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게이미피케이션(게임화, 게임 매커니즘을 지식전달이나 행동, 관심유도 등 엔터테인먼트 영역 너머에도 적용하는 것)’은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스마트워치는 디지털 트로피를 보상으로 내세워, 1000걸음 더 걸어보라고 유혹한다. 교실에서는 교사들이 학생들을 점수에 따라 상을 주고 처벌하는 앱을 사용한다. 일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우버의 드라이버와 콜센터 직원은 업무 중에 미션을 받는다. 미션을 달성하면 50달러 보너스. 실패하면, 누구나 상상하는 대가를 치른다.
사람들이 보통 게이미피케이션을 활용하는 이유는 일상을 좀 더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서다. ‘듀오링고’로 외국어를 배우거나 ‘좀비런’을 켜고 달리는 식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선택권을 갖지 못한 영역도 게임화될 것이다. 직장의 직원 감독, 금융, 보험, 여행, 의료 등에도 게이미피케이션이 은밀히 확대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책 ‘누군가 당신을 게임처럼 플레이하고 있다’에서 정부가 노동자들의 사생활과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게이미피케이션을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디오 게임 및 게임화된 금융 앱이 이용자들로 하여금 능력보다 더 많은 돈을 쓰게 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 그리고 교육 분야의 게이미피케이션은 현장 적용에 앞서 충분한 연구와 공개 논의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게이미피케이션은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도 있다. 참여를 확대하고 합의를 끌어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게임 설계 아이디어들(적응형 난이도, 반응형 인터페이스, 진행률 알림, 협력을 유도하는 다자 참여 시스템 등) 덕에 비디오 게임은 21세기 엔터테인먼트의 주류가 됐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들은 민주주의 및 시민 사회를 위해서도 활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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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카트’와 ‘마인크래프트’, ‘젤다’와 같은 게임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최대한 많은 이용자들이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점이다. 이들 게임이 쉽다는 말이 아니다. 초보자도 게임을 즐기는 데 필요한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 및 도움을 제공한다는 뜻이다. 배우는 과정은 지루한 튜토리얼 대신 단순화된 버전으로 진행되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다. 그리고 이용자가 뭔가를 성취하면 상을 준다. 다른 사용자와 함께 즐길 준비가 끝났을 때는 스포츠맨십을 강조한다. 이들은 모두 이윤을 얻기 위한 기업의 노력이지만, 이용자들의 참여 유도에 대한 교훈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오늘날 시민들이 민주주의에 참여(투표뿐만 아니라 지역 계획 및 예산 프로세스에 참여하거나 지식을 구축하고 공유하는 것)하려면, 점점 더 복잡해지는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 때문에 민주주의 시스템은 접근성을 높이고 이용하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 어쩌면 민주주의가 게임화됐다는 말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들을 가볍게 여기거나 기술만능주의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디지털 민주주의에서 살고 있다. 오늘날 디지털 민주주의에선 대중의 토론이 소셜 미디어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소셜 미디어는 클릭이 가장 많거나 가장 의견이 엇갈리는 사안에 높은 점수를 준다. 이는 ‘리얼리티 게임’처럼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왜곡시킬 수 있다. 또한 ‘레딧’ 등에서 볼 수 있는 인기 경쟁을 통해 특정 집단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민주주의가 이미 게임화됐다면, 우리는 이를 제대로 이끌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 방향에 참고가 될 만한 사례가 있다. ‘브이타이완'(vTaiwan)과 ‘디시전 마드리드'(Decision Madrid)는 시민들의 저조한 정치 참여를 해결하기 위한 온라인 숙의 플랫폼이다. ‘코로나 추적 프로젝트’와 ‘오픈소스 첩보'(OSINT) 커뮤니티는 신뢰가 사라진 시대에 대중의 참여와 과감한 투명성으로 믿을만한 정보를 신속하게 모아냈다. 시민 과학 프로젝트 역시 게임 매커니즘을 활용해, 고대 문자 전사나 우주 이미지 분류에 참여하는 수천 명의 자원 봉사자를 모았다.
물론 이들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들은 무분별하게 포인트나 배지를 주고 순위를 따지던 과거의 ‘게이미피케이션’과는 다르다. 민주주의의 기반 가치(참여)를 촉진할 수 있는 잠재적 시스템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선 참여 저조를 이용자의 게으름이나 무관심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대신 민주주의 제도는 보편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투표를 위해 시민들이 일을 멈추고 몇 시간씩 대기해야 한다면 투표권은 유명무실할 것이다. 웹사이트도 마찬가지다. 사용법이 너무 어렵거나 의견이 전해진다는 확신이 없다면 예산 편성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들의 권리는 무용지물이 된다.
게임 설계의 아이디어를 활용하면 여러 차례 실패했던 디지털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제로 구현시킬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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