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은 신승 시장 발굴과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 불어 닥친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인도 시장과 싱가포르, 동남아 등을 핵심 거점으로 삼고 지속적인 투자를 단행하며 위기 돌파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시장은 인도다. 현대차와 기아는 인도 시장에 현지 전략 차종을 잇달아 선보이며 시장 공략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현대차는 18일(현지시간) 인도 델리에서 열린 ‘바랏 모빌리티 글로벌 엑스포 2025’에 참가해 인도 시장을 위한 전략 모델 출시 계획을 공유하며 점유율 확보를 위한 질주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현대차는 인도의 삼륜차 생산 업체 TVS 모터와 손잡고 삼륜차 양산 검토를 공식화했다. 설명에 따르면 현대차는 설계와 개발, 디자인 등을 담당하고 TVS 모터는 현지 생산과 판매를 맡는다.
이상엽 현대제네시스글로벌디자인담당 부사장은 “이번에 공개한 콘셉트 모델은 인도 환경에 최적화된 라스트 마일 및 공유 모빌리티다”고 강조했다.
도 샤라드 미쉬라 TSV 모터 사장은 “현재 양사는 협력을 통해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기술, 품질 분야에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양산 검토 선언과 함께 삼륜 전기 콘셉트카를 공개했다. 해당 모델은 인도의 도로와 기후 환경을 고려해 이동과 물류, 응급 구조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견인 고리와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접이식 좌석 등도 달았으며 기후를 고려해 차체 높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와 함께 소형 전기 SUV 크레타 EV도 선보였다. 크레타 EV는 인도 현지서 처음 생산하는 전기차다. 지난 2015년 7월 처음 등장한 크레타는 인도 현지 전략 모델로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모델이기도 하다.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현대차의 인도 판매량 45만9000여대 중 30% 이상을 차지했을 정도다. 현대차는 크레타 EV를 시작으로 오는 2030년까지 총 5종의 전기차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기아 역시 인도 시장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아는 지난 16일 인도 맞춤형 SUV 시로스의 양산을 시작했다. 시로스는 사전 계약 1만대를 돌파하는 등 공개와 함께 큰 인기를 끌었다. 시로스는 차체 길이가 4미터(m) 이하며 동급 모델 대비 넓은 실내 공간과 ▲2열 리클라이닝 ▲통풍 시트 ▲파노라마 디스플레이 ▲전방 충돌 방지 등 편의 안전 기능을 탑재한 것이 특징이다.
기아는 다음 달 1일 시로스의 공식 판매 가격을 공개하고 판매에 돌입한다. 기아 관계자는 “시로스는 1만 258대의 사전 계약 대수를 기록했다”며 “인도 시장을 시작으로 아시아·태평양을 비롯해 중남미, 아프리카·중동 지역으로 판매를 확대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기아는 시로스 외에도 카렌스 부분변경 모델과 카렌스 전기 모델을 투입하는 등 라인업 강화를 통해 점유율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와 기아가 인도 시장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기회의 땅’이라고 불릴 정도로 시장 가능성이 높아서다. 시장조사업체 S&P글로벌의 집계에 따르면 인도 자동차 생산량은 2020년 306만대에서 2023년 490만대로 크게 증가했다. 또 오는 2031년에는 1000만대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의지까지 더해지며 공략의 속도를 높여왔다. 정 회장은 일찌감치 인도 시장의 가능성을 알아봤고 시장 공략을 위한 체계적인 준비에 돌입했다. 현대차 인도 법인 상장이 대표적인 예다.
정 회장은 “인도 시장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며 “인도는 내수 수요도 크지만 수출량이 많기 때문에 해외 시장 개척에 중요한 거점으로 작용할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현지 점유율 확대를 위한 생산 체계에도 투자를 단행했다. 현대차는 첸나이 1.2공장에 이어 제너럴 모터스(GM)로부터 인수한 탈레가온 공장을 통해 연산 100만대 생산 체제도 구축했다. 기아 역시 아난타푸르 공장을 통해 연간 50만대 수준의 생산력을 확보할 예정이다.
현대차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도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시장 공략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는 말레이시아에 2025년부터 2030년까지 총 21억5900만링깃(697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투자 결정은 말레이시아를 새로운 수출 거점으로 삼고 아세안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려는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아세안은 경제 규모는 3조6000억달러(5220조원)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시장이다. 특히 탄탄한 내수와 낮은 임금과 물가로 인해 자동차 생산에 최적화된 시장이다. 이를 파악한 현대차는 아세안 자동차 판매 점유율 중 30% 수준을 차지하는 인도네시아를 아세안 공략 교두보로 삼고 2022년 아세안 지역 첫 번째 공장을 설립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싱가포르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사실 싱가포르는 ‘신차 무덤’이라 불릴 정도로 신차 판매량이 높지 않은 시장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신차를 사려면 1억원 이상을 호가하는 차량취득권리증(COE)가 필요하다. 심지어 한 달에 두 차례 열리는 경매 시장을 통해서만 살 수 있고 등록세와 도로 이용세 등 각종 세금도 내야 신차를 살 수 있다. 신차 구매를 가로막는 요인이 많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그룹은 싱가포르에 힘을 쏟고 있다. 현지 판매량이 아닌 문화지리적 특성, 싱가포르 정부 정책에서 가능성을 본 것이다.
싱가포르는 끝과 끝을 이동하는 데 차로 30분이면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고객의 피드백을 받기 빠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또 친환경차 전환과 자율주행에 있어 개방적인 정부 정책 역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싱가포르 정부는 지난 2019년 서부 지역의 모든 공공도로를 자율주행 시험 구간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현대차는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 싱가포르를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개발의 전초기지로 삼고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CIS)’도 지었다. 단순 생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혁신적인 생산 체제를 도입할 테스트 베드로 이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단순히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시장 공략이 아닌 새로운 핵심 거점을 확보하며 발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며 “이 같은 움직임을 통해 글로벌 위기가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이를 기회로 연결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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