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입차 변천사
한때 왕족의 전유물
지금은 8대 중 1대
한반도의 첫 수입차는 무엇이었을까? 국내에 처음 들어온 외산 자동차에 대한 기록이 정확히 남겨진 바는 없지만 전문가들은 대한제국 막바지 고종과 순종이 탔던 ‘어차(御車)’로 보고 있다. 고종은 1911년 미국에서 들여온 포드 모델 A 리무진을 탔으며 순종은 1918년형 캐딜락 타입 57 리무진, 순정효황후는 1914년형 다임러 라운드리 리무진을 탔다.
당시 왕족의 특권이나 다름없었지만 한 세기 하고도 11년이 흐른 현재 수입차 누적 등록 대수는 300만 대에 달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국토교통부에 등록한 통계에 따르면 작년 295만 대가량이었던 수입차 누적 등록 대수는 올해 11월 기준 317만 대를 돌파했다. 국내에 등록된 전체 차량 중 수입차의 비중은 12.4%로 현재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8대 중 1대가 수입차인 셈이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수입차 시장이 형성된 시기는 언제였으며 그때 수입차의 위상은 어느 정도였을까?
70년대 부와 권위의 상징
차값만 아파트 한 채 수준
1970년대 정·재계 고위층 인사나 유명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수입차가 유행이었다. 수입차 딜러가 진출하지 않은 시기였기에 직수입 방식으로 들여올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붙는 세금만 차값의 2.5배를 넘겼다고 한다. 당시 수입차 가격이 아파트 한두 채에 달했던 만큼 수입차를 보유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회적 위상과 재력을 모두 증명했다고 볼 수 있었다.
수입품보다는 국산품 소비를 권장하는 분위기였던 1970년대에 장관급 고위 관료들이 크라이슬러, 링컨, 폰티악 등 외산 브랜드 차량을 즐겨 타자 이를 보다 못한 총리가 직접 나서 국산차로 바꾸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한국 대중음악의 대부로 불리는 조용필은 1980년대 당시 현대차가 유럽 포드로부터 라이센스를 사와 생산했던 고급차 ‘그라나다‘를 타다가 메르세데스-벤츠 280 SE로 바꾼 후 현재까지 벤츠 차량만 타는 것으로 전해진다.
1987년부터 정식 수입
메르세데스-벤츠가 최초
1987년부터는 한성자동차가 메르세데스-벤츠를 들여오며 공식적으로 수입차 시장이 열렸다. 하지만 비싼 차값은 물론이며 미국의 네 배(10%)에 달하는 관세, 이를 포함한 8가지의 세금, 까다로운 환경·안전·광고 규제, 당국의 세무조사 등으로 인해 판매량은 손에 꼽을 수준이었다. 1990년대 초반에는 미국 정부가 불공정 무역에 보복하기 위한 ‘슈퍼 301’조로 교역국들을 압박했는데, 이로 인해 수입차 시장 형성이 지연되기도 했다.
첫해에 배기량 2,000cc 미만 대형차나 1,000cc 미만 소형차로 수입 모델을 제한했던 정부는 이듬해 차종 제한을 풀었다. 이때 한성자동차에 이어 코오롱(BMW), 효성(폭스바겐, 아우디), 한진(볼보) 등 유럽 브랜드 위주긴 했지만 수입차 브랜드가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1996년 첫 1만 대 돌파
2000년대 렉서스 열풍
첫해 10대에 불과했던 수입차 판매 실적은 10년 후인 1996년 1만 315대를 기록해 최초로 1만 대를 돌파했지만 이듬해 IMF 외환위기로 인해 다시 추락했다. 이후 2002년이 되어서야 1만 6,119대로 다시 1만 대를 넘겼으며 이때부터 국내 자가용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 점유율이 1%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토요타의 프리미엄 브랜드 렉서스가 LS 430, GS 300, RX 300, IS 200 등 4개 모델을 시작으로 국내에 진출했는데, 유럽 브랜드 대비 저렴하고 신뢰성이 높아 한동안 수입차 판매량 최상위에 머물렀다. 당시 렉서스코리아의 주력 모델 ES 300은 ‘강남 쏘나타’로 통하기도 했다.
무서운 판매량 증가세
작년 점유율 18.7%
이후부터는 벤비아(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일명 독3사로 불리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가 수입차 시장 규모를 전체적으로 끌어올렸다. 2011년을 기점으로 수입차 연간 판매량이 10만 대를 넘겼으며 4년 만인 2015년에 20만 대로 두 배 이상 불어났다.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위협했던 2020년, 2021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서운 성장세를 이어갔다. 작년 국내 신차 판매량 통계에 따르면 수입차 점유율이 18.7%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올 하반기에는 차량용 반도체를 비롯한 부품 공급난이 안정세를 보이는 만큼 수입차 최다 판매 신기록을 다시 경신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베스트셀러 BMW 520d
무려 6만 6,342대 팔렸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입차 단일 모델은 무엇일까? 수입차협회 통계에 따르면 BMW 520d가 올해 상반기 기준 6만 6,342대로 1위를 차지했다. 경쟁 차종인 메르세데스-벤츠 E300은 6만 5,898대, 현재까지도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는 렉서스 ES 300h는 5만 6,912대로 각각 2, 3위에 올랐다. 한국 시장은 타 국가와 비교해도 큰 차의 선호도가 높은 만큼 BMW 5시리즈 및 메르세데스-벤츠 E 클래스의 판매량이 전 세계 1~2위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의 빈부격차 심화에 따라 수입차 구매를 고려하는 소비자들도 증가하는 추세며 폭스바겐은 일부 국산차를 위협할 정도로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내세우는 만큼 앞으로도 수입차 점유율은 높아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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