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이 3년 만에 부분변경을 거친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ID.4를 한국 시장에 내놓으면서 ID.5도 함께 들여왔다. ID.5는 폭스바겐 코리아의 녹록지 않은 상황을 반전시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모델이다.

직접 시승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폭스바겐은 왜 이제서야 이런 차를 내놓았나 싶다. 스타일, 개선된 전기모터, 늘어난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 등 매력적인 요소가 많다. 큰 차를 선호하는 한국 시장에서도 준중형 SUV인 ID.5는 충분한 경쟁력이 있어 보인다. 기본기 탄탄한 전기 SUV를 찾는 이들에게 ID.5는 썩 괜찮은 선택지다.
과하지 않은 쿠페 스타일 디자인

ID.5는 폭스바겐 코리아가 국내 시장에 두 번째로 선보이는 전기차다. ID.4가 전기차 시장 진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면 ID.5는 전기차 시장에서 폭스바겐의 존재감을 알리는 모델이다. 결국 대중들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폭스바겐이 선택한 무언가는 쿠페형 디자인이다. 결과적으로는 옳은 선택이지 않을까 싶다. 배터리 전기차 시장에서 ‘쿠페형 SUV’는 신선하기 때문이다.

사실 ID.5는 ID.4의 쿠페형 버전이다. 주행 성능, 실내 구성 등 대부분이 같다. 전면 디자인은 ID.4와 궤를 같이한다. 엠블럼을 중심으로 둥글게 차체를 감싸는 라인, 헤드램프 디자인 등은 같다. 다른 점을 꼽자면 범퍼 하단부에 생김새다. 정돈된 ID.4와 달리 ID.5의 범퍼는 블랙컬러의 가니시와 캐릭터 라인을 쿠페 스타일에 어울리게 다듬었다. 개인적으로는 ID.5의 범퍼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ID.5의 핵심은 측면이다. A필러에서 시작된 루프 라인은 후면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전형적인 쿠페 스타일이다. 그렇다고 과하게 루프를 누르지 않았다. SUV라는 점을 고려해 적정한 선에서 타협한 느낌이다. 벨트라인은 C필러에서 살짝 치켜 올라간 디자인으로 티록 카브리올레를 연상케 한다. 특히 루프 측면 라인에 더한 실버 컬러의 스트립은 ID.5의 측면 디자인을 도드라지게 하는 요소다.

후면에서는 트렁크 리드 위에 장착된 커다란 에어 스포일러가 눈길을 끈다. 테일램프는 헤드램프처럼 차체를 가로지르며 비늘처럼 구성된 점이 특징이다. 또 트렁크 중앙에는 화이트 컬러의 레터링을 더했다. 범퍼의 형상은 전면과 동일한 라인을 적용해 일체감을 높였다.

ID.5의 차체 크기는 길이, 너비, 높이 각각 4600밀리미터(㎜), 1850㎜, 1620㎜로 같은 MEB 플랫폼을 공유하는 ID.4 대비 15㎜ 길고 5㎜ 낮다. 휠베이스는 두 모델 모두 2765㎜다. 공기저항계수는 0.26다.
간결한 실내, 물리 버튼 부재는 아쉬워

ID.5의 실내는 ‘간결’이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이 가능하다. 거추장스럽고 화려한 요소는 적용되지 않았다. 모든 기능은 12.9인치 센터 디스플레이에서 조작하는 방식이다. 운전석 스티어링 휠 앞에는 5.2인치의 소형 디스플레이 모니터가 장착돼 주행 간단한 주행 정보를 표시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버튼과 스위치가 없다는 점이다. 최근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브랜드가 많아지면서 실내의 물리 버튼을 극도로 줄이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시각적으로는 좋을 수 있지만 사용성 측면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ID.5도 마찬가지다. 실내에서 직접 조작할 수 있는 물리 버튼이라고는 변속 레버, 윈도 스위치, 비상등 버튼이 전부다. 나머지는 모두 디스플레이에서 조작해야 하는데, 여간 사용이 쉽지 않다. 오디오 전원 버튼과 시트 온도 조절, 음량 조절 조작부는 디스플레이 밑 부분에 따로 마련했지만 이마저도 터치 방식이다.

