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일명 ‘가스차’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택시 혹은 렌터카 등 사업용 자동차를 대표하는 자동차로 여겨져 왔던 까닭이다. 게다가 일반인들은 액화석유가스(LPG)를 구매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LPG 모델은 일반인들의 선택지에서 철저히 배제돼 왔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2019년 산업통상자원부는 수송용 LPG 연료 사용 제한을 폐지하는 ‘액화석유가스의 안전관리 및 사업법’ 일부개정법률을 공포하고 시행했다. 누구나 LPG 차량을 구매하거나 보유하고 있는 가솔린, 디젤차를 자동차 구조변경 업체에서 LPG 차량으로 개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흔히 말하는 ‘가스차’는 정말 선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충분히 매력적인 경제성과 친환경성
LPG 차량이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은 택시와 렌터카 시장이다. 여러모로 가솔린 모델 대비 경제성이 높기 때문이다. 먼저 찻값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3.5리터(ℓ) V6 엔진을 탑재한 그랜저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가솔린 차량의 경우 엔트리 트림인 프리미엄의 가격은 4015만원이다. 반면 LPG 모델은 3916만원으로 100만원가량 저렴하다. 하이브리드 모델과는 무려 518만원 차이다.
가솔린 대비 낮은 연료비 역시 LPG 차량의 이점이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공개된 12월 28일 기준 전국 평균 ℓ당 가솔린 가격은 1667.43원인데 비해 LPG의 ℓ당 평균 가격은 600원가량 저렴한 1058.97원이다. 이를 바탕으로 가솔린 모델의 연료탱크(60ℓ)를 모두 채울 경우 10만45.8원이 든다. 71ℓ 용량의 연료탱크가 탑재된 LPG의 경우 7만5186.87원이 필요하다. 더 많은 양을 채우는 데도 값은 저렴하다. 연료 효율성의 차이가 있지만 이를 만회하기 충분한 수준이다.
LPG 모델은 가솔린 모델 대비 각종 호흡기 질환 및 폐암의 원인이 되는 미세먼지(PM10)와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이 현저히 적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유종별 자동차 질소산화물 배출량 비교 결과에 따르면 LPG 모델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0.006그램킬로미터(g/㎞)로 디젤 모델 배출량의 93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LPG 모델이 친환경차로 부각되며 72개국에서 2742만대가 운행 중이며 유럽은 LPG를 지구온난화 대응을 위한 친환경 대체 연료로 장려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높아진 상품성도 LPG 모델을 선택하게 만드는 요소다. 과거 LPG 모델은 일반 가솔린 모델에 비해 상품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현대차 그랜저 LPG만 보더라도 지능형 안전 기술을 비롯해 각종 편의 기능이 가득하다. 구성만 보고는 가솔린 모델과 LPG 모델을 구별하기 쉽지 않을 수준이다.
LPG? 가솔린? 디자인 차이 없어
실제로 마주한 현대차 그랜저 LPG 모델은 가솔린 모델과 외적인 차이를 찾기 힘들다. 전면부를 가로지르는 수평형 램프(Seamless Horizon Lamp)는 물론이고 독특한 형상의 그릴 모두 가솔린 모델과 같다. 상위 트림과 엔트리 트림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7세대 그랜저는 1세대 그랜저의 디자인 특징을 계승한 것이 특징이다. ‘오페라 글라스’를 적용한 C필러가 대표적이다. 1세대에 적용된 오페라 글라스는 뒷좌석 승객의 프라이버시와 개방감을 위해 적용된 것으로 최고급 세단을 상징하는 요소로 자리 잡기도 했다.
가장 눈에 띈 점은 트렁크 공간이다. 과거 LPG 모델의 경우 연료 탱크가 트렁크 안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가솔린 모델 대비 공간 활용성이 높지 않았다. 하지만 그랜저 LPG 모델은 도넛 모양의 신형 LPG 탱크를 트렁크 하단 스페어타이어 공간에 탑재해 공간 활용성을 높였다. 가솔린 모델과 비교해 트렁크 바닥이 살짝 위로 올라온 점만 다를 뿐이다.
널찍하고 고급스러운 실내
실내 역시 가솔린 모델과 차이가 없다. 프레임 리스 도어를 열고 실내로 들어서면 현대차의 최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ccNC가 환대한다. 엔트리 트림이라 공조 및 시트 온도 조절 조작부가 터치가 아닌 물리 버튼으로 구성돼 있다. 시각적으로는 터치 방식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전달하지만 주행 중 조작 시에는 물리 버튼 방식이 이점이 더 많은 편이다. 또 변속 레버가 칼럼식으로 변경되면서 기존 변속 레버가 위치했던 공간을 수납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점 역시 마음에 든다.
