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타, 구글, 오픈AI 등 미국의 인공지능(AI) 기업들이 다양성을 장려하는 정책을 잇달아 폐기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프로그램 축소 및 폐지 흐름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 AI 기업에 대규모 지원 계획을 밝힌 만큼, 향후 AI 기업들의 ‘트럼프 발맞추기’ 행보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17일 테크크런치 등 외신에 따르면 오픈AI 홈페이지에서 ‘DEI 프로그램 추진에 대한 의지’(commitment-to-dei)를 담은 페이지가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이 자리는 대신 ‘역동적인 팀 구축’(building-dynamic-teams)이라는 페이지로 개편됐다. 새 페이지에는 DEI에 대한 설명 대신 “오픈AI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토론할 때 가장 강력한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는 문구가 담겼다. 이를 통해 ‘다양성’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다른 배경을 가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DEI 정책은 기업이 직원을 채용하거나 근무 환경을 조성할 때 인종·종교·성 정체성 등 소수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부여해 포용력 있는 조직 문화를 꾸리는 걸 목표로 한다. 특히 이 정책은 지난 2020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강경 진입으로 사망한 이후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기업·학교·공공기관·주 정부에 적극적으로 DEI 도입을 독려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진보 세력이 주도해 온 DEI 정책을 강하게 비판해 왔다. 그는 지난 2023년 대학 입학 결정에서 적극적 차별 금지 조치를 무효화 한 연방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이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실제 그는 대통령 취임 첫날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개 성별만 공식 인정하고 주관적 성 정체성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연방정부가 운영하던 DEI 프로그램은 폐지하고 기관마다 지정됐던 최고다양성책임자도 없앨 예정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메타, 구글 등 주요 AI 기업은 잇달아 DEI 프로그램을 폐지하거나 축소에 나섰다. 구글은 지난 5일(현지시각)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더 이상 인력 구성의 다양성을 개선하기 위한 채용 목표를 설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페이스북의 모기업인 메타도 “미국 내 DEI 정책에 관한 법적 및 정책적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며 지난달 DEI 정책을 감독하는 팀을 해체했다.
특히 AI 기업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AI를 전략 자원으로 삼고 대규모 지원을 하겠다고 밝힌 만큼, 정부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한 ‘트럼프 발맞추기’ 정책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AI 안정성과 관련된 행정명령을 철회했다. 또 지난달에는 미국 내 AI 인프라에 5000억달러(약 718조50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오픈AI·소프트뱅크·오라클 등 3개 회사가 ‘스타게이트’(Stargate)란 합작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특히 스타게이트에 참가하는 오픈AI는 친트럼프 정책에 가장 적극적이다. 오픈AI는 이날 ‘지적 자유’를 핵심 원칙으로 AI 모델 훈련 정책을 변경하기도 했다. 보다 개방적인 방식으로 질문에 답하고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며 기존에 다루지 않았던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에 대해서도 대응할 방침이다. 오픈AI는 여전히 허위 정보를 조장하거나 증오·폭력을 선동하는 발언 등 ‘명백히 해롭고 악의적인’ 요청은 제한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사용자의 체감상 느끼는 ‘검열’ 수준은 대폭 낮추겠다는 게 핵심이다.
업계에서는 오픈AI의 이런 노선 변경이 트럼프 행정부의 영향이라고 분석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기술 기업 중 특히 빅테크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고 있는지 예의주시해 왔다는 점을 들어, 오픈AI가 선제적으로 ‘지적 자유’를 표방하며 보수 진영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의 신뢰를 얻으려는 포석으로 해석 중이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AI나 빅테크 기업들의 경우 개인정보와 같은 데이터 활용이 핵심인 만큼 정부 규제 완화가 중요하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경우 그런 규제를 완화하고자 하는 만큼, 트럼프 친화적으로 발맞춰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