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배터리를 직접 설계 또는 생산하는 ‘배터리 내재화’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전기차 판매 단가의 40%를 차지하는 배터리를 자체적으로 처리해 배터리 전문기업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원가 경쟁력까지 노리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도 신형 싼타페 하이브리드 모델에 처음으로 자체 설계한 신규 배터리를 탑재해 내재화 전략의 신호탄을 쐈다.
8일 경기 파주시 미메시스 아트뮤지엄에서 열린 현대차 ‘디 올 뉴 싼타페’ 행사장에 신형 싼타페가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다. 캠핑 등 야외 활동에 초점을 맞춰 더욱 넓어진 공간을 강조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다.
이번 신차는 개별 모델의 성공 여부를 넘어 현대차의 전동화 전략에 있어서도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가 자체 개발한 신규 하이브리드 배터리가 탑재됐기 때문이다. 배터리 업체에 의존해 온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배터리 설계 기술을 내재화하고 실제 차량에 적용한 첫 사례다. 현대차는 6월 최고경영자(CEO) 인베스터데이에서 “올해 하이브리드 신차에 자체 설계한 배터리를 적용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현대차는 2021년 SK온과 하이브리드 차량용 배터리 셀 공동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연구를 진행해 왔다. 과거 배터리 업체들의 제품을 자사 차량에 최적화하는 작업에만 일부 참여했다면, 이번에는 소재 확정 및 검증, 성능 평가, 개선 등 핵심 과정을 직접 맡은 것이다.
‘전기차 시장의 맹주’인 테슬라는 2020년 배터리 내재화를 선언했다. 지난해 자체적으로 ‘4680 원통형 배터리’ 개발에 성공했고, 추후 일본 파나소닉과 LG에너지솔루션 등 배터리 업체들을 통해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일본 도요타는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특허 보유 1위 업체다. 2027년에는 이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해 10분 이하 충전으로 1200km를 주행하는 전기차를 상용화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설계기술만 가진 ‘팹리스(Fabless)’를 넘어 이미 배터리 직접 생산을 추진하는 곳도 있다.
독일 폭스바겐은 지난해 배터리 생산 자회사 ‘파워코’를 설립했다. 파워코는 2030년까지 유럽에만 240GWh(기가와트시) 규모 배터리 생산 공장 6곳을 세울 계획이다. 중국 BYD는 현재 세계 완성차 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배터리와 완성차를 모두 생산하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BYD의 올 상반기(1∼6월)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128만7000대로 전년 동기 64만3000대의 배 이상이었다. 가파른 성장 배경으로는 배터리 직접 생산으로 인한 가격 경쟁력 확보가 꼽힌다.
완성차 업체가 ‘배터리 독립’에 나서는 흐름은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배터리는 전기차 제품 경쟁력을 좌우할 뿐만 아니라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다. 전동화 초기 단계인 지금까지는 수십 년간 설계, 패키징, 양산 기술 등을 축적해 온 배터리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였다. 배터리사에 장기간 안정적 일감을 보장하면서 완성차-배터리 업체 간 합작법인(JV)을 앞다퉈 만든 이유다.
하지만 배터리 업체들이 ‘슈퍼 을’의 지위를 차지하면서 완성차 업체들도 점차 자생력을 가져야 한다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하고 있다. 특히 테슬라발 ‘전기차 가격 경쟁’은 이러한 시기를 더욱 앞당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설계를 직접 맡아 배터리사와의 가격 협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향후 10년간 배터리 성능 향상과 차세대 배터리 기술개발에 9조5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지난달에는 서울대와 함께 배터리 공동연구센터도 개관했다. 3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전고체, 리튬메탈 등 차세대 배터리를 연구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하이브리드는 전기차 배터리 용량의 10분의 1도 안 돼 (신형 싼타페 하이브리드는) 전기차 내재화를 위한 시범적 성격으로 보인다”며 “당장 완성차 업체가 높은 수율로 배터리를 대량 생산하긴 어렵지만, 전기차의 심장인 배터리를 직접 만들려는 흐름은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파주=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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