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계에서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는 이들이 미래차 전략을 세우는 데 있어서 양대 축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완성차 회사들은 각자의 차량 라인업을 전기차로 전환하면서 자율주행 기술에도 앞다퉈 투자를 하고 있는 중이다.
투자에 있어서는 원천 기술 확보 기간 단축을 위해 완성차 업체가 관련 업체를 인수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GM의 ‘크루즈 인수(2016)’, 현대차그룹의 ‘포티투닷 인수(2022), 스텔란티스그룹의 ‘AI 모티브 인수’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재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선 자율주행 같은 첨단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당분간은 빠르게 발전 중인 이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 배영대 에디터
그런데 얼마 전 포드가 영국으로부터 고속도로에서 핸들을 잡지 않은 상태에서의 운행 허가를 받았다는 소식은 업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이유로는 이보다 앞서 포드가 수억 원의 돈을 투자했던 자율주행 스타트업 ‘아르고 AI’가 지난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 있었기 때문인데, 한동안 관련 성과가 없을 것이라는 업계의 예상을 깨버리고 포드는 깜짝 놀랄 성과를 내버렸다.
어쨌든 포드는 머스탱 마하-E 전기차에만 한정되어 있긴 하지만, ‘블루 크루즈’를 장착했다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즈 고속도로에서 레벨 3 수준의 자율주행 운행을 할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번 운행 승인을 위해 포드는 영국에서 낡은 차선 표시, 도로 공사 및 악천후 등 다양한 환경에서 10만 마일(약 16만㎞)의 운행 테스트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몇 가지 제한은 있다. 최고 시속 70마일(약 112㎞/h)로 운행할 수 있고, 차선 변경이나 앞지르기는 허용되지 않는다. 차량 내부에 설치된 적외선 카메라의 감시 아래 운전자는 전면을 주시해야 한다. 만약 운전자가 잠들거나 다른 곳을 장시간 주시할 경우 소리 등으로 경고음이 나온다. 이외엔 법적으로 운전 중 스마트폰 사용도 금지되어 있다.
포드의 이번 소식과 관련해 국내 몇몇 전문가들은 놀라운 것도 있지만, 동시에 업계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그건 바로 자율주행 허가 기준이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포드는 영국에서 레벨 3 수준 자율주행을 허가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제약 조건이 따랐다.
그렇다면 다른 국가들은 어떨까? 인근 유럽 국가에서는 자율주행차에 대한 허가를 EU의 ‘자율주행차 시스템 표준’에 기반해 이루어진다. 이 표준은 자율주행차의 기술적 요구사항, 시험 및 인증 절차, 안전성 평가 등을 규정하고 있다.
자율주행차 제조업체는 이 표준에 따라 시스템을 개발하며, 이후엔 전문 인증 기관에 의해 검증이 진행된다. 이때 검증 기관은 자율주행차 시스템의 안전성 및 성능을 평가하고, 차량에 대한 인증을 부여한다.
미국에서는 자율주행차의 허가와 관련한 기준은 연방과 주 두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먼저 연방 기준으로는 미국 교통부(NHTSA)에서 자율주행차의 안전성과 규제를 담당한다. NHTSA에서는 자율주행차에 대한 안전성 평가를 위한 기술 평가 기준을 수립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제조사는 자율주행차에 대한 연방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주 단계에서는 미국 50개 주 중 대부분의 주에서 자율주행차의 도로 시험을 허용하고 있다. 자율주행차의 시험 주행을 위해서는 특정 조건과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며, 이를 준수하는 제조업체만이 시험 주행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중국은 자율주행차에 대한 허가 및 인증을 국가적 차원의 기술 규제 기구인 중국 정보 산업부와 국가 교통 운송부에서 공동으로 수행하고 있다. 한편 자율주행차에 대한 인증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제조업체가 인증서를 신청하면 중국 정보 산업부가 인증서를 발급해 준다. 둘째, 제조업체가 자율주행차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독립적으로 인증하는 방법이 있다. 셋째, 중국 교통 운송부가 자율주행차의 허가를 검토하고, 해당 차량이 교통 법규 및 안전 기준을 충족하는지 확인한 후 인증서를 발급해 준다.
우리나라 역시 자율주행차의 도로 시험을 위한 규정과 자율주행차의 허가 기준이 마련되어 있다. 도로 시험 규정은 국토교통부에서 제정하고 있으며, 국내 제조업체와 대학 등에서 자율주행차의 시험 주행을 진행하고 있다. 참고로 자율주행차 시험 주행을 위해서는 교통안전공단을 통해 심사를 거쳐 시험 주행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번 포드 소식 전까지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레벨 3을 달성한 업체는 고작 혼다와 벤츠 2개사 정도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상용화 단계까지 언급하면 혼다의 경우 단 100대를 정부에 납품하는 데 그친 것으로 알려지면서, 남는 건 벤츠밖에 없다. 참고로 테슬라는 자사 자율주행 기술 명칭을 ‘풀 셀프 드라이빙’(완전 자율 운전· FSD)으로 지어놓긴 했지만 ‘보조 기능’이라 강조하고 있어서 카운팅에서 빠졌다.
분명 자동차 제조사들이 앞다투어 기술 확보에 뛰어들고 있다 했는데, 정작 상용화 곳은 적은 이유는 뭘까? 여기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벤츠의 사례를 들며 사고 발생 시 필요한 책임 소재를 두고 명확한 기준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내다봤다. 참고로 이들은 벤츠의 레벨 3 시스템에 대해 “실제 구현에 있어서 많은 제약을 걸어뒀다. 사고 발생 시를 철저하게 대비해 출시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벤츠 사례란, 레벨 3 개념을 보면, 운전자가 시스템에 운전을 맡기고 전방 주시를 하지 않고 주행에 관련되지 않은 행동을 해도 되지만, 벤츠는 레벨 3 자율주행을 출시하면서 차량에 탑재된 미디어 시스템을 이용하는 경우로 (운전자 행동을) 한정한 것을 말한다.
국내만 하더라도 레벨 3 자율주행 탑재를 놓고 제네시스 G90과 기아 EV9이 언급되며 큰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 살펴본 내용만 보더라도 설령 올해 안에 두 차량 중 하나든 다른 국산 차량이든 레벨 3 자율주행이 탑재되어 나온다 한들 불편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 같다. 그렇다면 차라리 좀 더 늦게 나와도 좋으니 관련 규정이 마련된 뒤에 탑재되어 나오는 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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