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전기차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전동화 전환에 속도가 붙으면서 자동차 엔진과 소재, 부품뿐만 아니라 연료를 채우는 방식까지 기존과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의문점이 생겨납니다. ‘비 오는 날 전기차를 충전해도 될까’와 같은 질문입니다. 이에 IT동아는 전기차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살펴보는 ‘EV(Electric Vehicle) 시대’ 기고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전기차 화재 사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소방청이 내놓은 ‘최근 3년간 연도별 전기차 화재 현황’에 따르면 2020년에는 11건, 2021년에는 24건, 2022년에는 44건으로 매해 두 배가량 발생 빈도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화재의 원인을 살펴보면, 전기적인 요인이 18건으로 가장 많았고 부주의 15건, 교통사고 9건, 기계적 요인 4건 순입니다. 화재 발생 장소는 일반도로가 34곳으로 가장 많았으며, 주차장이 29건, 고속도로에서 6건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전기차 화재가 급증하는 것을 단순히 판매 대수 증가에 따른 수치 상승으로 분석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발화 원인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기적인 발화 원인으로, 액상 상태인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하는 전기차의 특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전기차를 충전할 때 배터리에 화학적인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주행 중에도 액상 상태의 배터리액이 움직이므로 화학적인 변화가 많이 발생합니다. 기본적으로 전기차는 화재에 취약한 구조를 띠고 있는 셈입니다. 최근 고체형 배터리 개발이 중요해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배터리 충전 시 80%까지 충전을 권장하는 것도 리튬이온 배터리를 100%까지 충전하면, 셀이 부풀어 올라 전기적으로 열폭주로 인한 쇼트(전기 회로의 두 점 사이 절연이 잘 안돼서 두 점 사이가 접속되는 현상)가 발생해 화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발생한 전기차 화재를 보면 불이 쉽게 꺼지지 않는 특징을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전기차는 고전압 배터리를 동력으로 삼아 작동하는데, 차량 하단에 설치된 배터리를 감싸고 있는 배터리팩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이 배터리팩에는 외부 충격이나 수분의 유입으로부터 배터리를 보호하기 위해 실링 작업(생활 방수 6단계)을 해 놓았습니다. 이 때문에 배터리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물을 부어도 배터리 안으로 침투하지 못하므로 불이 쉽게 꺼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배터리 방수가 중요한지 의문이 남을 수 있는데요. 전기차는 도로를 주행할 때 물을 수시로 만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행해야 하는데, 이때 배터리 내부로 물이 들어가면 쇼트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즉 화재의 발생 빈도보다 물을 만날 기회가 더 많아 철저히 방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배터리 내부에서 발생하는 화재를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제언하자면, 배터리 내부에 화재가 발생할 경우 자동으로 소화기가 작동하도록 설계해 화재를 조기 진압하거나, 배터리를 덮고 있는 커버에 방염 처리를 하는 방법 또한 고려해 볼 만합니다. 현재 배터리를 감싸는 구조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는 초기 화재 진압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고전압 배터리를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차량의 경우, 화재 양상이 왜 다르게 나타나는지 의문이 남을 수 있습니다.
하이브리드 차량은 엔진과 고전압 배터리를 사용해 구동되는 시스템입니다. 고전압 배터리가 뒷자리에 있고, 물이 유입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방수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따라서 화재 발생 시 물을 이용하면 쉽게 진압할 수 있습니다.
또 동력이 부족하면 엔진을 구동해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기 때문에 완충 상태로 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주행할 수 있습니다. 배터리 입장에서 보면 전기적 부하는 전기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고 화재의 가능성도 그만큼 내려갑니다.
향후 전기차 개발 시 방수뿐만 아니라 배터리 화재가 발생해도 쉽게 진압할 수 있는 설계가 필요합니다. 최근 각 제조사는 전기차에 800V 정도의 고전압을 사용해 배터리 내부의 밀도를 높여 주행가능 거리를 늘리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배터리의 화재 환경은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기차는 많은 편리함을 주는 동시에 위험하다는 인식이 공존합니다. 신차 개발 시 다양한 검증을 통해 친환경적이면서도 안전한 차량을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할 것입니다.
글 / 문학훈 오산대학교 자동차과 교수
오산대학교 자동차과 교수로 재직 중인 문학훈 교수는 자동차 정비 기능장이자, 공학박사(명지대학교 대학원 기계공학과 박사)다. 현대자동차 정비연수원과 기아자동차 해외품질실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으며, 현재 국토교통부 안전·하자 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kdj@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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