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이모(38)씨는 지난 3일 저녁 서울 광진구 CGV 강변에서 아내와 함께 퇴마록을 관람했다. 이씨는 “중·고등학생 때 밤새 읽었던 퇴마록이 애니메이션으로 나온다고 해서 기대가 컸다”며 “실사 영화를 보고 실망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 애니메이션은 원작 소설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잘 살려서 좋았다”고 말했다. 예전에 원작 소설을 다 읽었다는 이씨는 이참에 퇴마록 원작 소설을 1편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씨와 함께 관람한 아내 여모(36)씨도 “원작 소설 내용을 모른 채로 봤지만 어색하거나 지루하지 않았다”며 “애니메이션만으로도 완성도가 충분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퇴마록’이 국내 극장가에서 일일 관객 기준 마블 ‘캡틴 아메리카’를 꺾고 2위에 오르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20대부터 40대까지 성인 관객을 끌어모으며 어린이용과 외국 작품이 점령한 한국 애니메이션 극장가에 새 바람이 불 수 있다는 기대의 목소리가 나온다.
◇ ‘오컬트’ 색채 강한 베스트셀러 원작… 입소문 타고 애니메이션도 흥행
애니메이션 ‘퇴마록’은 1993년부터 2001년까지 연재된 이우혁 작가의 소설을 토대로 제작됐다. 파문당한 신부, 태극권 수련자, 몰락한 종교의 마지막 후계자, 신의 아바타가 전 세계의 악(惡)을 무찌르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설 퇴마록은 온라인 조회 수 누적 2억3000만뷰를 기록하고, 단행본 판매량은 1000만부를 달성하며 한국 판타지 소설 역사상 가장 흥행한 작품으로 꼽힌다. 앞서 1998년에는 실사 영화로도 개봉됐지만, 원작자의 의견을 배제하고 만들었다는 논란만 낳으며 혹평을 받았다.
애니메이션 ‘퇴마록’은 기존 팬뿐 아니라 일반 관람객 사이에서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5일 극장가에 따르면 애니메이션 ‘퇴마록’은 4일 기준 관람객 7991명을 기록하며 일일 기준 관람객 수 2위를 기록했다. 같은 날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캡틴 아메리카)’는 관람객 7212명으로 3위를 기록했다. 다만 손익분기점(BEP)으로 알려진 누적 관객 수 ‘100만명’에는 아직 못 미친다. 개봉 11일차 기준 애니메이션 퇴마록의 누적 관객은 30만9396명으로, 손익분기점의 30%를 달성한 상태다.

◇ 韓, 성인 애니메이션 가뭄… ‘퇴마록’ 인기에 인식 전환 기대
퇴마록이 흥행 가도를 달리면서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에 새바람이 불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은 ‘캐치! 티니핑’ 등 아동용 작품과 일본, 미국 등 외국산 작품이 점령한 상태다. 성인용 작품은 수익 대비 제작 비용이 많이 드는 탓에 투자금이 모이지 않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장편 애니메이션의 경우 평균 약 1000억원의 제작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2023년 6월~2024년 5월 기준 극장에서 개봉한 국산 애니메이션 시청자(10대~60대)는 전체 응답자 1570명 중 10%에 그쳤다. 극장판 국산 애니메이션 시청자 비율은 2021년 17.6%, 2022년 12.9%, 2023년 12.7%를 기록하며 점점 감소하고 있다. 반면 외국 애니메이션 시청자 비율은 지난해 54.2%에서 올해 63.6%로 증가하며 최근 4년 사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산 애니메이션은 중국 애니메이션에도 밀리고 있다. 최근 중국 애니메이션 ‘너자2′는 자국 ‘애국 소비’를 발판으로 세계 박스오피스 순위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너자2는 지난 1월 말 개봉 이후 지난 2월 기준 누적 관객수 2억8000만명을 기록하며 애니메이션 작품 기준 세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예상 수입액은 19억8000만달러(2조8819억원)에 이른다.
콘텐츠업계 관계자는 “성인용 국산 애니메이션이 돈을 번 사례가 없다 보니 투자 자체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아동용 애니메이션은 굿즈나 문구 사업으로 수익을 낼 수 있으니 장르 편향성이 생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퇴마록이나 ‘나 혼자만 레벨업’처럼 성공한 지식재산권(IP)을 토대로 만든 작품이 성공을 거두면서 투자자들의 인식도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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