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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교수의 디자인 비평] GMC 시에라, 풀 사이즈 픽업 디자인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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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럴 모터스(GM) 한국에서 풀 사이즈 픽업 트럭 시에라(Sierra)를 공개하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시에라 모델 중에서도 최상급 트림 드날리(Denali) 모델을 들여와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 모델의 미국 판매 브랜드는 GM 산하의 쉐보레가 아닌 GMC다.

우리나라에서 GM은 공식적으로 쉐보레(Chevrolet) 브랜드만 판매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GM에 대중적인 쉐보레 이외에도 프리미엄 브랜드 캐딜락(Cadillac), 고급 대중 브랜드 뷰익(Buick), 그리고 대형 트럭과 SUV, 픽업 전문 브랜드 GMC 등이 있다. 물론 쉐보레 브랜드에도 픽업과 SUV가 있지만, GMC 브랜드에서는 준대형 이상 크기의 픽업과 SUV를 판매한다. 그래서 당연히 시에라는 GMC 브랜드로 판매되는 대형 픽업이다.

시에라(Sierra)라는 이름은 일견 귀여운 느낌도 있지만,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주와 네바다 주의 경계에 있는 거대한 산맥(최고봉 휘트니 산 4421m)의 이름이기도 하다. 평지가 많은 북미 대륙에서는 더더욱 높은 산이라는 이미지가 강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태백산맥(최고봉 1567m)도 큰 산맥이지만 시에라 산맥의 높이가 에베레스트(8848m)의 절반 정도이니 정말 높긴 하다. 그래서인지 차체 역시 육중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한편 GM의 차들 중에는 콜로라도, 올랜도, 말리부 등과 같이 미국의 지리적 명칭을 쓴 차들이 더러 있다. 우리로 치자면 차량 모델명을 태백산, 유성, 안동 등으로 한 셈이다.

시에라 드날리의 차체 크기는 전장, 전폭, 전고가 각각 5890×2065×1950mm에 휠베이스는 3745mm이다. 국산 대형 SUV 모델 제네시스 G80의 4945×1975×1715mm에 휠베이스 2955mm와 비교해보면, 길이는 1m 이상, 휠베이스는 790mm 길다. 높이도 235mm 높다. 사실 이건 차이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두 체급 정도 더 큰 차체이다.

시에라의 캐빈은 2열 구성의 4도어인데, 뒷좌석 공간이 그냥 ‘형식적’으로 만든 게 아니다. 차체 측면에서의 이미지를 보아도 시각적으로 GV80의 2열 좌석보다 좁아 보이지 않는다.

수평기조이면서 연직형의 인스트루먼트 패널
수평기조이면서 연직형의 인스트루먼트 패널

현대 브랜드에서 판매하고 있는 초대형 승합차 솔라티의 차체 제원 6195×2038×2665mm에 휠베이스 3645mm와 비교해 보면 -물론 시에라의 길이는 300mm가량 짧지만- 차체 폭은 오히려 27mm 넓고 휠베이스 또한 100mm 길다. 전체 높이는 하이 루프 차체의 솔라티가 600mm 높다. 이 정도면 시에라는 정말 큰 차체이다.

하지만 대형 승합차 솔라티의 엔진이 4기통 2.5L 디젤인걸 감안하면 시에라의 8기통 6.2L 가솔린 엔진은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난 크기이다. 국산차 가솔린 엔진 중에서는 아마도 제네시스 G90의 리무진 모델의 V형 8기통 5.0L가 가장 클 것이다.

시에라의 V형 8기통 6.2L 가솔린 엔진은 조금 과장된 비유를 하자면, 실린더 하나의 크기가 과거에 대우자동차가 판매했던 800cc 경승용차 티코나 마티즈의 배기량인 셈이다. 즉 거의 티코 승용차 8대가 시에라 픽업의 엔진 하나에 들어가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픽업 트럭의 연간 자동차세가 2만8500원 정도의 적은 액수라고 해도, 8기통 6.2L 가솔린 엔진은 가벼운 마음으로 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시에라 드날리 픽업의 가격 역시 거의 1억 원이다. 물론 그러한 가격에 걸맞은 성능과 내외장의 품질로 최고급 픽업의 면모를 보여준다.

