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재희 에디터
배터리 업계에서 실리콘 음극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양극재 중심의 배터리 기술 발전 속도가 더뎌지면서 음극재가 성능 차별화의 키(Key)로 부상하는 것이다. 여러 배터리 소재 기업들은 기존 흑연 계열 음극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실리콘 음극재에 대한 연구개발과 생산시설 확충을 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실리콘 음극재 시장 규모를 지난 2021년 4000톤에서 오는 2030년 20만톤으로 예측하며 가능성을 내다봤다.
실리콘 음극재는 기존 흑연 대신 실리콘을 섞은 소재다. 흑연 음극재보다 주행거리와 충전 속도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전기차에 주로 쓰이는 흑연 음극재는 가격이 저렴하고 결정 구조가 안정적이지만 에너지 저장 용량에 한계가 분명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실리콘은 흑연보다 이론상 에너지 밀도가 10배 이상이다. 따라서 충전 속도도 흑연보다 훨씬 빠르다. 그러나 실리콘 역시 단점이 존재한다. 소재 특성상 충방전이 거듭할수록 실리콘 입자가 부푸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흑연 대비 300~400%까지 부피가 커지고 폭발 위험이 증가해 배터리 안정성에 치명적이다.
실리콘 음극재는 실리콘 함량에 따라 15% 이내인 저함량과 15% 이상 고함량으로 나뉜다. 실리콘 함량이 늘어날수록 주행거리가 증가하고 충전에 필요한 시간은 대폭 줄어든다. 위에 서술한 한계로 인해 현재는 5% 이하 수준의 저함량 실리콘 음극재만이 상용화된 상태다.
실리콘 함량이 5%라도 에너지밀도가 흑연 음극재보다 50% 가까이 증가해서 효율적이지만 아직 그 이상은 실리콘 부피 팽창을 제어하기 어려워 다수의 기업이 개발에 난항을 겪고 있다.
따라서 실리콘 음극재 기술 개발의 첫 관문은 실리콘 구조의 안정화에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배터리 업계가 목표로 한 함량 7%, 10%의 벽을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LG에너지솔루션은 탄소나노튜브(CNT)를 음극재에 첨가해 이 같은 스웰링(swelling, 충·방전을 반복하면서 소재가 변형되는 현상) 안정화 기술에 사용하고 있다. 탄소나노튜브 도전재가 쓰이는 것은 전기와 열의 전도율이 구리와 같으면서 강도는 철의 100배에 달하는 덕분이다. 이를 기반으로 2019년부터 실리콘 5% 음극재를 적용했으며 7% 이상으로 함량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삼성SDI도 실리콘을 나노화하는 등 독자기술 SCN(Silicon Carbon Nanocomposite)을 적용해 팽창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SCN(Si-Carbon-Nanocomposite)란 실리콘을 머리카락 두께 1천분의 1 크기로 나노화한 뒤 이를 흑연과 혼합해 하나의 물질처럼 복합화 한 소재다. 실리콘과 흑연을 혼합해 서로의 장점을 살리는 방안을 고안한 것이라고 삼성SDI 측은 설명했다.
완성차 업계에선 대표적으로 포르쉐와 메르세데스-벤츠가 적극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포르쉐와 메르세데스는 각각 미국의 배터리 실리콘 음극 소재 기업 ‘그룹14 테크놀로지’와 ‘실라 나노테크놀로지스’ 투자 중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전 테슬라 엔지니어들이 공동 창업한 배터리 소재 스타트업이라는 설명이다.
이미 타이칸에 LG엔솔의 함량 5% 수준의 실리콘 음극재 배터리를 공급받은 바 있는 포르쉐는 그룹14에 이미 1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으며 메르세데스는 2025년 실라 나노테크의 첫 번째 고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출시될 벤츠 G-바겐의 전기차 버전 ‘EQG’ SUV에 실라 나노테크 기술이 적용된 배터리가 탑재되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EQG는 실라 나노테크놀로지의 실리콘 음극재가 들어간 CATL의 배터리를 탑재할 예정이다.
실리콘 음극재의 양산 및 상용화를 위해선 비싼 가격을 낮추는 것과 수율 확보가 핵심이다. 실리콘 자체의 원가는 저렴하지만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탓에 기존 흑연 계열과 비교해 가격이 수배에 달하고 공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배터리 업계의 기술 개발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차세대 배터리 시장에서 실리콘 음극재의 영향력을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주행거리 10배, 충전 초고속” 포르쉐∙벤츠가 환장하는 배터리 ‘신기술’ 등장
글 / 다키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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