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자동차 메이커 비야디(BYD, 比亚迪)가 얼마전 대형 전기 동력 럭셔리 SUV를 공개했다. 보도된 내용을 종합해 보면 비야디의 자체 프리미엄 브랜드 양왕(仰望)의 플래그 십 SUV로 나온 차량 이름은 U8 이라고 하며, 가격은 80만 위안~150만 위안(약 1억 5천만원~2억 7천만원) 이라고 한다.
중국 브랜드 비야디에서 2억원이 넘는 가격을 매긴 프리미엄 브랜드를 시작했다는 것과 자체 개발한 대형 SUV를 내놨다는 것에 ‘뭐? 정말 그랬다고?’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공개된 이미지는 차체 외부 모습 만이고, 실내는 아직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제원이나 자세한 스펙도 알 수 없지만, 여러 웹 사이트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차체 길이는 5.3미터, 휠베이스는 3미터 이상, 전고는 1.8미터 이상 이라고 한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플래그 십 SUV 모델 G80의 제원이 전장, 전폭, 전고가 4,945ⅹ1,975ⅹ1,715(mm)에 휠베이스 2,965mm인 것과 비교하면 U8 모델은 길이는 400mm 가량 더 길고 높이도 100mm 정도 더 높아서 정말로 크게 만들었다.
대략 캐딜락 에스컬레이드가 U8과 비슷한 크기일 걸로 보이는데, 에스컬레이드의 크기가 5,380ⅹ2,060ⅹ1,945(mm)에 휠베이스 3,071mm 이니, U8은 어떤 치수는 약간 크고 어떤 치수는 약간 작아서 얼추 비슷한 크기일 걸로 보인다.
그리고 U8은 275/60 R20 크기의 타이어를 쓰는데, 에스컬레이드의 타이어는 275/50 R22 규격으로, 두 차량의 바퀴 전체 지름이 거의 같은 약 840mm로 풀 사이즈 SUV의 바퀴로 정말로 크다.
웹사이트의 내용을 보면 U8은 각각의 바퀴를 구동 시키는 4개의 모터를 사용하며, 그로 인해 군용 탱크처럼 제자리에서 회전도 가능하고 후륜 조향 기능을 활용해 사선 방향, 말하자면 옆으로 가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차체를 방수 설계 해서 바퀴가 강 바닥에 닿지 않아도 마치 보트처럼 물 위에 떠 가면서 도강이 가능하다고 한다.
저 내용이 과연 정말로 가능한 건지는 모르지만 기능은 그렇다고 해도, 실제의 차체 디자인의 완성도가 궁금하다. 공개된 외장 디자인 이미지는 대형 SUV의 차체 디자인으로 직선적인 모습이다. 게다가 LED를 사용한 헤드램프와 테일 램프, 리어 뷰 미러의 디테일 등은 적어도 사진 상으로는 우리가 그동안 알던 ‘중국차’ 이미지에서 달라진 듯한 모습이다.
그런데 외부 디자인에서 눈에 띄는 것 하나가 앞 유리창 위쪽에서 지붕으로 연결되는 모서리 면에 마치 공기 흡입구 처럼 만들어진 3개의 스쿱(scoop) 이다. 저 부분의 기능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견 우리나라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4톤 이상 적재량의 트럭에서 의무 장비였던 속도표시등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런 장치는 아닐 걸로 보인다.
아직 U8 모델의 인스트루먼트 패널은 공식적으로 공개된 모습이 없지만, 웹사이트를 뒤지던 중에 U8 모델의 테스트 프로토타입의 실내로 보이는 사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스트루먼트 패널의 상부에 지붕과 비슷한 모양으로 세 개의 환기구를 만든 걸 볼 수 있다. 내외장 디자인의 아이덴티티를 추구한 걸까? 그리고 두 장의 커다란 디스플레이 패널로 구성된 것도 보인다.
