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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KR10의 디자인과 KG 모빌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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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 서울 모빌리티 쇼에 전시된 차량 중에는 진짜 차량이 아닌 클레이 모델이 한 대 있었다. 클레이 모델(clay model)은 문자 그대로 진흙으로 만든 모형을 말한다. 오늘날의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자동차 메이커는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할 때는 이처럼 클레이 모델을 만든다.
 

 
자동차 디자인 프로세스를 세부적으로 알지 못하는 관점에서는 ‘진흙’으로 자동차 모형을 만든다는 것이 일견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동차 모형 제작에 쓰이는 ‘진흙’은 천연 진흙은 아니다. 색깔만 진흙과 비슷할 뿐이지 실제 성분은 유황과 파라핀 등이 섞인 화학 제품이다.
 

 
모형용 진흙의 정확한 명칭은 인더스트리얼 클레이(Industrial Clay) 이며, 그 물성은 상온에서는 빨래 비누 정도의 경도로 상당히 단단하지만, 전용 오븐에 넣어 섭씨 65도 정도로 가열하면 정말로 찰흙처럼 부드러워져서 자유롭게 형태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온도가 식으면 다시 단단해진다. 단단해진 뒤에는 다양한 종류의 절삭 공구로 깎고 다듬어서 상당한 정밀도의 모형을 만들 수 있다.
 

 
인더스트리얼 클레이는 찰흙과 비슷한 연황색을 띄지만, 페인트를 칠한 다이녹 필름(Dye-noc film) 이라는 재료를 씌워 차체의 이미지를 재현할 수 있다. 이번 서울모빌리티 쇼에 KG 모빌리티로 새롭게 시작하는 쌍용자동차가 KR10이라는 이름의 신형 SUV의 클레이 모델을 내놓았다. 그래서 전시된 모델의 절반은 은색으로 칠해져 있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클레이 색채 그대로 전시했다.
 

 
자동차 디자인 모형을 클레이로 만드는 이유는 조형의 자유도 때문이다. 아직까지 인더스트리얼 클레이만큼의 조형적 자유도와 물리적 경도를 동시에 가진 모형 제작 재료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더스트리얼 클레이는 1950년대 후반에 미국의 GM에서 처음 개발돼 쓰이기 시작했고, 그 이전까지 유럽 등의 자동차 메이커에서 쓰인 모형 제작 재료는 석고나 나무 등의 전통적인 재료였다. 저들 전통적 재료는 물론 좋은 재료이지만 깎아서 가공하기가 힘들고, 한 번 깎은 뒤에는 다시 붙이는 것은 더 어렵고 번거로운 단점이 있어서, 오히려 조형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재료였었다.
 

 
그런 이유에서 양산 메이커 중 가장 먼저 1930년대에 디자인 부서를 만든 미국 GM에서 인더스트리얼 클레이를 이용해서 디자인 모형을 만들었던 것이다.
 
다시 콘셉트 카 KR10의 이야기로 돌아와 살펴보면, SUV 전문 메이커로서의 쌍용자동차-이제부터는 KG 모빌리티이다-의 부활의 의지를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쌍용자동차의 가장 대표적인 모델이었던 뉴 코란도는 1996년에 등장했고, 2007년 말까지 10년동안 판매됐다. 당시에 흰색 뉴 코란도는 대학생들의 드림 카로도 불리며 독특한 디자인과 실용성으로 많은 호응을 얻었다.
 

 
사실상 뉴 코란도는 한국형 지프 라고도 할 수 있는 모델로, 그 이전에 등장한 신진 지프에 이어 1981년에 등장한 코란도부터 그 계보를 찾아볼 수 있다. 신진 지프는 미국의 카이저에서 CJ-5를 라이선스 생산한 것이므로 오리지널 지프가 바탕이 된 모델이었다. 그리고 CJ-5를 바탕으로 했던 코란도에서 15년 뒤에 뉴 코란도가 등장한 것이니, ‘한국형 지프’는 그 이름이나 실제에서 모두 사실인 셈이다.
 

 
그런 배경이 있었던 뉴 코란도는 독특한 디자인 이미지와 고유성이 있었고, 또 하나 오프로드 지향의 야성미도 가지고 있었기에 오늘날 도심지형 크로스오버 일색인 SUV 시장에서 다양성을 만들어주는 역할이었지만, 쌍용의 부침에 따라 계속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런 속에서 등장한 KR10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더욱 고무시켰다. 2023 서울모빌리티 쇼에 등장한 KR10은 뉴 코란도의 이미지를 계승하면서도 한편으로 전기 동력 자동차의 디지털적인 감성도 보여준다. 팽팽하게 당긴 곡면과 샤프한 모서리를 강조한 차체와 육중한 펜더와 휠 아치, 그리고 245/50R 20 규격의 타이어와 20인치 휠을 끼운 건장한 차체는 과거 뉴 코란도가 젊음의 상장이었던 기억을 되살려준다.
 

 
게다가 코란도의 머리글자 K를 형상화 한 걸로 보이는 테일 램프와 스페어 타이어 커버를 활용한 다양한 기능적 디자인, 마치 토끼 귀 같은 포지셔닝 램프를 부착한 루프 캐리어, 그리고 리어 뷰 미러를 중심으로 한 도어 패널의 인슐레이션 플레이트(insulation plate) 디자인 등은 오프로드 머신의 전천후 성능과 터프함을 보여주는 또 다른 디테일이다.
 

 
이처럼 KR10모델은 차체 곳곳의 디테일에서 육중함과 튼튼한 감성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디자인은 절대의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므로 모두에게 좋을 수는 없는 것이 자동차와 그 디자인의 문제이다. 그래서 다양성이 중요한 것이다. 사실상 소비자 역시 한 가지 감성 만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감성의 차량과 상품 속에서 자신이 공감하는 디자인을 찾기 원하며, 또 실제로도 그래야 한다. 그런 이유에서 KG 모빌리티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양한 자동차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게 된다.
 
서울 모빌리티 쇼에서 KG 모빌리티는 KR10만을 제시하지 않았다. 토레스를 바탕으로 한 전기 동력 차량 EVX와 도 다른 콘셉트 카를 제시하는 등 새로운 미래를 위한 비전을 제시했다. 부디 그동안의 부침을 털고 보다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의 코란도와 KG모빌리티가 우리나라의 자동차 시장과 산업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래 본다.
 
글 / 구상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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