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이 줄이어 중국에서 철수를 감행하는 상황에서 중국 자동차 관련 업체들은 한국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직은 국내 업체와 협업하거나 유럽 브랜드 계열사를 앞세운 ‘우회 전략’이 많지만 곧 지리자동차나 비야디(BYD)의 국내 직접 진출도 머지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BYD코리아는 최근 국내에서 자사 제품을 소개할 홍보대행사를 선정했다. 올해 출시한 1t 전기트럭 ‘T4K’를 비롯해 기존에 판매 중인 전기지게차, 전기버스 등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려는 포석이다. BYD는 또 9월 출시되는 KG모빌리티의 전기차 ‘토레스EVX’에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공급한다. KG모빌리티와는 아예 2025년 국내에 배터리 패키징 공장을 설립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유럽과 동남아, 남미 완성차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BYD가 한국 시장 진출을 가시화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에 앞서 상용차나 배터리 시장에서 먼저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자동차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신뢰감이 높지 않아 손쉽게 진출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며 “일단 소비자들이 실제 성능을 경험하게 한 뒤 승용차 시장 진출을 타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 지리자동차의 경우에는 자사가 지분을 34% 보유한 르노코리아와 협력해 국내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는 전략을 짰다. 르노코리아와 합작한 하이브리드 차량을 내년 3분기(7∼9월)에 출시해 소비자들이 지리자동차의 기술력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더불어 지리자동차그룹 산하 브랜드 중 스웨덴 볼보와 폴스타에 이어 영국 스포츠카 브랜드 로터스도 5월 국내 재진출을 선언했다. 중국 최대 배터리 기업인 CATL도 올해 새롭게 출시한 현대자동차 코나 및 기아 레이의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판매처를 넓히고 있다.
반면 국내 자동차 관련 기업들의 ‘탈중국’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이번 달 발표한 현대제철, HL만도, 현대글로비스의 반기보고서에는 각자 중국 법인에 대한 매각 계획이 담겼다. 중국 현지에서 현대차와 기아에 차량용 강판을 공급하던 현대제철은 올 1분기(1∼3월) 현대스틸 베이징에 이어 이번에는 충칭 공장 매각 진행 사실도 공시했다. HL만도는 브레이크나 서스펜션 등을 만들던 충칭 법인을 청산했고, 현대글로비스도 중국 창주그룹과의 합작 법인인 ‘글로비스 창주 중고차’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중견 자동차 부품사 중에선 삼기, 유라코퍼레이션, 코오롱글로텍 등이 이미 중국서 철수했다.
이 기업들이 중국을 떠난 것은 현대차와 기아가 중국서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는 것과 관련이 있다. 2016년 현대차는 중국에서 공장을 5개까지 늘리고, 기아도 3개의 생산공장을 가동했지만 이듬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 내 반한 감정이 표출되면서 판매량이 곤두박질했다. 2016년 현대차그룹의 합산 점유율은 8.1%에 달했는데 지난해는 1.9%였다. 현대차는 2021년 베이징 1공장을 매각한 데 이어 이번 달 충칭 제5공장도 36억8000만 위안(약 6800억 원)에 매물로 내놨다. 창저우에 있는 제4공장도 연내 매각할 방침이다. 기아는 2019년 장쑤성 1공장을 장쑤웨다그룹에 장기 임대했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시대를 맞이해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성장세가 가파르다”며 “중국 회사들의 굴기에 맞춰 국내 업체들도 전략을 새로 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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