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으로 수입되는 자동차에 관세 부과를 예고함에 따라 관세 전쟁이 자동차 산업으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에 국내 완성차 제조사들은 자구책을 마련하면서 관세 리스크 대응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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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활동을 펼치면서부터 관세 정책을 통한 자국 우선주의에 목소리를 높여왔다. 일례로 취임 후 첫 행정명령 중 하나로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본격적인 관세 전쟁을 예고한 것이다.
이와 함께 부가가치세가 불공정하다는 의견까지 밝히며 관세 전쟁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부가가치세를 적용하고 있는 나라들은 관세를 가진 나라와 비슷하게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부가세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무관세 교역을 하는 국가들을 향한 날카로운 경고의 메시지로 풀이된다. 부가세가 미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처럼 작용하고 있어 불공정한 처우를 받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 대한민국은 10%의 부과세를 부과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평균 6.6%의 판매세를 매기고 있다.

미국발 관세 전쟁은 자동차 산업으로 확대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14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언제쯤 자동차 관세를 부과할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마도 4월 2일쯤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업계는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도화선으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로 인해 국내 완성차 제조사들도 영향을 피하지 못할 가능성이 짙다. 투자은행 벤치마크의 코디 애크리 애널리스트는 트럼프 행정부가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생산된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 시장에 판매되는 신차 가격이 기존 대비 12%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최대 관세가 부과되지 않겠지만 타격을 피하긴 힘들어 보인다.
미국은 국내 완성차 업계의 최대 수출 시장으로 꼽힌다. 지난해 전체 자동차 수출액인 683억달러 중 50.8%를 차지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미국 상무부의 신차 수출입 통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미국으로 153만5616대를 수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액은 366억달러에 달한다. 수출량으로는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 금액으로는 멕시코, 일본에 이어 세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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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완성차 업계는 관세 전쟁에 대응하기 위해 자구책 마련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먼저 현대자동차는 미국 생산을 통해 관세 정책을 피한다는 전략이다. 일례로 현대차는 대형 전기 SUV 아이오닉 9의 미국 판매분을 전량 조지아주 신공장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서 생산한다. 회사는 이를 통해 관세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이철민 현대차 국내마케팅실 상무는 “아직 관세율이 정해진 바는 없지만, 아이오닉 9의 경우 미국 판매분은 모두 미국 공장에서 조달·생산해 관세 정책을 돌파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기아는 신차 출시 계획을 수정하며 관세에 대응한다. 내년 북미 시장에 출시를 앞둔 소형 전기 SUV EV5의 출시 국가 리스트를 수정한 것. 당초 기아는 EV5를 캐나다와 미국 등 북미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었다.
하지만 생산 공장에 발목이 잡혔다. EV5는 중국과 싱가포르에서만 생산되기 때문에 미국의 중국 무역 관세 사정권에 들며 25%의 관세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기아는 미국 출시를 포기하고 캐나다에만 선보이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미국 수출에 의존해 수익을 올리고 있는 GM 한국사업장(이하 한국지엠)은 관세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지엠의 지난해 국내 판매량은 2만4824대에 불과하다. 반면 국내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한 자동차는 41만8782대에 달한다. 전체 생산량 중 88.2%에 해당하는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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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 목표를 조정했다. 회사가 설정한 올해 목표 생산 대수는 46만6200대로 부평과 창원 공장에서 각각 20만8000대, 25만7800대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전년 목표였던 53만대 대비 12%가량 낮춘 수준이다. 결국 관세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중장기 목표였던 연간 50만대 생산을 포기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산 자동차에 10%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현대차·기아의 영업이익이 4조원 넘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지엠 역시 지난해 판매량을 기준으로 1조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정확한 관세율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한국산 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 수출을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는 국내 완성차 제조사들은 위기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부가세를 콕 짚어 언급한 만큼 관세의 칼날은 한국을 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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