GM이 시에라 픽업을 한국 시장에 내놓은 건 어쩌면 많은 판매량을 기대하기보다는 한국 내 다른 GM 모델에 대한 후광효과(halo effect)를 염두에 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즉 전체 차량 라인업에 강력한 인상을 주는 최상위 모델을 배치해서 전반적인 브랜드 이미지의 향상을 꾀하는 마케팅 기법이다. 미국 업체가 강점을 가진 대형 픽업을 이용해서 강력한 이미지를 내세우는 방법일 것이다.

물론 이건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픽업 트럭이나 대형 SUV의 수요가 이전에 비해 늘고 있고, 전반적으로 레저나 캠핑 등 야외 활동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진 것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픽업을 단지 화물차로 보기보다는, 강한 이미지와 실용성을 가진 차량의 한 종류로 인식하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런 변화에 힘입어 쌍용자동차의 국산 픽업의 판매량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기능을 가진 적재함 후방 게이트
다양한 기능을 가진 적재함 후방 게이트

그런 배경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통 환경에서 시에라와 같은 풀 사이즈 픽업의 사용에서 장애물 또한 존재한다. 그것은 커다란 차체로 인한 주차 불편 같은 문제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자동차 소비 행태는 미국 시장의 그것과 닮아 있는 일면들이 눈에 띈다. 그것은 90%가 넘는 자동변속기 선택비율과, 큰 차체 선호에 따른 경승용차 판매가 높지 않은 것 등이다.

바로 옆 나라 일본에서는 아직도 자동변속기 선택 비율이 50%를 밑돌고 차체 폭이 1600mm 이하이면서 660cc 배기량의 경승용차가 시장 판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 등에서 우리나라와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 소비자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아침에 시동 걸 때 이웃에게 방해가 될 걸 우려해서 디젤 엔진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로 일본 사람들이 저렇게 이타적(利他的) 성향이 많은 건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사실상 우리나라에서는 디젤 엔진을 경제성의 이유로 선택하면서도 저와 같은 이유는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다. 이웃을 생각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자동차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기에 그걸 선택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일 것이다. 물론 이건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이기 이전에 문화적 차이일지 모른다.

시에라는 픽업의 나라 미국에서 만든 차답게 픽업 특징을 전문적으로 살린 내외장 디자인과 기능을 볼 수 있다. 2열 좌석 등받이 부분을 열고 닫을 수 있게 만들어 별도의 수납공간을 둔 것, 적재함의 뒤쪽 게이트 자체가 분할돼서 열리기도 하며 그렇게 완전히 열었을 때는 마치 계단처럼 펼쳐져서 적재함으로 오르내리기 쉽게 한 것, 그리고 적재함 좌측 벽면에 파이프로 또 다른 보조 손잡이를 만들어 놓은 것, 뒤 범퍼 양측 모서리에 보조 발판을 만든 것 등이 그것이다. 게다가 차량 뒤쪽에 캠핑 차량을 연결해 견인 운행할 때 항상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보조 카메라의 설치 등이 눈에 띈다. 견인 이동할 때의 주행안정성을 위한 구동장치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장비들은 직접 픽업을 사용해본 경험이 많이 쌓였을 때 개발 가능한 것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시에라 픽업의 판매량이 어느 정도일 것인가와 상관없이, 이제 우리나라 소비자들도 레저용 차량의 하나로 픽업 트럭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건 픽업을 또 다른 유형의 차량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와 같다. 분명 8기통 6.2L 가솔린 엔진을 얹은 픽업은 단순한 화물차가 아니라 자동차를 사용하는 여러 모습 중 좀 더 여유롭고 풍요로운 생활의 한 장면일 것이다. 초대형 픽업 시에라의 등장으로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과 소비자의 선택이 좀 더 다양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글·구상 교수, 자동차 디자이너

오토카코리아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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