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딥시크의 성과는 인공지능(AI) 기술 경쟁력 확보에서 인재가 얼마나 핵심 역할을 하는지 보여준다. 현재 국내 AI 연구 인재는 2만1000명으로 중국의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최양희(70) 한림대 총장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국내 AI 인재 확보 방안이 절실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 시카고대 폴슨연구소에 따르면 전 세계 상위 20%에 드는 실력을 가진 AI 연구 인력의 출신국은 중국이 47%로 가장 많았고, 미국(18%)과 유럽이 (17%) 뒤를 이었다. 한국 출신은 2%에 불과했다.
최 총장은 29년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소프트웨어(SW) 인재 양성에 힘썼다. 서울대 AI위원회 초대 위원장과 미래창조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냈다. 현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과 KT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최 총장은 “AI 인재 확보 측면에서 현재 한국은 양적‧질적으로 심각한 위기”라며 “특히, AI 연구자 수가 글로벌 경쟁국들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ㅡ딥시크 쇼크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AI 인재 확보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미국의 강력한 견제 속에서도 중국이 자국 인재의 힘으로 오픈AI의 최신 AI 모델에 견줄만한 성과를 달성했다. AI 경쟁력이 결국 탁월한 인재들의 역량에 달려있음을 증명한 사례다. 한국은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이 매년 심화돼 미래 AI 인재 확보에 대한 전망마저 어두운 상황이다. 국내 AI 관련 대학원 졸업생 중 약 40%가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AI 인력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ㅡ미국이나 중국, 일본은 어떤가.
“미국은 전 세계 AI 인재들을 흡수하고 있기 때문에 AI 인재 확보에 대한 걱정이 크지 않다. 세계 최고 수준의 AI 인재를 보유한 게 미국이다. 중국은 순수 국내파가 AI 굴기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내수 인재풀 확대 전략을 펼치고 있다. 매년 공학 엔지니어만 150만명을 배출하고 있다. 칭화대, 저장대, 중국과학기술대 등에서 토종 AI 인재를 길러 ‘자급자족’이 가능한 수준이다. 일본은 2020년부터 혁신적인 비자 제도와 체계적인 지원 정책에 힘입어 최근 AI 인력 순유입국으로 전환했다. 구글 출신 외국인 창업자들이 도쿄에 설립한 ‘사카나AI’가 단기간에 AI 유니콘으로 급성장했다.”
ㅡ한국이 AI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원인은.
“인재에 대한 보상 체계의 현격한 차이가 있다. 구글 등 미국의 주요 빅테크는 박사급 AI 연구원에게 100만달러(약 14억5380만원)에 달하는 초봉을 제시한다. 한국의 대기업과는 차이가 크다. 오픈AI만 해도 박사급 AI 연구원이 86만5000달러(12억5753만원)의 초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성과보다는 근속연수를 중시하는 기업 문화, 장기적인 커리어 성장 가능성 부족도 문제다. 한국은 사기업도 겸직이 금지된 곳이 많은데, 만약 2~3개의 겸직이 허용된다면 해외의 AI 연구 인력이 한국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본다.
두 번째 원인으로는, 인재를 양성하고 유지할 교육(대학) 생태계가 약화됐다. 대학의 열악한 연구 환경과 낮은 보상으로 우수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
세 번째 원인은 한국의 열악한 AI 스타트업 생태계다. 작은 투자 생태계 규모와 글로벌 투자 시장과의 단절, 엄격한 AI 데이터 규제 등으로 인해 AI 스타트업 생태계가 취약하다. 한국에서 국내 스타트업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어려워 AI 인재들이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다.”
ㅡ미국과 중국의 스타트업 환경은 어떤가.
