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원이 넘는 고가의 수입 전기차들이 속속 국내에 상륙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에서도 점차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지만 ‘럭셔리’ 전기차들은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영국 롤스로이스의 스펙터, 독일 메르세데스 마이바흐의 EQS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독일 BMW의 i7 M70 X드라이브 등 고가 전기차의 국내 출시가 줄줄이 예고돼 있다. 스펙터는 올 4분기(10∼12월)부터 고객 인도가 시작되고, i7 M70도 연내 출시될 예정이다. 마이바흐 EQS SUV는 최근 올라 켈레니우스 벤츠 회장의 방한에 맞춰 국내에서 최초 공개됐다. 내년쯤 정식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마이바흐 EQS SUV와 i7 M70은 2억∼3억 원대가 예상된다. 스펙터의 경우 6억2200만 원부터 시작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전기차 국고보조금을 받으려면 차량 가격이 8500만 원 미만이어야 한다. 이들 초고가 차량은 보조금과는 상관이 없는 셈이다.
기존에 출시된 억대 전기차들은 포르쉐, BMW, 벤츠, 아우디 등의 차량들이었다. 포르쉐 전기차인 ‘타이칸’ 정도만 트림에 따라 2억 원대였고, 나머지는 대체로 1억 원대에 머물렀다. 이번에는 벤츠에서도 최고급형 브랜드인 마이바흐를 앞세워 2억 원대 모델을 내놓고, BMW도 고성능 차량을 출시하며 라인업을 다시 넓힌 것이다. 롤스로이스는 첫 전기차로 스펙터를 내놓으며 국내 시판 전기차 중 최고가를 경신할 예정이다.
이렇게 비싼 차를 누가 살까 싶지만 1억 원 이상 고가 전기차 시장은 그동안 ‘그들만의 리그’를 나름대로 키워 오고 있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테슬라 제외)에 따르면 2020년에는 1억 원 이상 수입 전기차가 1304대, 2021년에는 3118대, 2022년에는 5083대 팔렸다. 올해도 7월까지 4188대가 판매되며 벌써 지난해 판매량에 육박하고 있다.
럭셔리 전기차를 줄줄이 등장시키는 것은 라인업 확대 측면이다.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들이 2030년 전후로 모든 신차를 전기차로 내놓겠다고 공언한 가운데 럭셔리 브랜드도 이제는 전기차를 출시할 때가 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기차 보급이 초기 단계를 지나 이제 2000만 원대 보급형 모델부터 1억 원 이상의 고가형 모델까지 소비층이 넓어지고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올 들어 전기차 성장세가 주춤하기 때문에 럭셔리 브랜드들은 확실한 차별화로 승부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고가형 전기차답게 차량 내장재부터 스피커, 좌석의 편안함, 차량 조작 음향, 편의시설, 내부 향기 등을 하나하나 최고급 수준에 맞춰 제공하게 된다. 아이린 니케인 롤스로이스모터카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은 6월 방한 당시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가장 많은 스펙터 사전 주문량을 기록하고 있다”고 말하며 한국의 럭셔리 차량 시장이 전기차 시대에도 여전히 뜨겁다는 것을 알리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2억 원이 넘는 초고가 럭셔리 전기차는 이제 막 출시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해당 소비자층이 기존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슬슬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며 “다만 아직 전기차 충전기 보급이 충분하다고 볼 수는 없는 상황에서 럭셔리 차량 소비자들이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하며 전기차를 구매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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