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모빌리티 시대가 다가오며 자동차 업계도 신기술 접목이 필수적이 되고 있다. 안전과 품질이 생명인 탓에 외부와 기술 교류를 꺼리던 자동차 기업이 이종 분야 기술에 활발히 투자하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특히 기술력을 갖춘 스타트업을 찾아내 초기에 투자하는 방식은 적은 비용으로 높은 효과를 볼 수 있다. 관건은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해내는 방법과 이들이 가진 기술력을 실제 자동차에 적용시킬 수 있는지 여부다.
15일 현대자동차그룹은 서울 마포구 호텔 나루 엠갤러리에서 ‘오픈이노베이션 테크 데이’를 열고 스타트업 투자 전략과 성과를 공유했다.
현대차·기아는 2017년부터 6년간 모빌리티, 전동화, 커넥티비티,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에너지, 로봇 등 신기술 스타트업에 1조30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황윤성 현대차·기아 오픈이노베이션추진실 상무는 “회사의 체급에 비해 투자금이 크다고 할 수 없지만 꼭 필요한 분야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며 “인류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스타트업이 우리가 찾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이어 황 상무는 치열한 글로벌 투자 경쟁에서 그룹이 가진 무기는 스타트업과 상생 협력 관계다. 그는 “사실 실리콘밸리 ICT 기업은 우리 보다 돈도 많고 의사결정 속도도 빠르다”면서도 “우리는 스타트업 기술을 실제 상품과 연결시켜주는 것이 최대 장점”이라고 했다.
황윤성 현대차·기아 오픈이노베이션추진실 상무.
구체적으로 현대차그룹은 신기술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해 ▲현대 크래들 ▲제로원 ▲사내 스타트업 제도 등 크게 3가지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크래들은 미국, 독일, 이스라엘, 중국, 싱가포르 등 5개 국가에 각각 설치돼 해당 지역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역할을 한다. 신기술 개발이 활발한 곳으로 현대차그룹은 자사 사업과 연관성이 높은 기술을 찾아내고자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1년 첫 투자한 미국 실리콘밸리의 음성인식 기술기업 사운드하운드다. 당시 재생되는 음악과 관련한 가수나 가사를 찾아주는 단순한 서비스 회사였지만, 현대차는 차량 인포테인먼트에 적용 가능성을 높이 평가해 투자를 결정했다. 이를 통해 발굴한 차량용 음성인식 서비스는 북미에 이어 영어권 국가인 인도에서도 확대 적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주로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 제로원을 활용하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자금력이 약한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펀드에 있다. 현대차그룹이 조성하는 펀드에는 그룹 계열사 뿐만이 아니라, 만도 등 협력사가 함께 참여한다.
제로원 노승규팀장은 “오픈이노베이션은 많은 기업이 하고 있지만 실제 성과를 내기 어렵다”며 “특히 밸류체인이 복잡한 자동차에 스타트업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협력사가 참여하는 펀드를 운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실제 현대차그룹과 협력하고 있는 스타트업 5개사가 나와 자사 기술력과 협력 성과를 공유했다.
모빈은 근거리 배달시장을 겨냥한 자율주행 배송로봇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현대차 사내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분사를 통해 창업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이날 최진 모빌 대표는 배송로봇 ‘M3’를 들고 행사장을 찾았다.
최 대표는 “1km 이내 배달 시장이 전체 48.6%를 차지하고 있지만 고비용·저효율 문제가 있다”며 “배달로봇이 각광받는 이유”라고 말했다.
M3는 자동차 플랫폼을 닮은 휠시스템 위에 물건을 담는 네모난 적재함을 얹은 형태를 하고 있다. 단순히 바퀴 달린 적재함 모습을 한 경쟁사와 다른데, 이를 통해 스스로 계단을 오르고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됐다.
또 흔히 사용되는 카메라 대신 3D 라이다를 장착해 밤에도 배송도 수행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 음식 배달은 야간 서비스가 많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M3는 양산 직전 단계에서 검증이 진행 중이다. 최근 편의점 CU와 도미노피자와 협업해 배달 현장에 투입됐다. 한국도로공사로부터는 순찰로봇으로 활용하자는 제안도 받았다. 모빈은 M3를 기반으로 한 양산형 배달로봇을 2024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어플레이즈도 현대차 사내 스타트업에서 독립에 성공했다. 공간에 어울리는 음악을 AI가 찾아 틀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실 음악 추천 서비스는 유튜브 등을 통해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저작권 문제로 카페 같은 상업시설에서 사용하기 힘들다. 일부 무료 서비스도 있지만 제공되는 음악이 제한적이다. 어플레이즈는 이 점을 파고 들었다.
어플레이즈는 현재 차량 데이터를 활용해 자동차에서 개인화된 음악을 골라 틀어주는 서비스를 위해 현대차와 협업하고 있다. 또 현대차 사옥, 전시장 등 각 공간에 맞는 음악을 틀어주는 건물형 솔루션 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디지털 트윈 기반 시공간 지도 서비스 업체 모빌테크는 제로원을 통해 현대차와 네이버 등으로부터 투자받았다. 라이다 스캐너로 실제 환경을 가상 공간으로 재현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이는 자율주행차, 항공모빌리티(AAM) 등 미래 모빌리티 도입을 위한 테스트에 활용될 수 있다. 실제 도로 테스트에 나가기 전에 가상 공간에서 테스트를 통해 사고 위험을 줄이는 방식이다.
당장 모빌리티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적용 가능성이 높은 신기술 스타트업과도 활발히 협력하고 있다.
뷰메진은 드론으로 건물을 찍고, 이를 AI 진단으로 균열 등 결함을 찾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든 바늘구멍 만한 세밀한 균열도 AI 분석을 통해 찾아낸다. 지난해 현대차로부터 투자를 받고, 현대건설에 납품하는 성과를 거뒀다.
뷰메진 김도엽 대표는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면 4일이 걸리던 검사는 반나절 만에, 1억5000만원이 드는 비용은 5000만원으로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메타버스 엔터테인먼트는 SNS 등에서 활동하는 버추얼 휴먼 ‘리나’, 4인조 버추얼 걸그룹 ‘메이브’ 등을 공개했다.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 AI 비서가 아닌, 실제 친구처럼 상호작용할 수 있는 AI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곽호룡 기자 horr@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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