“미국과 중국은 AI 스타트업을 적극 지원하며 AI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미국은 오픈AI, 앤트로픽, 코히어와 같은 AI 스타트업이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벤처캐피탈(VC)과 대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중국도 AI 스타트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활발하고 바이두, 알리바바 같은 대기업들이 AI 신생 기업과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ㅡ한국의 AI 기술 경쟁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최근 영국 토터스미디어가 발표한 주요 국가별 AI 경쟁력 지수 순위(글로벌 AI 인덱스 2024)를 종합해 보면 미국과 중국은 압도적인 투자, 다수의 AI 인재 확보, 정부 지원 등을 기반으로 글로벌 선두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미국(100)을 기준으로 중국이 대략 53.88을 기록해 두 번째로 AI 기술 경쟁력이 높은 국가로 나타났다. 한국(27.26)을 비롯해 싱가포르(32.33), 영국(29.85), 프랑스(28.09), 일본(20.31) 등이 20~30점대에서 각축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ㅡ카카오나 KT처럼 해외 선진 업체와 AI 기술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거나, 자체적으로 기술력을 확보하는 방안이 있다. 어떤 방안이 한국에 적합하다고 보나.
“두 전략은 각각 장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양자를 병행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자체적인 AI 기술 확보를 뜻하는 ‘소버린(주권) AI’는 데이터 주권과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 선진 기술업체와 협력을 하더라도 자체 기술력을 가지고 있어야 협상력을 가질 수 있고, 갑작스러운 해외 업체의 사용료 인상 요구 등의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다.
챗GPT 등 대표 모델들이 미국의 데이터를 주로 활용하기 때문에, 한국 고유의 언어나 문화 등에 대한 학습 수준이 낮다는 점도 자체 AI 기술력 확보가 필요한 이유다. 첨단‧국방 산업에서 핵심 정보의 유출 위험이 있기 때문에 주요국들도 소버린 AI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해외 업체들과 기술 협력을 통해 최신 기술을 빠르게 도입,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디지털 안보와 주권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면서도 해외 빅테크들과 적극적 협력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특히 경쟁력 있는 글로벌 서비스 개발을 균형 있게 추진하는 것이 한국의 AI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ㅡ국내 기업들이 생성형 AI 도입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이미 AI는 산업 전반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기업 생존과 경쟁력을 좌우하는 필수 요소가 됐다. 올해는 AI가 본격적으로 실용화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포레스터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기업의 70% 이상이 AI를 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발표한 카카오와 오픈AI와의 협력은 국내 기업들의 생성형 AI 도입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본다.
주목할 만한 건 ‘AI 에이전트’다. AI 에이전트를 통해 단순한 업무 자동화를 넘어 자율적으로 문제를 감지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AI를 도입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간 생산성 격차는 커질 것이다.”
ㅡ규제가 국내 AI 기술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진 않나.
“AI 규제를 할 때 기술 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책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균형적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은 유럽연합(EU)이나 일본 대비 높은 규제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U 보다 2.6배 많은 AI 규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보다도 1.8배가량 규제가 더 많다.
작년 12월 AI 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는데, 향후 시행령에서 규제 범위와 요건을 구체화하는 게 중요할 것이라 본다. 실효성 있는 규제 조항으로 사업 불확실성을 해결해줄 필요가 있다. 산업별 특성을 고려한 차등 규제를 도입해야 하고, 교원 창업 휴직 기간 확대나 규제 샌드박스 사업 확대 등도 개선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ㅡAI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 방향에 대해 조언한다면.
“초등학교부터 대학, 대학원까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해야 한다. AI 인재를 육성한다고 해서 좁은 기술 분야에만 국한해 교육을 하기보다는 기초 소양을 키워주는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AI는 폭넓은 분야에서 적용되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는 역량도 중요하다. AI 인재라는 용어는 AI로만 너무 국한된 느낌이 있다. 어떻게 보면 소프트웨어 인재가 더 적합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AI대학원이라는 용어를 반대한다. 소프트웨어 역량이 AI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과정부터 소프트웨어 인재 육성을 위한 장기적 관점의 프로그램 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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