이 부분을 제외한다면 전체적인 구성은 좋다. ID.5 프로(Pro) 트림에는 첨단 보이스 어시스턴트 IDA도 탑재됐다. 덕분에 자연스러운 대화로 인포테인먼트, 전화, 미디어, 앰비언트 라이트, 주행 모드 등 다양한 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데 음성 인식률이 꽤 높은 편이다. 또 1열 컵홀더는 분리가 가능한 구성이다. 컵홀더를 분리하면 화장품과 같은 작은 물건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시트의 착좌감은 준수한 편이다. 쿠션감은 무르지 않은 편이고 1열 시트에는 마사지 및 열선을 지원하는 에르고액티브 컴포트 시트가 적용돼 장거리 주행에도 피로도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간에 대한 불만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준중형 SUV라는 점을 감안하면 도리어 좋게 느껴진다. 특히 쿠페형 SUV의 경우 2열 머리 공간이나 적재 공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데 ID.5는 그렇지 않다. 타고 내리는 과정도 편하고 성인 남성이 앉아도 머리 공간은 주먹 하나 이상이 들어갈 정도로 여유롭다. 트렁크 공간은 기본 549리터(ℓ)며 2열 시트를 모두 접을 시 1561ℓ까지 확대된다.
높아진 출력, 부드러운 주행 감각

폭스바겐은 ID.4 부분변경 모델을 내놓으면서 전기모터의 출력과 효율성을 높인 새로운 전기 드라이브 시스템이 탑재됐다고 설명했다. 이 드라이브 시스템은 ID.5에도 적용됐다. 새 전기 드라이브 시스템에는 강력한 영구자석 로터와 개선된 스테이터 및 고출력 전류를 제공하는 신형 인버터가 적용됐다. 또 열관리 및 지능화된 냉각 시스템까지 탑재돼 효율성을 높였다.

ID.5의 주행 감각은 수준급이다. 가속페달을 전개하면 최고출력 286마력, 최대토크 55.6킬로그램미터(㎏·m)의 힘이 부드럽고 강하게 발휘된다. 이는 가속력으로 이어진다. ID.5는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가속을 6.7초 만에 마무리한다. 최고 시속은 180㎞에서 제한된다.

ID.5는 도심에서 편한 운전이 가능하다. 스티어링 휠의 감각도 부드럽고 서스펜션이 노면을 대응하는 능력도 좋다. 다만 과속방지턱과 같은 높은 요철을 넘을 때 후륜 착지 감각이 약간 단단하게 느껴진다. 가족용 또는 아이 통학용, 출퇴근용으로 이용하기에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다.

다만 무르게 설정된 브레이크 페달 감각은 아쉽다. 유럽 브랜드의 경우 페달 감각을 살짝 단단하고 조작 초기부터 제동력이 강하게 발휘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ID.5는 그렇지 않다. 페달 반응이 매우 무른 편이라 제동력이 떨어지는 듯한 감각을 전달한다. 답력을 살짝 조절했으면 만족도는 높았을 듯싶다.

ID.5의 탑재된 배터리는 82.836킬로와트시(kWh) 용량이다. 이를 바탕으로 1회 충전 시 최대 434㎞를 주행할 수 있다. 폭스바겐 코리아가 판매 중인 순수 전기 모델 중 가장 긴 주행가능거리다. 전비는 복합 기준으로 5.0㎞/kWh다. 또 최대 175kW급 급속 충전을 지원해 급속 충전 시 28분 정도면 배터리 용량을 10%에서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폭스바겐 ID.5는 가지치기의 좋은 예다. 탄탄한 주행 감각과 효율성, 공간성 등을 갖춘 ID.4에 쿠페형이라는 심미성까지 가미했기 때문이다. 특히 ‘쿠페형’이라서 손해 봐야 하는 부분이 없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ID.5가 한국 시장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다소 침울했던 폭스바겐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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