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다가온 가운데 글로벌 기업들이 기부 행렬을 펼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대자동차그룹도 기부에 동참하면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달 12일 현대차그룹은 현대자동차 미국 법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100만달러(14억7000만원)의 후원금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직접 후원금을 전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그룹의 후원금은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후원한 금액과 동일하다. 미국을 대표하는 완성차 제조사인 포드와 제너럴 모터스(GM), 일본 토요타자동차도 100만달러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후원금을 전달한 것에 대해 트럼프 당선인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 ‘트럼프 리스크‘를 피해 가려는 움직임으로 판단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줄곧 자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며 모든 국가 수입품에 최대 2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자동차 역시 포함이다. 북미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던 현대차그룹에게는 트럼프의 공약이 최대 위기로 작용한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오랜 시간 미국 시장을 위해 많은 투자를 단행했다. 미국 시장을 위한 전용 모델을 개발하는 것은 물론 각지에 생산 기지 확보 등이 대표적인 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에 애정을 쏟는 이유는 단일 국가로 최대 시장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미국 시장에서 170만8293대에 달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이는 전체 판매량의 20%가 넘는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정책은 중차대한 문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 판매량 중 절반 이상을 한국과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에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트럼프와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면 글로벌 판매 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대차그룹은 앞서 트럼프발 악재를 한 차례 막아낸 바 있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아이오닉 5 ▲아이오닉 6 ▲기아 EV6 ▲EV9 ▲제네시스 GV70 전동화 모델 등 5종이 미국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 대상에 포함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은 IRA에 따라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내에서 생산된 전기차가 아니라면 최대 7500달러(11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받을 수 없다는 게 골자다. 즉 타국에서 생산한 전기차를 미국에 판매할 경우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조지아주에 설립한 전기차 전용 공장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기 때문에 보조금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짙어지는 트럼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대차그룹은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는 큰 틀에서 ‘성과 중심’이지만 그 속에는 트럼프 리스크를 대응하기 위한 의도도 담겨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미국통’이라 불리는 성 김 고문을 글로벌 대미협력 담당 사장으로 임명했다. 또 호세 무뇨스 현대차 북미 법인 사장을 한국으로 불러들여 현대차 사장 자리에 앉혔다. 이는 트럼프 당선인과 적극적인 소통을 하겠다는 의지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현대차그룹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각 정부 기관과 연방 의원실 등 워싱턴의 여론 주도층을 상대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미국 내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도를 강조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986년 미국 시장 진출 이후 40년간 총 3곳의 미국 생산 공장과 배터리와 모터, 엔진 부품 등을 제조하는 협력사 등을 통해 5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총 205억달러(3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경영진들의 취임식 참석 여부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다수의 외신은 호세 무뇨스 사장과 장재훈 현대차 부회장 등의 경영진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고 앞다퉈 보도했다. 미국통 성 김 사장도 참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이들은 취임식에 참석해 트럼프 당선인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한 작전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대차그룹의 수장인 정의선 회장은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트럼프 당선인과 경영진과의 회동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취임 전에는 트럼프의 자택인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취임 후에는 백악관에서 회동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트럼프 당선인과 우호적 관계를 맺기 위해 다양한 움직임을 펼치고 있다”며 “이달 6일 개최된 신년회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을 강조한 만큼 트럼프 당선인의 리스크를 기회로 창출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차그룹은 대선 전부터 트럼프 당선인 체제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발 위기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했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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