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인공지능(AI) 의료기기를 포함한 디지털 의료제품을 발전시키기 위한 법이 시행된다. 허가·안전 체계를 선제적으로 강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산업 육성에 필요한 근거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의료 AI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의료시장 진입을 돕는 혁신적인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3일 정부부처에 따르면 AI,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등 디지털을 접목한 의료제품의 관리·발전 방안을 담은 디지털의료제품법이 24일부터 시행된다.
법안은 변경 주기가 짧은 디지털 기술을 반영해 인허가 등 규제를 간소화하고, 제품 전주기 안전관리 규정을 마련한 게 특징이다.
주요 내용은 △해킹 등 위협 대응을 위한 보안지침 준수 △업데이트에 따른 변경관리 계획서 제출 △사용자가 AI 기술 적용 사실을 알도록 기술 적용 고시 체계 마련 △디지털의료기기 우수관리체계 인증 시행 등이다. 특히 데이터 학습이 잦은 AI 의료기기는 제품 허가 시 변경 관리 계획을 제출하면 계획 내 변경은 간단한 보고만으로 처리하고, 동일한 알고리즘이나 센서를 활용할 경우에도 중복 심사하지 않도록 하는 등 제품 특성을 반영해 허가·심사 체계를 간소화했다.
산업계는 이번 법 시행이 우리나라가 AI 의료기기 등 디지털 의료기기·융합제품 규제를 선도하는 동시에 안전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디지털의료제품을 규정함과 동시에 특성을 반영한 관리 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국가 차원의 육성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김택균 탈로스 대표(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디지털 의료제품을 별도 분류해 법을 제정한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면서 “관련 규정을 선제적으로 마련해 육성 기반을 닦겠다는 상징적인 의미”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가적 육성 의지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산업 육성을 얼마나 견인할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주도한 규제 법안이라는 성격을 고려하더라도 시장 진입이나 생태계 조성 등 산업육성 근거가 거의 없다는 점이 아쉽다는 지적이다.
한 의료AI 기업 대표는 “위해도가 낮은 제품 등 일부 의료기기에 대해선 식약처 임상시험계획 승인 없이도 진행토록 조항을 만들었지만, 현재도 혁신의료기기 제조기업 인증을 받은 곳은 이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된다”면서 “잦은 학습과 제품 업데이트에 대해 허가·심사 조항을 간소화한 것도 있지만 보안지침을 포함한 품질관리체계와 위기관리시스템 등 새로 생긴 규제도 있어 혜택을 체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디지털의료기기 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제도로 디지털 의료기기 심사 단축, 허가 간소화 등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수가’ 문제는 좀처럼 진척이 되질 않는다”면서 “시장에 제품이 출시돼도 적용이 안되면 무용지물인데, 디지털의료제품법에는 수가 등 실질적인 시장 진입을 위한 지원 방안이 제시되지 않아 아쉽다”고 전했다.
정부는 디지털의료제품법이 안전성과 관리 방안에 초점을 맞춘 만큼 수가 내용을 반영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대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중심으로 AI 의료기기에 대한 수가 지급 정책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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