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이 20일(현지시간) 진행되면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일제히 긴장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선거 활동 당시 내걸었던 공약이 그대로 이행된다면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운동 당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을 구호로 내세우며 전기차 의무화 취소,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 관세 인상 등을 강하게 주장해 왔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다는 게 골자다.
트럼프 당선인의 공략이 공개되면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일제히 긴장했다. 미국 시장에 전기차를 포함한 진환경차 수출 및 현지 사업에 제동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IRA에 따른 세액 공제 혜택으로 현지에서 생산된 전기차를 구매할 경우 최대 7500달러(1087만원)의 보조금을 지원받는다. 만약 트럼프의 공략대로 IRA가 폐지되면 보조금 지원을 받기 힘든 국내 친환경차는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판매량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 높아지게 된다.
북미 시장에 특별히 공을 들이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은 조지아주에 설립한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는 덕분에 보조금 지급 대상에 이름을 올리며 한 차례 리스크를 피했다.
미국 에너지부는 올해 1월 현대차의 아이오닉5와 아이오닉6, 아이오닉9, 기아 EV6, EV9, 제네시스 GV70 등 총 5종이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가 IRA 보조금 대상에 포함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해당 차종을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의 IRA의 전면 폐지는 가능성이 적다는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IRA를 전면 폐지하는 것은 매우 현실적이지 않다”며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의회 승인이 필요하고 IRA 수혜주와 관련된 연방 상하원 의원 대부분이 공화당 소속이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리스크는 IRA 폐지만이 아니다. 관세 인상을 예고 역시 업계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에서 수입하는 중국산에 60%의 고관세를 적용하고 다른 국가에서 수입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10~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힌 바 있다.
관세 인상 역시 가격 경쟁력을 낮추는 요인이다.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경우 완성차 제조사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늘고 이는 자연스레 가격으로 연결된다. 이렇게 되면 현지 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리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지난해 미국 수출 물량을 기준으로 보면 관세가 20% 인상될 경우 현대차와 기아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금액은 각각 월 4000억원, 2000억원으로 추산된다. 한국에서 생산한 물량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한국지엠의 경우에는 일부 생산 라인이 멈춰 설 가능성도 있다. 높은 관세를 물어가면서까지 한국에서 생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자 완성차 업계는 트럼프 당선인을 향한 애정공세를 퍼붓고 있다. 취임식을 위한 기부 행렬이 대표적인 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 미국 법인을 통해 100만달러(14억7000만원)의 후원금을 전달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직접 후원금을 전달한 것은 처음이다.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미국을 대표하는 완성차 제조사 포드와 제너럴 모터스(GM), 일본 토요타자동차 역시 100만달러를 전달하는 등 기부 행렬에 동참했다.
완성차 업계의 기부금 전달은 트럼프 당선인과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뉴욕타임스는 100만달러 이상을 기부하면 트럼프 당선인 부부와 만찬 등 주요 요직자들과 만날 기회가 생긴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100만달러로 동일한 기부금을 전달한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인과 대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자신들의 의지를 전달해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해 총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며 “트럼프 당선인과 우호적인 계를 형성할 경우 100만달러 이상의 가치가 창출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기부금을 전달한 현대차그룹 경영진들의 취임식 참석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차그룹에서는 미국에 체류 중인 호세 무뇨스 대표이사 사장 등이 취임식 전 만찬에만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고 경영진과의 회동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인의 리스크가 자동차 산업에 드리운 만큼 업계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만전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다”며 “현대차그룹은 트럼프 당선인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기부금을 전달하고 회동 추진을 통해 활로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정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에 트럼프 당선인 체제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해 위기를 벗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했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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