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아이오닉 브랜드 최초의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아이오닉 9’의 가격을 6천만원대로 책정하면서 승부수를 띄웠다. 보조금을 적용할 경우 6000만원 초반대에도 구입이 가능한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공격적인 가격 책정으로 앞서 출시한 대형 SUV 팰리세이드와 형제 차인 기아 EV9과 영역 다툼이 발생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9의 시작 가격을 7인승 익스클루시브 기준 6715만원으로 책정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이는 2023년 출시한 기아 대형 전기 SUV EV9의 엔트리 트림인 에어와 비교하면 622만원 저렴한 가격이다. 가장 상위 트림인 6인승 캘리그래피에 4륜구동 시스템을 더한 모델과 EV9 6인승 GT라인과 비교해도 68만원 낮다.
이 같은 가격 책정은 기아 EV9의 판매 부진의 영향이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기아는 자사의 첫 번째 대형 전기 SUV 선보이면서 전기차의 새 시대를 열 것으로 점쳤지만 예상과 달리 풀옵션 기준 1억원에 육박하는 높은 가격과 전기차 수요 둔화 현상에 발목을 잡히면서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실제로 기아 EV9의 지난해 연간 판매량은 2012대에 그쳤다. 8052대를 판매했던 2023년에 비해 무려 75% 급감한 수치다. 지난해 12월의 하락 폭은 더욱 컸다. EV9의 지난 12월 판매량은 총 109대로 전년 동기 대비 95.9% 감소했다.
아이오닉 9은 국내와 미국 시장을 공략할 전략 차종이기 때문에 가격 조정이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여기에 새로 개정된 전기차 보조금 지원 기준 역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가 공개한 아이오닉 9의 트림별 가격은 7인승 ▲익스클루시브 6715만원 ▲프레스티지 7315만원 ▲캘리그래피 7792만원이다. 6인승 모델은 ▲익스클루시브 6903만원 ▲프레스티지 7464만원 ▲캘리그래피 7941만원이다.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적용할 경우 실제 구매 가격이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엔트리 트림의 경우 보조금을 적용할 시 6000만원 초반대에 구입 가능할 것이라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현대차 아이오닉 9과 기아 EV9은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바탕으로 설계됐지만 배터리 용량이 다르다. EV9의 경우 99.8킬로와트시(kWh)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했지만 아이오닉 9의 배터리 용량은 110.3kWh다.
이로 인한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 차이도 있다. 아이오닉 9의 항속형 모델의 경우 후륜 모터 기준 532킬로미터(㎞)다. 반면 EV9는 후륜 모터, 19인치 휠 적용 기준으로 1회 충전 시 최대 501㎞를 주행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더 나은 성능의 전기차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는 제대로 된 신차 효과를 누리기 위해 합리적인 가격을 전략으로 앞세웠다”며 “미국 현지에서도 같은 전략을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세부 지침을 충족하지 못해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올해 상반기 내 보조금 지급 대상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미국 현지 가격 역시 합리적인 수준으로 책정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아이오닉 9의 가격은 앞서 출시한 2세대 팰리세이드와도 중첩된다. 디 올 뉴 팰리세이드의 2.5 가솔린 터보의 트림별 가격은 9인승 ▲익스클루시브 4383만원 ▲프레스티지 4936만원 ▲캘리그래피 5586만원이며 7인승 ▲익스클루시브 4447만원 ▲프레스티지 5022만원 ▲캘리그래피 5706만원이다.
가솔린 모델의 기본 가격은 아이오닉 9보다 저렴하다. 하지만 상위 트림에 선택 사양을 더할 경우 아이오닉 9의 가격을 넘어서기도 한다.
현대차 공식 홈페이지 견적내기 기준으로 캘리그캘리그래피 7인승 AWD 모델에 ▲빌트인 캠 2 플러스,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70만원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 130만원 ▲듀얼 와이드 선루프 90만원 ▲2열 다이내믹 바디케어 시트 80만원 ▲H 지니어스 액세서리 라이프스타일 70만원을 적용하면 최종 금액은 6474만원이 된다. 하이브리드 모델에도 동일한 선택 사양을 적용하면 가격은 7150만원이다.
트림별 사양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가격대로 인해 팰리세이드와 같은 대형 SUV의 구매를 고려하는 일부 소비자들이 아이오닉 9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기아 EV9, 현대차 팰리세이드, 아이오닉 9 등 세 차종의 비슷한 가격대로 인해 한쪽으로 수요가 몰리는 것이 아닌 전기, 내연기관, 하이브리드 등 사용 목적과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선택이 고루 분포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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