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가 차세대 전기 동력 SUV 모델로 E-3008을 공개했다. 글로벌 런칭은 내년 2월이라고 하지만, 미리 공개해 분위기를 띄우려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푸조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실용적인 특징을 가진 푸조는 사람들에게 비싼(?) 돈 주고 산 수입차지만, 고급스럽기보다는 ‘보통차’를 샀다는 인식을 주기 때문에 호응이 적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프랑스 차들이 실질적인 실용성을 중시하는 것에는 역사적인 배경도 있다. 최초의 자동차는 독일에서 만들어졌지만, 그런 자동차를 보다 쓰기 쉽고 실질적인 실용성을 가진 구조로 발전시킨 것은 주로 프랑스에서였다. 이러한 사실은 의외로 많이 인식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1889년 프랑스의 르네 파나르(Rene Panhard; 1841~1908)와 에밀 르바소(Emile Levassor; 1843~1897) 두 사람이 함께 설립한 자동차 회사 ‘파나르 르바소’(Panhard Levassor)가 다임러와 벤츠가 만든 차체 구조와는 전혀 다른, 차체의 앞에 엔진을 탑재하고 변속장치를 이용해서 뒷바퀴를 구동시키는 방식의, 오늘날의 자동차와 같은 구조를 가진 차량 ‘시스템 파나르’(Systeme Panhard)를 1895년에 개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기술적 흐름이 실용적인 차량 기술의 개발로 이어진 것이다.
푸조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는 이른바 펠린 룩(Feline look)이라는 개념으로 고양이과 동물의 표정이나 발톱 같은 이미지를 형상화 한 전면 디자인을 보여준다. 이 펠린 룩도 몇 번의 진화를 거쳤는데, 2000년대 초반의 둥글둥글한 곡면과 어우러진 펠린 룩 디자인은 206과 같은 소형 모델에는 귀여운 이미지로 잘 어울렸지만, 중형급으로 차체가 거진 모델에서는 잘 맞지 않는 방향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후 2010년대에는 좀 더 슬림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펠린 룩으로 변화되면서 중형급 모델의 디자인 완성도가 정말로 크게 좋아졌다.
이후 등장하는 최근 푸조의 펠린 룩은 기하학적이고 디지털적 이미지로 변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오늘 살펴보는 SUV 모델 E-3008 역시 그러한 디지털적인 조형에 의한 펠린 룩을 보여준다.
전체적인 차체 자세는 공간 활용 중심인 대부분의 SUV보다는 마치 해치백 또는 패스트백 승용차 같은 자세로 크게 누운 뒷유리를 보여준다. 그리고 데크의 높이를 높게 설정해서 마치 출발선에 선 육상선수 같은 역동적인 차체 스탠스를 보여준다.
푸조의 디자인 개성은 특히 실내 디자인에서 다른 브랜드의 차들과 확연히 구분된다. 수평 기조의 인스트루먼트 패널은 넓은 개방감과 디지털 기술의 조합으로 실용성과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윗부분을 D 컷으로 만든 스티어링 휠 역시 마찬가지다.
푸조로 상징되는 프랑스의 차체 내/외장 디자인 이미지, 특히 그 중에서도 실내 디자인은 패셔너블한 동시에 캐주얼한 인상도 주는 듯하다. 얼핏 드는 생각이, 겉은 바삭바삭하지만 속은 부드러운 프랑스의 전통 식빵 바게트(Baguette)가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바게트의 레시피는 매우 다양한 모양과 맛이 존재하므로, 좋고 나쁨의 개념이 아닌 다양성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본다면 프랑스의 자동차는 기존의 차량을 개선시키기보다는 새로운 시도에 의한 개발 사례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은 창의적 성향에서 기인한 것으로, 이전의 차량을 보완해나가며 완성을 추구하는 독일식의 ‘논리적인’ 디자인과 대비되는 ‘직관적인’ 예술에 비유되는 프랑스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프랑스의 직관적 성향은 푸조 브랜드의 디자인으로 나타나며, 오늘 살펴본 전기 동력 SUV 모델 E-3008에서도 강렬한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은 다양성의 한 부분이고, 보편성을 지향하는 듯한 한국 시장에서는 너무 강한 개성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21세기는 다양한 가치와 문화가 공존하는 시대이다. 새로운 전기 동력 SUV 모델 E-3008이 프랑스의 창의적 성향을 가진 모델로 사람들에게 다양성의 한 모습으로 어필되기를 바라본다.
글 구 상 교수 / 자동차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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