차량 실내에 디지털 장비를 많이 가져다 붙인다고 고급이 되는 건 아니다. 실내의 고급감은 디자인 조형에 의해서도 좌우되지만, 가죽이나 금속 등의 여러 소재를 정교하게 가공한 부품을 어떻게 조화롭게 썼느냐, 그리고 어떤 특징을 지향 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므로, 희미한 프로토타입 사진만으로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렇게 공개된 U8 모델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기존에 알고 있던 ‘중국의 차’와는 달라졌음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중국의 자동차 업체가 프리미엄 브랜드를 출범한다는 생각을 하기는 사실 어려웠다. 물론 지금도 의문이 들긴 하지만, 공개된 U8 모델을 보면 과거와는 달라진 느낌이 의외로 많다는 걸 느끼게 된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모든 일에서 1~2년의 차이는 크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그런 시간이 쌓여서 5년 정도 지나면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는 중국의 내수 자동차 시장 규모가 엄청나다는 점이다. 중국의 연간 신차 판매 대수는 통계치 마다 약간 차이를 보이지만 대략 1,500만대 내외인데, 사실 이 숫자는 우리나라 전체의 자동차 보유 대수이다. 말하자면 중국에서는 1년마다 우리나라가 하나씩 새로 생겨나는 셈이다.
한 종류의 차량을 개발해서 손익이 맞으려면 대체로 30만대가 판매돼야 하고, 지속적인 모델 변경을 하려면 모델 마다 그 정도 대수는 계속 팔려야 가능하다. 그런데 중국의 내수 자동차 시장은 단순한 산술적 계산으로도 매년 50개의 신형 차를 개발하는 게 가능한 규모다. 그건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아무리 이상한(?) 차를 만들어도 손실을 볼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그런 시장에서는 기업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기술 축적이 가능하다.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은 사람이나 기업 모두에게 성장의 기회가 된다. 그렇지만 내수 시장이 연간 150만대 규모이면서 5개 브랜드가 있는 우리나라 시장에서는 시행착오의 위험 부담을 감수하기가 쉽지 않다.
학습이나 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이나 기업의 역량은 한 가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상상력이나 기획력, 소통능력 등의 다양한 능력이 결합돼서 종합적 역량이 나타나는데, 이건 마치 여러 개의 나무조각을 엮어 만든 물통의 구조와 비슷하다. 여러 조각이 이어져 하나의 울타리가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물통 울타리의 높이가 전체의 역량이 된다.
그런데 그림에서 보듯이 거의 모든 조각이 a 의 높이라고 해도, 만약 단 한 개의 조각이 b의 높이라면 이 물통에 담을 수 있는 물의 양은 b의 높이에 의한 빨간 점선의 높이 c에 그친다. 대다수의 조각이 아무리 높아도 낮은 조각 하나 때문에 전체의 역량이 높아지기 어렵다.
학습의 관점에서 본다면 노력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때는 어느 한가지 모르는 능력의 부족 때문에 전체 역량이 높아지지 않는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꾸준히 노력해서 부족한 어느 능력이 성장하면, 어느 순간에 전체 역량은 급격히 높아진다. 물론 노력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전체 역량은 계속 c에 머문다. 이걸 ‘최소량의 원리’ 라고 말하기도 한다.
비야디는 이번에 U9 이라는 슈퍼카도 공개했다. 비야디의 슈퍼카 기술 수준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비야디는 중국의 시장규모 덕분에 이런 차를 개발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한편으로 우리나라는 시장 규모 때문에 슈퍼카 개발이 어려운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만약 시장성이 있다면 바로 개발이 가능하기는 할까?
또 하나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건 중국산 제품의 영향력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싸구려 병따개부터 고가의 최신 디지털 기기까지 중국산이 아닌 게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 연구소에서 쓰이는 다국적 디지털 브랜드의 고성능 컴퓨터나 디자이너의 디지털 스케치 도구 신티크(Sintique) 같은 첨단 기기들, 즉 전문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는 물론이고 대학에서 전공 학생들이 쓰는 워크스테이션 수준의 고성능 노트북 등의 기자재 대부분이 브랜드와 상관 없이 거의 모두 중국산 제품이다. 애플 브랜드의 최신 스마트 폰은 말할 것도 없다. 만약에 중국산 하드웨어가 없다면 우리들의 일상은 물론이고, 기업의 연구소도 마비될지 모른다.
지금도 이런 상황인데, 앞으로 몇 년 뒤에도 여전히 우리가 중국의 프리미엄 브랜드의 SUV나 슈퍼카를 보면서 뭔가 부족하다고 고개를 저을 수 있을까? 우리의 강점을 찾지 못한다면, 마지막의 작은 조각을 키우기 시작한 걸로 보이는 중국 자동차에게 추월 당하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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