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것에 있어 ‘확신’을 갖는 건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특히 회사가 자신의 제품에 확신을 갖는 건 더욱 그렇다. 소비자가 그 확신에 동감하지 못한다면 철저히 외면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명확한 요소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얘기다.
볼보자동차코리아는 새로운 콤팩트 전기 SUV EX30을 내놓으면서 향후 10년을 이끌 새로운 성장 동력이라며 강하게 성공을 자신했다. EX30이 속한 콤팩트 전기 SUV 세그먼트는 가장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시장이기도 하다. 쟁쟁한 경쟁자들이 포진한 시장에 진출하면서 그들이 EX30에 대해 확신한 이유는 무엇일까.
새 시대 열 전기차, EX30
볼보자동차는 일찌감치 내연기관 개발 중단을 선언했다. 당시로서는 조금 이른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러면서 전 모델 라인업에서 디젤 엔진을 드러내고 마일드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에 집중했다. 물론 C40, XC40 리차지 등과 같은 전기차도 라인업에 추가하며 빠르게 친환경 전환 작업을 수행했다.
이러한 가운데 등장한 게 EX30이다. EX30은 기존 볼보자동차의 새 시대를 여는 전기차로 기존 선보였던 전기차와 완전히 다르다. 내연기관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 아닌 새로 개발한 전기차 전용 플랫폼 SEA를 적용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볼보자동차는 유럽 시장에서 EX30의 경쟁력을 확인했다. EX30은 지난해 유럽 시장에서 7만8032대가 판매되며 테슬라를 제외한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에 등극했다.
국내에는 출시 전부터 반응이 뜨거웠다. 사전계약을 시작한 2023년 11월에는 이틀 만에 1000대를 달성하는 등의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좀처럼 출고가 시작되지 않는 바람에 반응이 살짝 식는 듯했지만 볼보자동차코리아는 출시와 동시에 가격을 최대 333만원을 인하하는 등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앞세워 다시 불을 지폈다.
새로운 스칸디나비아 패밀리 룩
EX30은 기존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미지를 풍긴다. 앞서 선보인 전기차 XC40 리차지, C40 리차지와 달리 전기차 전용 디자인이 비로소 완성된 느낌이다. 전면부에는 새롭게 디자인된 헤드램프를 적용하고 후드를 낮춰다.
단연 눈에 띄는 부분은 토르의 망치라 불리는 헤드램프다. EX30에는 기존 T자형 주간 주행등을 픽셀 형태로 새롭게 디자인한 것이 특징이다. 또 범퍼 양옆에는 공기역학성능을 고려한 공기 흡입구를 뒀는데 주간주행등과 연결되는 느낌이 든다. EX30은 공기역학계수 0.28이다.
측면은 단정하다. 루프는 블랙 컬러로 마무리하고 측면 벨트 라인은 C 필러로 갈수록 살짝 치켜 올라가는 듯한 디자인이다. 이는 XC40 리차지, C40 리차지와 비슷한 구성이다. 또 C 필러와 D 필러 사이에는 ‘EX30’ 레터링을 더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시승차의 휠은 19인치로 블랙 컬러를 통해 전기차 특유의 독특한 디자인이 강조된 느낌이다.
후면은 기존 볼보의 테일램프 디자인을 재해석한 점이 눈에 띈다. 볼보의 경우 스웨덴의 도로를 형상화한 세로로 긴 테일램프 디자인을 적용하는데 EX30은 이와 조금은 다르다. 전면 주간주행등과 동일하게 픽셀 형태가 적용됐으며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 아닌 위아래 부분을 나눠 디자인했다. 또 아랫부분 램프는 ‘ㄷ’자 형태며 양 램프를 감싸는 테두리를 더해 안정감이 높아 보인다.
극한의 스웨디시 미니멀리즘
EX30의 실내는 볼보자동차의 환경을 향한 광기 어린 진심의 결정체이자 미니멀리즘의 자체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콘셉트카를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실내에는 가죽을 한 톨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재활용 데님 또는 플라스틱, 아마(flax) 기반 합성 섬유, 70% 재생 폴리에스터를 포함한 울 혼방 소재, 핀란드 및 스웨덴에서 생산된 소나무 오일과 재활용 PET 소재 등 재활용 혹은 재생 가능한 소재로만 실내를 완성했다. 이러한 친환경 소재는 동물 가죽 대비 촉감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EX30의 실내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미니멀리즘이 강조된 느낌을 받는다. 중앙에 위치한 12.3인치 세로형 디스플레이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운전석 클러스터도 삭제했다. 클러스터 자리에는 운전자를 모니터링하는 작은 장치만 위치할 뿐이다.
