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7년 SK텔레콤에서 데이터 엔지니어로 근무했던 윤성호(41) 마키나락스 대표는 미국 반도체 장비 회사인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인공지능(AI)을 적용해 반도체 장비 가동을 원활하게 하고 불량률을 낮추는 것이 목표였다. 윤 대표가 개발한 AI 프로그램은 반도체 품질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고, 제조업에 적용 가능한 AI 솔루션의 사업화를 꿈꾸게 됐다.
윤 대표는 지난 4일 조선비즈와 만나 “2017년 말 창업 당시에는 보수적인 제조업에서 AI를 활용한다는 개념 자체가 보편화되지 않았다”면서도 “그러나 제조업이야 말로 공정 자동화가 필요한 만큼 AI가 적용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키나락스는 고객사 요청에 따라 기업용 AI 솔루션을 제작하는 회사다. 마키나락스는 사람이 실수할 가능성이 높거나 위험한 공정을 기계가 대체할 수 있도록 AI 자동화 프로그램을 공급한다. 마키나락스의 솔루션을 통해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기존에는 제조사를 중심으로 솔루션을 공급했지만 현재는 금융, 유통 등 다양한 분야 기업에 솔루션을 공급하고 있다.
마키나락스는 삼성전자, SK온,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을 포함한 60여곳을 고객사로 확보했다. 고객사 중에는 윤 대표가 SK텔레콤 재직 시절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도 있다. 올해 기준으로 직원 수는 120명이다.
마키나락스의 사명은 기계를 뜻하는 라틴어인 ‘마키나’와 음악 장르인 ‘로큰롤(Rock and Roll)’에서 차용했다. AI를 통해 기계를 자동화하고, 격정적인 음악 장르인 로큰롤처럼 산업의 판을 뒤흔들고 싶다는 윤 대표의 의지가 담겼다. 윤 대표는 “산업의 한계를 뛰어넘는 특화된 AI를 개발해 고객사의 공정을 혁신하겠다는 목표로 사명을 정했다”라고 말했다.

◇ AI 솔루션 개발 기간 타사 대비 절반
마키나락스는 자체 개발 플랫폼인 ‘런웨이’를 통해 AI 솔루션을 3개월 만에 제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경쟁사들이 AI 솔루션을 개발하는 데 6개월 이상이 드는 것을 고려하면, 기간이 절반 이상 짧다. 런웨이에는 메타의 ‘라마’를 포함한 4000개 AI 모델이 내장돼 있다. 이 중 절반은 마키나락스가 개발한 자체 모델이고 나머지는 오픈소스 플랫폼인 허깅페이스에서 내려받았다.
윤 대표는 “자동차 제조사에서 도색 공정을 자동화하고 싶다면, 도색 로봇에 특화된 AI 모델들을 조합해 활용하는 식”이라며 “다양한 AI 모델을 모아놓은 플랫폼을 구축, 어느 솔루션이든 신속하게 개발할 수 있는 게 마키나락스의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신속하게 AI 모델을 개발하면 시간은 물론이고 인건비 절감까지 가능하다”라고 덧붙였다.
윤 대표는 고객사를 공략할 때 실용성을 주 무기로 내세운다. 이에 자체 모델 고도화보다는, 성능이 입증된 기존 모델을 활용해 솔루션을 신속하게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 윤 대표는 “자체 모델 고도화에 집중하는 기업들과 달리, 모델을 혼합해 만드는 방식으로 솔루션의 성능을 높이고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고객사에 알린 것이 적중했다”라고 했다.
◇ MIT 물리학 박사 출신이 AI 기업가로… “빅데이터 다루다 관심 생겨”
윤 대표는 2006년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2012년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에서 같은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부 전공은 원자 간 상호작용에 대해 연구하는 핵물리학이었다. 원자가 쪼개지고 서로 부딪치며 합해질 때 다양한 화학반응이 발생하는데, 이때 나오는 수만가지 결괏값을 모아서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윤 대표는 핵물리학 연구를 하면서 데이터 수집과 분석이 중요한 AI 개발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윤 대표는 2016년 SK텔레콤 ‘데이터 사이언스팀’에서 근무하면서 본격적으로 AI 관련 업무를 익히게 됐다. 마키나락스 창업에는 MIT 선배인 심상우 최고기술책임자(CTO)와 삼성전자 근무 시절 동료였던 임용섭 데이터 사이언스최고책임자(CDS)가 의기투합했다.

◇ 내년 중 IPO로 자체 모델 고도화
마키나락스는 2017년 12월 한국에 본사를 설립한 지 3개월 만인 2018년 3월 미국 법인을 설립했다. 스타트업이 국내외를 동시에 공략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국내 대기업은 물론이고 글로벌 고객사 유치를 위한 포석이었다.
마키나락스는 회사를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첫 해인 2018년부터 현대차와 SK텔레콤, 네이버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2020년에는 산업은행, 대성창업투자, HB인베스트먼트, 신한투자증권 등으로 부터 총 121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현재 마키나락스의 누적 투자금은 340억원에 달한다.
마키나락스는 내년 중 기업공개(IPO)를 추진해 자체 개발 모델 고도화에 주력할 방침이다. 윤 대표는 “내년 하반기 기술특례제도를 통한 코스닥 상장으로 추가 투자금을 확보하려고 한다”며 “지금까지는 실용성을 앞세운 솔루션으로 외연 확장에 주력해 왔다면, 이제는 투자금을 통해 자체 모델의 성능을 높이고 솔루션 개발에 더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일본 시장 진출과 고객사 다변화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윤 대표는 “일본은 제조사 비율이 매우 높은 곳인데, AI 도입이 우리나라보다 늦은 편이라 가능성이 큰 시장”이라며 “내년 초 일본 법인을 설립해 진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AI 수요가 높은 공공, 방산, 물류 분야 고객사 유치도 추진하고 있다”며 “다양한 분야의 고객사를 확보해 수익성을 개선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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