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변동휘 기자】 올해 통신 분야 국정감사 주요 이슈로 ‘가계통신비 절감’이 꼽힌다. 이미 이통사들에게 중간요금제 출시 등 고객들의 요금 부담을 줄이라는 정부 차원의 압박이 지속돼왔다. 일부 시민단체들도 이통3사 영업이익과 5G 부당광고에 따른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조치 등을 근거로 힘을 싣는 모습이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 달리 실제 통신업계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속적인 요금인하 요구와 설비투자 등의 영향으로 인해 이익률은 낮아지는 추세에 있다. 더욱이 국내는 이미 과포화된 시장인데다 인구감소 등 레드오션이 됐다는 것이다.
때문에 통신사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압박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쟁 활성화와 규제 개선 등 정책적 지원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하고, 차세대 망 투자를 위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 ‘1조 영업익’의 이면
지난 2분기 이통3사의 영업이익 합산은 1조3275억원으로, 6분기 연속으로 1조원을 돌파하는 등 화려한 외면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웃지 못했는데, 이러한 실적이 통신비 인하 압박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정부에서는 5G 중간요금제 출시 등 지속적으로 가계통신비 절감 방안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통사들도 지난 3월부터 세분화된 요금제들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가계통신비 등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고 정부의 압박도 지속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다른 측면이 있다는 의견이 업계 안팎에서 제기되는 형국이다. 가계통신비의 경우 2013년을 정점으로 감소 추세이나, 단말기 구매 부담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가계통신비는 2013년 15만3000원에서 지난해 12만8000원으로 16% 하락했고 통신 서비스 지출은 2013년 14만3000원에서 9만9000원으로 30.8% 감소했다.
반면 통신 장비 지출은 9000원에서 2만9000원으로 322.2% 증가했다. 2023년 7월 기준 국내 휴대폰 단말기 평균 가격은 87만3000원으로 2014년(약 62만원) 대비 41% 증가했으며, 스마트폰의 기능 다양화와 고성능화에 따라 매년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박완주 의원은 “정부가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를 위해 통신요금을 개편을 촉구했지만 정작 소도둑은 구매가가 41% 증가한 고가단말기에 있었다”며 “휴대폰이 생활필수품이 된 시대에 고가단말기 할부 연체액이 1조2000억원에 달하고 167만명의 이용자가 신용등급 하락으로 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최근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도 통신은 물가 인상을 방어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반박이다. 통계청이 작성한 소비자 물가지수를 살펴보면, 국내 물가는 10년 전과 비교해 16% 상승했으며 특히 주류 및 담배는 59%,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는 30%, 음식 및 숙박은 28% 올랐다.
하지만 통신의 경우 10년 전과 비교해 5% 내려가며 전체 품목 중 유일하게 하락했다. 또한 지난해 기준 일일 통신 이용료는 1422.6원으로 2013년(1467.7원) 대비 3.1% 낮아졌으며, 주요 소비항목들과 비교해도 커피값(5000원), 버스비(3200원) 등보다 낮은 수준이다.
■ 가중되는 어려움들
결국 요금 인하 일변도의 정부 정책이 통신업계의 수익성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국내 통신사들의 수익성이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으며, 해외 기업들과 비교해도 매우 낮은 편이라는 분석이 그 근거다. 지난 2005년 3사 평균 영업이익률은 15.2%였지만 지난해에는 7.9%(SKT 9.3%, KT 6.6%, LG유플러스 7.8%)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올해 2분기 기준 3사 영업이익률은 SKT 10.63%, KT 8.79%, LG유플러스 9.94% 등이다.
이는 해외 ICT 기업들과 비교해도 저조한 수준으로, 지난해 버라이즌과 KDDI, 소프트뱅크는 각각 22.6%, 19.5%, 17.0%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또한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가 올해 1분기 세계 50개국 통신사 EBITDA(세전·이자지급전이익) 마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27.77%로 47위를 기록했다. 1위를 기록한 노르웨이(60.50%)의 절반 이하다.
반면 투자 규모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가 발간한 ‘이동통신 산업·서비스 가이드북 2023’에 따르면, 이통3사는 매년 합산 5~9조원의 투자를 하고 있으며 5G 서비스를 출시한 2019년부터 약 30조4000억원을 설비투자에 사용했다. 매출액 대비 투자 규모는 지난해 기준 약 15%로 자동차나 플랫폼 사업자보다 높다. 특히 2010년 전파법 개정 이후 주파수 경매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 2011년 이후 이통3사 합산 주파수 경매대가는 10조1114억원에 달했다. 수익성이 줄었음에도 만만치 않은 투자가 이뤄졌다는 뜻이다.
향후 전망 역시 밝지는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무선통신서비스 가입 현황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요금제가 존재하지 않는 기타 회선을 제외한 전체 가입회선 수는 7988만1689개다. 휴대폰 가입 회선 수만 해도 5612만4529개로 이미 우리나라 인구를 넘어섰다. 여기에 인구절벽 위기가 현실화되면서 매출 성장률 역시 국내 경제성장률을 밑돌고 있다. 통신 시장의 성장이 정체됨에 따라 AI, 로봇 등 비통신산업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고 있지만,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혈안이 된 분야인지라 쉽지 않은 실정이다.
■ 선순환 생태계 구축 필요
통신 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정부의 요금 인하 요구가 반복되다 보면, 산업에 대한 투자를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통신 서비스만으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통신사들만 압박하는 현재의 정책 하에서는 투자 재원 확보가 어려워져 차세대 망 구축 역시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사들이 망 구축에 투자한 비용을 회수할 수 있어야 망 유지·보수와 서비스 개선, AI 등 새로운 서비스 개발, 차세대 망 구축 등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며 “요금 인하에 대한 요구가 지속되면서 이통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봤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요금 인상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점도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싣는 대목이다. 미국 통신사인 버라이즌과 AT&T가 지난해 6월 통신요금을 올렸으며, 영국 통신사 보다폰, O2, EE, 쓰리 등도 같은 행보를 보였다. 네덜란드 KPN도 지난해 평균 3.5%의 요금 인상을 단행했으며, 올해 들어서는 영국 브리티시텔레콤(BT)이 요금을 14.4% 상향 조정했다. 인플레이션과 연동된 통신요금 인상, 이른바 ‘텔레플레이션’이 세계 곳곳에서 관측되는 것이다.
각국 정부도 통신업계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는데, EU에서 추진 중인 ‘기가비트 인프라법’을 위시한 망 이용대가 법제화가 대표적이다. 막대한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빅테크 기업에게 망 구축 투자비용을 분담시키는 내용이 골자로, 통신사들이 지고 있던 설비투자 부담을 분산시키려는 취지다.
이 같은 내용들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역시 통신 시장 환경에 맞춘 규제 개선 및 산업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요금 수익을 통해 망 유지보수 및 투자를 하고, 또한 차세대 망 투자재원을 확보하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해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투자 환경 조성과 세제 지원 등 자유로운 경쟁을 유도하는 정책을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10년마다 새로운 망을 구축해 차세대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이용자 편익을 더하며 요금으로 회수하고, 이를 다시 망 투자에 활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며 “사업자와 정부, 국회, 언론, 시민단체 등 정책 이해관계자 간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통신정책 의제에 대한 컨센서스를 형성하고, 경쟁 활성화와 규제 완화를 통한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하며, 선제적인 투자 환경 조성과 세제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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