엔트리 트림임에도 불구하고 실내를 구성하는 소재의 고급스러움이 높은 편이다. 물리 버튼의 조작감도 좋고 고급스러운 플라스틱 소재를 더한 점이 마음에 든다. 시트는 방석 부분 길이와 너비가 넓은 편이고 신체를 감싸는 느낌이 좋다. 또 쿠션감이 무르지 않은 편이라 장거리 주행에도 쉽게 피로가 느껴지지 않는다.
대형 세단인 만큼 실내 공간의 부족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2895밀리미터(㎜)에 달하는 휠베이스 덕분에 2열 공간이 매우 넓은 편이다. 성인 남성이 타도 머리 공간과 무릎 공간의 부족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참고로 7세대 그랜저는 이전 세대 대비 길이와 휠베이스, 리어 오버행이 각각 45㎜, 10㎜, 50㎜ 늘었다.
V6 3.5ℓ 엔진의 부드러운 감각
그랜저 LPG의 안팎을 살펴본 후 본격적인 시승을 위해 엔진을 깨웠다. 시동 버튼을 누르자 즉각적으로 엔진이 반응했다. 과거 낮은 기온에서 시동 지연 현상이 발생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이다. 이번 시승은 목적지를 따로 정하지 않았다. 막히는 도심과 외각을 정처 없이 다니며 그랜저 LPG를 온전히 느껴볼 참이었다.
출발과 동시에 LPG 모델에 대한 편견이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V6 엔진은 매우 매끄럽게 회전했고 속도를 높이는 과정 역시 부드러웠다. 6개의 피스톤이 주는 묵직한 감각은 가솔린 모델과 같았다. 현대차의 스마트스트림 LPG 3.5 파워트레인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게 느껴졌다. 가속페달을 밀어 넣는 순간 힘이 부드럽게 쏟아졌다. 엔진의 질감, 출력 등만 따지면 가솔린 모델을 선택할 이유를 찾지 못할 정도였다.
꽉 막힌 도심을 벗어나 외곽에 접어들었고 가속페달을 끝까지 밀어 넣었다. 8단 자동변속기는 순간적으로 낮은 기어로 바꿔 물며 최고출력 240마력, 최대토크 32.0킬로그램미터(㎏·m)를 쏟아내며 빠르게 속도를 높였다. 시속 80킬로미터(㎞)로 주행하다 가속하는 과정도 불만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솔린 모델 대비 60마력 낮은 힘이지만 추월 가속 능력도 뛰어났다.
시승 당시 때아닌 폭설로 인해 노면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지만 노면 소음이 실내로 파고들거나 엔진의 불쾌한 진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ANC-R(Active Noise Control-Road) 기술과 흡음 타이어, 분리형 카페트, 이중 접합 차음 유리 등을 전 사양에 기본 적용한 덕분이다. 가솔린 모델과 전혀 차이가 없는 정숙성과 부드러움을 제공했다.
중요한 부분은 연료 효율성이다. 그랜저 LPG의 제원상 연료 효율성은 ℓ당 7.8㎞(18인치 휠, 복합 연비 기준)다. 실제 시승 당시 계기판에 표시된 연비는 9㎞를 훌쩍 넘었다. 궂은 날씨로 인한 정체, 급가속과 감속 등을 반복한 점을 감안하면 가솔린 모델과 큰 차이가 없는 수치다. 고속도로를 정속 주행한다면 10㎞ 이상을 기록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현대차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세단이자 캐시카우 모델인 그랜저 라인업에 꾸준히 LPG를 위한 자리를 빼놓고 있다. LPG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현대의 확신은 시승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랜저 LPG는 그간 자리잡고 있는 편견을 완벽히 깨버렸다. 가솔린 모델과 차이 없는 외관 디자인은 물론이고 향상된 상품성, 엔진의 부드러움 등은 LPG 모델을 구매 리스트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저렴한 유류비와 친환경성은 그랜저 LPG 모델을 선택하는 데 큰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대형 세단의 편안함과 경제성까지 모두 갖춘 모델을 찾는다면 그랜저 LPG는 꽤 괜찮은 선택지가 틀림없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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