로 올릴 수 있도록 해 뒷좌석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콘셉트카 도어는 코치 방식으로 만들어졌지만 양산모델은 일반적인 4도어로 만들어진다.
EV4는 E-GMP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브랜드 첫 세단이 될 전망이다. 크기는 현대차 아이오닉6보다 작은 준중형급이 유력하다. 날렵한 헤드램프와 주간주행등이 적용됐고 아우디 A7이나 포르쉐 파나메라처럼 스포트백 해치백을 연상시키는 실루엣이 특징이다. 전통적인 3박스 방식 세단 디자인은 아니다. 기아 측은 전동화 시대에 세단을 새롭게 정의하는 디자인이 적용됐다고 강조했다. 실내는 EV3를 통해 변화된 구성이 조금 더 고급스럽고 진화된 방식으로 EV4에 적용될 전망이다. EV4 콘셉트카를 소개하면서 필요할 때는 팝업 방식으로 나오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감춰지는 새로운 공조기 컨트롤 기능을 소개했다. EV3 콘셉트와 마찬가지로 EV4 콘셉트 역시 코치도어로 선보였다.
이날 기아는 다양한 신차와 함께 전동화 전환 가속화를 위한 새로운 전략도 제시했다. 먼저 전기차 판매량의 경우 오는 2026년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100만대를 판매하고 오는 2030년에는 160만대 수준으로 판매량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다양한 가격대의 전기차 풀라인업을 구축하고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기아 전용 전기차 라인업 가격대는 3만 달러에서 8만 달러 범위를 제시했다. 이번에 공개한 EV3와 EV4, EV5 등 중소형 모델은 3만5000달러에서 5만 달러 수준의 가격대를 형성해 전기차 대중화와 보편화를 선도하겠다고 했다. 다만 전기차 대중화 측면에서 3만 달러는 여전히 비싸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환율을 반영하면 3만 달러는 한화로 약 4053만 원이다.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적용해야 소형차를 3000만 원 중후반대에 구입할 수 있는 수준이다. 여기에 정부가 지원하는 전기차 보조금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해외에서는 폭스바겐 등 다수 완성차 브랜드가 2만 달러대 전기차 개발을 발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만큼 보다 공격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그룹이 전기차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소형 모델을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LFP 배터리 사용 확대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특히 중국산 LFP 배터리뿐 아니라 국내 배터리 업체가 공급하는 LFP 배터리 사용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배터리 업체 중 완성차 업체와 전기차용 LFP 배터리 수주 계약을 체결한 업체는 아직 없다.
다만 업계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전기차용 LFP 배터리 상용화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수주가 가시화되지는 않았지만 상용화를 위한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신재생에너지·ESS전시회 ‘RE+ 2023’에서 전력망 에너지저장장치(ESS)용 LFP 배터리 기술을 선보인 바 있다. LFP 배터리 셀을 적용한 전력망용 모듈러 타입 수냉식 컨테이너 제품을 공개하면서 대규모 투자를 통해 LFP 제품 경쟁력을 강화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미 LFP 배터리 셀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LG에너지솔루션이 전기차용 LFP 배터리 시장 선점에서도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아는 현행 전기차 시장에 대해 초기 단계인 얼리어답터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여전히 새로운 제품에 흥미를 느끼는 소비자가 주요 구매자라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별로는 신흥시장에서 EV6와 EV9 등 고급 모델을 앞세워 프리미엄 이미지를 제고하고 순차적으로 대중화 모델인 EV3와 EV4, EV5 등을 추가해 선택 폭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충전 인프라의 경우 자체 충전기 설치 확대와 함께 다른 전기차 업체와 협력도 병행하기로 했다. 앞서 기아는 북미 시장에서 5개 완성차 업체와 연합해 오는 2030년까지 초급속 충전기 3만기를 설치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최근에는 여기에 내년 4분기부터 미국에서 판매하는 전기차 모델에 북미충전표준(NACS) 충전포트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북미에서 기아 전기차 이용자는 1만2000기의 테슬라 슈퍼차저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국내에서는 소비자 니즈가 높지 않아 테슬라 슈퍼차저 공유 계획이 없다고 기아 측은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이핏(E-Pit)을 포함해 2025년까지 충전기 3500기를 설치할 계획이고 이외에 다른 충전사업자와 협력해 기아 딜러망 내에 급속 및 초급속 충전기 설치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유럽에서는 4개 업체와 연합한 아이오니티(IONITY)를 통해 유럽 주요 고속도로에 2800기의 초급속 충전기 설치를 완료했고 2025년까지 총 7000기까지 설치를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안정적인 전기차 생산과 배터리 공급 체계 구축을 위한 계획도 발표했다. 2025년까지 글로벌 전기차 생산 거점을 8곳으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국내는 연구개발과 생산, 공급 등을 아우르는 전기차 글로벌 허브 역할을 맡고 유럽에서는 중소형 전기차를, 중국에서는 중대형 전기차를 생산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인도에서는 신흥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 전기차 생산을 계획 중이다. 북미에서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대응을 위해 다양한 전기차 모델을 현지 생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배터리 공급의 경우 합작법인(JV) 설립을 통해 안정적인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기아 통합 앱과 오프라인 거점 최적화 및 다변화,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 등을 통해 전기차에 대한 고객경험도 강화하기로 했다. 기존에 분산됐던 각종 온라인 서비스를 1개 앱으로 통합해 신차 구매부터 이용과 사후관리까지 차량 생애주기를 아우르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해당 기아 통합 앱은 내년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오프라인 거점은 현재 플래그십스토어와 EV언플러그드그라운드, 시티스토어 등 크게 3종으로 운영 중이며 EV 특화 도심형 매장을 확대할 예정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는 전기차에 특화된 고도화된 내비게이션 기능과 각종 서비스 예약 등이 가능한 기능으로 내년 상반기 출시 예정인 EV3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향후 무선업데이트 기능을 통해 서비스가 지속적으로 고도화된다고 기아 측은 설명했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기아가 제시하는 전동화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EV9과 EV6에 적용한 첨단 EV 기술과 친환경 소재, 대담한 디자인, 직관적인 서비스를 앞으로 출시할 대중화 EV 모델로 확대 전개해 많은 고객에게 기아의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mb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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