실내 분위기는 차분하다. 모든 디자인은 자연환경에서 얻어 완성했는데 경쟁 모델과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도어 패널부터 대시보드 하단 등을 잇는 소재는 밤하늘에 별이 떠 있는 듯한 감성을 느낄 수 있고 세로형 송풍구는 폭포수가 떨어지는 모습이 떠오른다.
특히 윈드 실드와 대시보드 사이 위치하고 있는 하만카돈 사운드 바는 듣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EX30에는 하만카돈 사운드 바와 9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하만카돈 사운드 하이엔드 사운드 시스템이 탑재됐다. 사운드 출력은 1040와트(W)에 달해 각 음역대에서 빈틈없는 사운드를 제공한다.
물리 버튼으로 조작할 수 있는 모든 기능은 12.3인치 디스플레이로 옮겨왔다. 화면 상단에는 주행 정보를 표시해 클러스터 역할을 대신하고 중앙에는 내비게이션, 하단에는 공조 및 오디오 등을 조작할 수 있도록 분할돼 있다. 각 기능은 터치 또는 누구 오토(NUGU Auto)로 제어할 수 있다. 누구 오토의 음성 인식은 주변 소음에도 인식률이 높다.
음성 인식 기능이 훌륭하긴 하지만 물리 버튼이 없다는 점은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EX30은 윈도우 조작 버튼도 단 2개뿐이다. 2열 윈도우를 조작하기 위해서는 ‘REAR’ 버튼을 누르고 조작해야 하는 방식이다. 급한 상황 혹은 리어 버튼이 눌려 있는 상황에서는 조작이 번거로울 것 같다.
공간은 경쟁 모델대비 넉넉하지 않은 편이다. 특히 1열과 2열 머리 공간은 부족하지 않지만 무릎 공간이 약간 좁은 편이다. 성인이 편하기 앉기는 넉넉하지 않아 보인다. EX30의 길이, 너비, 높이는 각각 4235밀리미터(㎜), 1840㎜, 1555㎜며 휠베이스는 2650㎜다. 휠베이스만 높고 보면 기아 EV3보다 30㎜ 짧다. 또 자사 전기차인 XC40 리차지, C40 리차지와도 52㎜ 차이가 난다.
후륜 모터와 섀시 견고함이 완성한 매끈한 주행 감각
EX30의 주행 감각을 느껴보기 위해 경남 김해시를 출발해 울산광역시 울주군을 돌아오는 왕복 2시간가량의 거리를 달렸다. 주차장을 빠져나오자 마자 기존 볼보와 어딘가 다른 주행 감각이 바로 느껴졌다. 일반적으로 볼보자동차는 전륜구동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EX30은 후륜 액슬에 전기 모터를 둔 후륜구동 방식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전륜 모델 대비 앞쪽이 가볍게 느껴졌다.
EX30은 후륜 싱글 모터 익스텐디드 레인지 파워트레인을 탑재하고 있다. 모터의 출력은 272마력이고 최대토크는 35.0킬로그램미터(㎏·m)다. 이 모터는 66킬로와트시(kWh) 용량의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와 조합된다. 일상적인 환경에서 움직임은 꽤나 경쾌하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고속 영역까지 빠르게 도달한다. 출력에 대한 부족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다.
브레이크 성능도 딱 알맞다. 급감속하는 상황에서 차체가 쏠리는 현상도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브레이크 페달 감각이 약간 무른 편이라 익숙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조금 단단하게 설정했으면 만족도가 더욱 높아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회생제동은 단계를 조절할 수 없지만 작동이 부드러운 편이다.
스티어링 감각은 날카롭지는 않지만 의도하는 방향으로 차체가 잘 따라온다. 특히 앞쪽 무게가 가벼운 편이라 회두성이 좋다. 또 서스펜션 상하 운동이 범위가 크지만 차체가 한쪽으로 쏠리는 느낌도 덜하다. 장거리 주행에도 피로도가 높지 않을 정도의 서스펜션 세팅이다. 전기모터와 배터리, 서스펜션, 스티어링 감각의 조화가 높은 편이다.
EX30은 충분히 매력적인 전기차다. 4000만원대의 가격과 제원 대비 높은 실제 주행가능거리, 매끈한 주행감, 감각적인 실내 구성은 전기차 구입을 고려하는 이들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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