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타자 이대호
무릎 부상 안긴 오리걸음
백인천 감독의 만행
지난 시즌 한국 프로야구에는 SSG의 와이어 투 와이어 통합 우승과 같은 역사적인 기록과 더불어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가 은퇴하는 등 큰 이슈들이 많았다. 특히 이대호의 은퇴는 야구팬들에게는 큰 충격과 여운을 남겼다. 이대호는 롯데 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스타 이자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4번 타자였다.
KBO의 유일한 타격 7관왕과 두 번의 트리플 크라운, 9경기 연속 홈런 세계신기록, 한국인 최초 일본 시리즈 MVP, 한미일 리그 최초의 두 자릿수 홈런 등 엄청난 활약을 펼친 자타공인 한국 최고의 타자다. 또한 KBO 역사상 은퇴 시즌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최초이자 유일한 선수로, 말년까지 완벽한 서사를 지닌 선수였다.
선수 생활 날릴뻔한
오리걸음 훈련
사실 이대호가 한국 최고의 야구 선수로 남기까지 수없이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었지만, 과거 신인 시절 선수 생활을 통째로 날릴뻔한 부상을 당한적도 있다. 2002년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후 4번 타자로 기용되었던 이대호는 당시 자신을 타자로 전향시켰던 우용득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당하며 위기를 맞았다.
당시 차기 감독으로 부임했던 백인천 감독이 이대호에게 살이 많이 쪘다면서 오리걸음으로 계단 오르기 등의 무식한 훈련을 강행시켰고 이대호는 이로 인해 큰 무릎 부상을 당했다. 그리고 부상의 후유증으로 한동안 운동을 하지 못해 살이 130kg까지 찌는 등 2002, 2003시즌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전설의 4할타자
백인천
이처럼 이대호의 무릎을 박살 내고 2군으로 반강제적으로 내려보낸 장본인인 백인천 감독은 현재 롯데 팬들에게는 금지어로 남아 있을 정도로 만행을 저지른 감독이다. 그러나 백인천은 감독으로서의 만행을 저지르기전까지는 한국 최고의 타자이자 레전드로 남은 선수였다.
백인천은 현재 KBO에 유일한 4할 타자 출신이자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한 선수 겸 감독을 맡은 인물이다. 1960년대 고등학생 시절부터 국내는 물론 일본과 대만을 휩쓸고 다녔고 높은 타율과 많은 장타, 빠른 발에 더해 강한 어깨까지 겸비한 야구 선수에게 요구되는 모든 능력이 고르게 높은 전형적인 선수였다.
20년 만에 돌아온 한국
40살에 달성한 4할
고교 시절부터 해외로 나가 일본과 대만에서 맹활약을 펼친 후 2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백인천은 40살의 나이에도 KBO를 폭격했다. 개막전부터 안타와 홈런을 선보였고 4월까지 첫 15경기에서 3개의 홈런과 13개의 타점을 때려낸 것을 포함해 무려 0.432의 타율을 기록했다. 전반기 40경기를 소화한 시점에도 그의 타율은 0.411이었다.
팀의 투수진이 무너진 힘든 상황에서도 백인천의 위력은 점점 더 커졌다. 4할 1푼대의 고타율을 유지하는 가운데 후기리그 중반쯤에는 홈런은 김봉연, 타점은 김성한과 경쟁하며 타격 3관왕을 가시권에 두기 시작했다. 아쉽게 타격 3관왕에는 실패했지만 결국 시즌을 모두 마쳤을 때 0.264에 불과했던 그해 리그 전체의 평균 타율 대비 무려 1할4푼8리나 높은 0.412의 역사적인 타율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현재까지 불멸의 4할 타자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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