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최주원 기자】 삼성전자가 반도체 산업에서 오랜 시간 글로벌 1위를 지켜왔지만 최근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하며 ‘초격차’ 전략이 흔들리고 있다. 수십 년간 글로벌에서 이어온 업계 지배력이 흔들리고 있으며 최근 상황은 삼성의 미래 행보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HBM(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확고한 선두로 자리잡는 동안 삼성은 글로벌 파트너십의 변화와 지정학적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반도체 사업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로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 지 50년을 맞이했다. 반도체 산업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왔지만, 내부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한 모습이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반도체 50주년을 기념하는 별도의 대외 행사는 계획되지 않았다. 이는 현재의 내부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사업 50주년, 삼성전자 반도체 발전의 역사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83년 당시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 선언’을 통해 대규모 투자를 발표하며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그해 64K D램 개발에 성공하면서 반도체 사업의 기틀을 다졌다. 이후 1992년 최초로 64M D램 개발에 성공하며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고, 1993년 8인치 웨이퍼 생산라인 구축, 1996년 1기가 D램 개발 등으로 반도체 종합 매출에서도 글로벌 1위에 올랐다.
2000년대 들어서는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도 독보적 입지를 구축했으며 2010년대에는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2017년에는 반도체 매출에서 인텔을 제치고 글로벌 1위를 기록하며 메모리와 비메모리 분야에서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완성했고, 2나노 공정 개발과 같은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성장을 도모하며 올해로 반도체 사업 50주년을 맞이했다.
삼성그룹의 소유경영권을 중심으로 반도체 성장을 중점적으로 다룬 책 ‘이건희의 삼성 이재용의 삼성’의 저자 차기태 작가는 삼성이 반도체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으로 과감한 결단과 전략적 투자를 꼽았다.
차 작가는 “기회 선점 경영과 동시공학 전략을 통해 빠른 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동시에 이루며 선진국 기업들과의 격차를 좁혔다”며 “반도체 사업의 성공은 삼성에 자신감을 심었고, 이는 이후 LCD와 스마트폰 사업의 성공으로 이어져 초일류 기업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시장 입지 약화…수율·양산성 핵심으로
최근 반도체 시장의 환경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HBM(고대역폭 메모리)과 같은 첨단 메모리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HBM은 AI 기술의 확산으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며 차세대 메모리 시장의 핵심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에 HBM3를 독점 공급하며 삼성전자를 압도하고 있다. 여기에 TSMC, 엔비디아, SK하이닉스로 이어지는 강력한 ‘삼각편대’가 형성되면서 삼성전자의 HBM 시장 입지가 더욱 약화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뿐만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도 TSMC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첨단 공정에서의 기술력과 생산 안정성은 여전히 약점으로 지적된다. 지난해 4나노 공정에서 수율 문제를 겪은 데 이어 현재 3나노 공정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삼성전자가 ‘초격차’ 전략을 실현하려면 기술력과 파트너십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과감한 혁신과 전략 전환으로 시스템 반도체 비율을 확장해 수율과 양산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이종환 교수는 “삼성전자가 HBM과 파운드리 3나노 공정에서 뒤처진 이유는 빠른 추격을 위해 양산성 검증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며 “반도체는 수율과 양산성이 핵심인 만큼 차세대 기술에서 양산성을 미리 확보하고 철저히 검증한다면 충분히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주가·시총 모두 ‘최악’ 성적표…국가 경제에도 ‘타격’
대내외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으며 현재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역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주가와 시가총액에서 삼성의 위기를 반영 해주고 있다. 지난 1월 11일 기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475조1946억원, 7월 10일에는 주가가 8만8800원으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며 시가총액이 약 524조원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주가가 수직 하락하면서 11월 14일에는 주가가 4만9900원까지 떨어져 5만 전자가 일시적으로 무너졌고 시가총액 역시 298조원으로 폭락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30일 기준 삼성전자의 주가는 5만3200원, 시가총액 약 354조1100억원으로 집계됐다. 코스피 시가총액 1위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5만 전자도 위태로워지자 삼성전자는 지난 11월 향후 1년간 총 1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분할 매입하는 계획을 의결했다고 공시했다. 이 중 3조원의 자사주는 3개월 내에 사들여 전량 소각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당시 주가가 과도하게 하락했다고 판단해 회사 차원에서 비상 대응에 나섰다”며 “자사주 매입 이후 주가가 일시적으로 회복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개별 이사회 결의를 통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활용 방안과 시기를 다각적으로 논의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내년 상황도 녹록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30일 유진투자증권 발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내년 D램 시장은 한 자릿수 성장, 낸드플래시 시장은 한 자릿수 역성장을 예상했다. 삼성전자의 4분기 실적에 대해 매출 약 76조3000억원, 영업이익 약 7조9000억원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고 2025년 전체 영업이익도 약 33조3000억원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자의 부진은 한국 증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증시의 중심축인 삼성전자가 흔들리면서 코스피 시장도 불안정한 흐름을 보였으며 이는 한국 경제의 대외 신뢰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특히 반도체 수출 실적이 국가 경제 성장률과 직결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위기가 한국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박상인 교수는 이에 대해 “반도체 수출 상황이 현재 매우 좋지 않다. 삼성전자는 중국에 반도체를 더 많이 수출하고 있는데, 미국의 대중국 수출 규제로 인해 상황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삼성전자의 반도체 리스크는 한국 경제 전반으로 확대될 위험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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