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산업은 다른 산업과 다른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 원자재가 없어 상품과 서비스 원가에 인건비와 기술만 포함됐기 때문이다. 콘텐츠 산업이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에 따른 환율·관세 등 시장 변화 영향을 적게 받는 업종으로도 꼽히는 이유다. 정부가 콘텐츠 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 겸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이유도 이 같은 특성 때문으로 분석된다.
3일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콘텐츠 산업은 올해 3분기 반도체·선박·무선통신·석유화학·자동차 등 국내 주요 산업 중 유일하게 수출업황 지수, 수출채산성 지수, 수출물량 지수가 모두 100을 넘었다. 이는 한국수출입은행의 분기별 수출실적 조사에 수출업황이 개선됐다고 응답한 문화콘텐츠 기업의 수가 악화됐다고 답변한 기업보다 많았다는 의미다.
한국수출입은행이 분기별 수출실적을 조사할 때 업황이 개선됐다고 응답한 기업이 많으면 평가지수가 100을 넘는다. 조사대상은 국내 주요 산업 10종 중 수출액 50만달러 이상 대기업 50곳, 중소기업 465곳 등 총 515곳이다. 콘텐츠 산업은 트럼프 정부의 정책 영향을 가장 적게 받는 모양새다.
이는 정부가 콘텐츠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으려는 배경으로 분석된다. 콘텐츠 산업은 관세·환율보다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 영향이 더 크다. 국제정세가 불안하거나 보호무역이 늘어나도 재밌는 콘텐츠 IP는 많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서다. 실제 2023년 상반기 콘텐츠 산업의 수출액은 70조원쯤으로 이차전지, 전기차, 가전 등 주요 산업 수출액보다 많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5년 대한민국 콘텐츠 수출 전망에도 방송영상 분야와 애니메이션 분야를 제외하면 게임·신기술콘텐츠·캐릭터·스토리·만화웹툰·음악·패션 등의 분야 수출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내외부 전문가 16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특히 북미지역은 만화웹툰과 음악의 수출 전망이 긍정적인 것으로 집계됐다. 만화웹툰은 네이버웹툰의 미국 본사 웹툰엔터테인먼트가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는 등 현지에 진출한 점,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북미 자회사 타파스엔터테인먼트를 통해 현지를 공략하는 점 등이 긍정 요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또 음악산업이 BTS 등 유명 아이돌 중심 K팝 산업 인기가 계속될 것으로 봤다.
산업 전망이 긍정적이지 않은 방송영상 분야와 애니메이션 분야도 부정적 전망이 나오는 이유가 관세와 환율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트럼프 2기 출범 때문에 부정적 전망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방송영상 분야는 수출 시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 등 글로벌 OTT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방송 프로그램을 수출할 제작사의 협상력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방송영상 업계와 마찬가지로 경기불황에 따른 제작비 축소 영향이 크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강점을 가진 아동용 애니메이션 시장이 저출생으로 줄어들고 있어서다.
수출입은행 3분기 수출실적 평가 보고서에는 이 같은 콘텐츠 산업 특성이 더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중국 등의 저가공세로 인한 가격경쟁력 차이나 관세를 이용한 보호무역은 콘텐츠 산업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콘텐츠 산업의 수출 애로요인으로는 ‘근로시간 단축 및 인건비 상승’이 29.4%로 가장 많았다. 또 콘텐츠 업계는 수출업황 수출 악화 원인 2가지를 고르는 질문에 모두 상품 경쟁력 하락과 수출 대상국 경기둔화를 꼽았다. 미국 정부의 정책 변화로 인한 관세·환율 변동이 아니라 콘텐츠의 재미와 타깃시장이 콘텐츠를 볼 여유가 있는지가 더 중요한 셈이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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