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중국이 이미 70%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장에 먼저 진출한 한국은 중국에 밀려 점유율이 10% 아래로 떨어졌다. 수출품목 중 흑자 규모가 가장 큰 자동차마저 전기차 신규 시장 창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한국 수출에 안개가 짙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는 30일 유엔컴트레이드 데이터를 활용해 아세안 수입 전기차 시장을 분석한 결과 한국의 점유율은 2019년 43.2%로 1위였지만 2021년 8.2%로 3위까지 떨어졌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중국과 독일의 점유율이 각각 25.7%→46.4%, 1.3%→34.1%로 뛰어올랐다.
중국은 아세안으로의 수출은 물론 현지 생산기지 확보를 통해 전기차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지난달 한국수출입은행의 ‘아세안 순수 전기차 시장 전망 및 진출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아세안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완성차업체들의 점유율은 70.4%로 한국(9.5%)과 유럽(7.6%)을 압도했다. 아세안은 인도네시아 등 10개 회원국의 탄소중립 정책으로 전기차를 포함한 친환경차 시장이 연평균 48%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미와 유럽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자동차 산업으로서는 잠재력이 가장 큰 시장에서 중국에 ‘승기’를 뺏긴 셈이다.
현대차 美-유럽 시장선 3,4위 선전
아세안에선 태국과 인도네시아 전기차 시장이 전체(2만2000대)의 90.7%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두 나라에서 각각 70%, 80% 안팎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현지 생산 기지도 늘리고 있다. 반면 한국 전기차는 현지인들의 구매력을 감안할 때 중국에 비해 불리한 조건일 수밖에 없다.
현지 무역업체 관계자는 “초기 성장 단계인 아세안 시장에서 저렴한 모델을 앞세운 중국 전략이 먹힌 것”이라며 “중국은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어려워지자 아세안에 더 힘을 쏟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 미국과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각각 3위(7.1%)와 4위(10.1%)에 올랐다. 테슬라,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등 강자들과의 경쟁에서 이뤄낸 성과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약 25만 대의 전기차를 수출했는데, 미국과 유럽에서만 20만 대를 팔았다.
하지만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으로 수출에 잠시 제동이 걸린 데다, 유럽도 핵심원자재법(CRMA)을 준비하고 있어 아세안 같은 신흥시장 발굴이 더 절실해졌다. 강정화 한국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은 “아세안 시장에 맞는 저렴한 소형 전기차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며 “중국이 신흥 시장인 아세안 시장을 완전 선점하면 한국 업체들의 설 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와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의 부진 속에서 자동차 산업의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전체 수출액 중 자동차 비중(각년 1∼4월 기준)은 2018년 6.8%에서 올해 11.6%로 높아졌다. 1위 반도체(20.9%→13.4%) 비중이 낮아진 만큼 자동차가 메웠다.
무협은 30일 5월 1∼20일 무역적자가 43억 달러(약 5조6900억 원)로 4월 한 달간 적자 규모(26억 달러)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올해 2월부터3개월 연속 적자 폭이 줄어들다가 다시 커진 것이다. 산업연구원도 이날 ‘2023년 하반기 경제산업전망’에서 올해 무역수지는 353억 달러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기존 1.9%에서 1.4%로 0.5%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세종=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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