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국산 전기차의 한국 시장 공세가 예상됨에 따라 국산 완성차 제조사들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차별화된 전략을 세우지 못한다면 중국산 전기차에 시장을 빼앗길 가능성이 높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 최대 전기차 제조사인 비야디(BYD)는 오는 1월 16일 국내 승용차 시장 본격 출범을 알리는 기자간담회를 진행한다. 지난해 숱하게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진출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는 것이다.
비야디는 한국 진출을 위해 한국 법인을 설립하고 지난해 12월 세일즈 및 서비스를 담당할 딜러사 6곳을 선정한 바 있다. 이어 금융상품 마케팅 강화를 통한 세일즈 네트워크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우리금융캐피탈과 금융 업무 제휴도 맺었다. 안정적인 한국 시장 안착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것이다.
비야디코리아는 국내 주요 렌터카 업체들과도 긴밀히 접촉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이는 일반 판매를 넘어 렌터카 시장까지 공략하며 점유율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비야디코리아가 렌터카 시장에 진입한다면 기업대기업(B2B) 방식을 선택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비야디코리아가 국내 렌터카 시장에 진입을 시도하는 것은 일명 ‘중국산’이라는 부정적 시각을 낮추기 위한 시도로 분석된다“며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렌터카 공급을 통해 브랜드 경험을 높이고 저항감을 낮추는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야디코리아 측의 입장은 달랐다. 국내 렌터카 업체와 공식적인 접촉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그들은 매력적인 상품성과 높은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인지도를 높여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전략은 앞서 류쉐량 비야디 아시아·태평양자동차판매사업본부 총경리가 전한 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11월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 기자단과 간담회를 통해 류 총경리는 “한국 진출 첫해의 판매 목표는 설정하지 않았다“며 “판매량에 집중하기보다 한국 소비자들이 비야디 차량을 체험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고 밝힌 바 있다.
비야디코리아의 본격 진출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국내 시장에 내놓은 첫 번째 모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높은 상품성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소형 전기 SUV ‘아토3(ATTO3)’와 중형 전기 세단 ‘씰(SEAL)’이 출시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인동동 비야디 아시아·태평양자동차판매사업본부 홍보총괄은 “한국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중국을 비롯한 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소형 전기 SUV ‘아토3’와 중형 전기 세단 ‘씰’을 우선적으로 선보일 것이다”며 “판매 가격은 중국 현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아토3와 씰의 중국 현지 판매 가격은 각각 12만위안(2404만원), 18만위안(3607만원)부터 시작한다. 국내 판매 가격이 현지와 비슷하게 책정된다면 기아 EV3와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과 직접적인 경쟁을 펼치게 된다.
아토3에는 150킬로와트(kW)의 출력을 발휘하는 1개의 전기모터와 리튬인산철(LEP) 배터리가 탑재된다. 배터리 용량은 49.92킬로와트시(kWh)와 50.25kWh, 60.48kWh 등 총 3가지로 구성되며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WLTP 기준 420킬로미터(㎞)다. 차체 크기는 길이, 너비, 높이 각각 4455밀리미터(㎜), 1875㎜, 1615㎜며 휠베이스는 2720㎜다.
비야디코리아의 진출에 이어 저장지리홀딩그룹의 자회사인 지커(ZEEKR) 역시 한국 시장에 상륙을 앞두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미 볼보자동차와 폴스타, 로터스 등의 자회사가 국내에서 입지를 다졌기 때문에 비야디코리아 대비 수월하게 정착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커는 한국 진출을 위해 지난해 9월 한국인 대표를 선임했으며 딜러사 선정도 마친 상태다. 지커는 에이치모터스, 아이언모터스, 고진모터스, KCC오토, 아주 등 5곳과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설 예정이다. 5곳의 딜러사는 이미 그룹 자회사인 볼보자동차, 로터스 등의 판매를 맡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이르면 올해 하반기 또는 2026년 지커가 공식 판매하는 전기 승용차 2~3종에 대한 판매와 애프터 서비스를 담당한다.
지커는 비야디와 다르게 고급화 전략을 펼치며 중형 SUV 7X를 첫 번째 모델로 선보일 가능성이 높다. 해당 모델은 오프로드 전용 기능과 첨단 기술을 갖추고 있으며 800V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특히 기존 모델인 지커 X와 001, 폴스타 4, 로터스 에미야 등과 같은 SEA 모듈형 아키텍처를 사용하지만 대형 SUV와 비슷한 실내 공간을 갖추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차체 크기는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825㎜, 1930㎜, 1656㎜며 휠베이스는 2925㎜다.
7X은 이미 유럽 시장에 판매되며 상품성과 경쟁력을 입증한 상태다. 7X는 두 가지 파워트레인으로 판매되며 1개의 모터를 탑재한 RWD 롱레인지 모델의 경우 WLTP 기준 1회 충전으로 615㎞를 주행할 수 있다.
고성능 모델인 듀얼 모터 AWD 퍼포먼스는 100kWh 용량의 니켈·망간·코발트(NMC) 배터리가 탑재되며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을 3.8초 만에 마친다.
지커는 7X와 함께 주력 모델인 001도 들여올 예정이다. 중형 SUV인 지커 001은 1회 충전으로 620㎞를 주행할 수 있으며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 시간은 3.8초다. 001의 현지 가격은 30만위안(6007만원)이다.
국산 전기차는 중국의 공세를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가격과 구성, 차체 크기 등이 모두 겹치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국산 전기차가 차별화된 전략을 세우지 않는다면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의 시선도 보내고 있다. 중국산이라는 꼬리표만 떼어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다.
업계 전문가는 “중국산 전기차의 상품성은 이미 국산 전기차와 비슷하거나 넘어서는 수준으로 발전했다”며 “소비자 접점을 통해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만 완화한다면 국내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는 건 어렵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는 정책을 고려하고 있지만 가격 경쟁력이 높은 점을 고려하면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국산 전기차가 중국산 전기차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가격 경쟁력이 아닌 상품성, 낮은 유지 관리 비용, 넓은 서비스 네트워크 확보 등의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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